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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김익훈의 처부 김언1588-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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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6-09 11:03 조회1,26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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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숙공(김언) 묘갈명

송시열(宋時烈) 지음 

 

숭정(崇禎 명 의종의 연호) 9년인 병자년(丙子年 1636년 인조 14년)에 오랑캐 군사(청나라 군사)가 가득하게 퍼져 들어왔는데, 이때 성천 부사(成川府使) 김언(金琂) 여윤[汝潤 김언의 자(字)] 공이 즉시 관병(官兵)을 단속하여 이끌고 자모산성(慈母山城)으로 달려가서 전부 감사(監司) 홍명구(洪命耈) 공에게 예속시킨 다음 돌아와서 곧 의병(義兵)을 모집하여 적(敵)의 침범하는 자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당시에 호란(胡亂)이 갑작스레 일어나서 인심이 흐트러져 수습할 길이 없자, 공이 눈물을 뿌리며 군중들에게 맹세하여 ‘군장(軍長)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리’를 격동시켰는데, 얼마 안 되어 적병이 크게 닥치므로, 공이 또 군중들에게 유시하기를, “적이 찾는 것은 <부사(府使)인> 나이니, 나는 의리에 있어 당연히 죽을 힘을 다하다가 목숨을 바치겠지만, 너희들은 모두 돌아들 가도록 하라. 헛되이 죽어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니, 군중이 모두 공을 위해 감읍(感泣)하였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공을 업고 달아나겠다고 청하였으나 공은 굳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적이 과연 공을 찾아서 칼을 들이대며 공에게 항복하라고 위협하기에 이르렀는데, 공은 적을 크게 꾸짖고 끝내 굴복하지 않다가 드디어 살해를 당하였으니, 때는 숭정 10년인 정축년(丁丑年 1637년 인조 15년) 정월 초5일이었다. 

처음에 공이 가속(家屬)들에게 병란을 피하도록 지시해 보낼 때 여러 아들이 모두 어렸는데, 사위인 지금 광남(光南 김익훈의 호)군 김익훈(金益勳)이 막 장가가서 있던 터라 공에게 이르기를, “적봉(敵鋒)을 당할 수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가속들과 더불어 산곡(山谷)에 들어가 많은 집안 식구들을 보호할 계획을 하지 않으십니까?” 하니, 공이 말하기를, “나는 죽기를 스스로 맹세하였으니, 온전한 몸으로 처자(妻子)를 보호할 수 없다.” 하였다. 일이 급하게 되자, 광남이 또 공을 당기어 억지로 일으켰지만 공은 굳게 앉아서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그 당시에 감사 홍명구 공이 공의 죽음을 듣고서 비장(裨將) 및 의복(衣服)을 보내어 시체를 염습(殮襲)하게 한 다음, 그대로 김화현(金化縣)에 이르렀다가 군사가 패하여 순절(殉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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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아들 김세보(金世輔)는 일찍이 현감(縣監)이 되었고, 다음 김세필(金世弼)은 좌랑(佐郞)이며, 셋째 김세익(金世翊)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판관(判官)이다. 사위는 곧 광남(光南 김익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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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의 아들은 수찬(修撰) 김만채(金萬埰)와 생원 김만선(金萬&#2268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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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재이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재이
작성일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