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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문화재청 자료에도 명빈을 세종의 후궁이라고 되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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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6-16 11:30 조회1,522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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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자료에 명빈을 세종의 후궁이라고 되어 있어 민원제기하여 수정하였습니다.

오늘(2005년 6월 16일 )수정되었으니 그 이전에 얼마나 많은 전재가 이루어 졌는지....

 

문화재청 담당자로부터 수정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민원제기내용

 

[ 질의 ] 명빈은 세종의 후궁이 아니라 태종의 후궁입니다.
접수번호 200506150001  이름 김영환 
게시일 2005-06-15  조회수 29
귀청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문화재 자료중 틀리게 설명된 부분이 있어 수정의 바랍니다.

틀린 자료

문화재찾기 보물 1125호 불설대보부모은중경--전문설명보기

문화재명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이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은 조선조 초기 왕실(王室)에서 간행된 책으로 부모의 은혜를 설한 불교의 효경(孝經)으로 널리 알려진 경전이다.

권말(卷末) 정암(定菴)의 발문(跋文)에 의하면 세종(世宗)14(1432)에 세종(世宗)의 후궁(後宮)인 명빈(明嬪) 김씨(金氏)의 발원(發願)으로 간행되고 도인(道人) 의호(義浩)가 각수(刻手)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책뒤에 부모은중태골경이 합철되어 있다. 이 판본은 왕실에서 간행된 책인 만큼 새김이 정교하고 보물 제959호로 지정된 윤극온(尹克溫)의 인출발문(印出跋文)이 붙은 기림사(祇林寺) 소장본(所藏本)과 동일한 판본이다.


틀린 자료= 명빈은 세종의 후궁이 아니라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의 후궁입니다.
증거자료= 세종실록 39권 세종10년 3월10(임진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김구덕(金九德)이 졸(卒)하였다.




--구덕은 본관(本貫)이 안동(安東)이니 상락군(上洛君) 김묘(金昴)의 아들이다. 나이 19세에 진사(進士)·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음직(蔭職)으로 산원(散員)에 보직(補職)되었다. 여러번 사헌 규정(司憲糾正)으로 천전(遷轉)되어 잡단(雜端)과

형조 의랑(刑曹議郞)을 거쳐 나가서 단양(丹陽)·청풍(淸風)·한주(韓州)의 세 군의 군수(郡守)가 되었다. 사헌 중승(司憲中丞)으로

전직되어 지사간(知司諫)으로 옮기고, 또 해주(海州)·광주(廣州)·청주(淸州)의 세 주(州)의 목사(牧使)와 연안 부사(延安府使)와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가 되었다.

--딸이 태종전(太宗殿)으로 뽑혀 들어와 명빈(明嬪)이 되었으므로 동지총제(同知摠制) 한성 부윤(漢城府尹)으로 승진되고,

강원도 관찰사가 되고 들어와서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가 되었다. 또 한성윤(漢城尹)으로서 들어와 천추절(千秋節)을

하례하고, 조금 후에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졸(卒)하매 조회를 3일 동안 폐하고, 조문(弔問)하고 부의(賻儀)를 내리고, 안정(安靖)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니, 화합함을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 것을 안(安)이라 하고, 너그럽고 즐거워하여 고종명(考終命)한 것을 정(靖)이라 한다. 성품이 온량(溫良)하여

사람들을 예(禮)로서 대접하고 평소에 사장(詞章)을 좋아하여 시(詩) 읊기를 폐하지 않았다.

-아들은 김오문(金五文)이었다.

≪출전 : 세종실록 39권 세종10년 3월10(임진)≫

빠른 수정을 부탁합니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큰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즉각 응답이 와서 다행입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정중
작성일

  대부님~~축하드립니다~경진보(庚辰譜) 1580년(조선 선조 13년) 에는 안정공구덕-자 오문- 여 명빈 세종후궁으로 되어있네요(경진보의 오류라 해야 겠네요 안정공의 손녀? 세종후궁? 경진보 6,19,20쪽)

김진회(밀)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진회(밀)
작성일

  대부님 너무나 큰 일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