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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한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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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6-24 15:43 조회1,1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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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한세환(韓世桓)
【생몰년】 1470(성종 1)∼1522(중종 17)
【본 관】 청주(淸州) 한(韓)
【자·호】 공서(公瑞)
【시 호】 공간(恭簡)
【저서·작품】 《성종실록(成宗實錄)》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문신

1470(성종 1)∼1522(중종 17).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공서(公瑞)로 한운(韓運)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492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3년 후 증광문과의 병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을

제수받았다. 1499년에 봉교(奉敎)로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하였으며 지평 · 부응교를 거쳤다. 1507년에 대사간이 되었으며 1516년 7월 16일에는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 이듬해 7월 28일과 1519년 3월 15일에는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취임하였다. 기묘사화 직후 추죄(追罪) 때에는 좌참찬(左參贊)을 지냈고 곧이어 이조 판서(吏曹判書)가 되었다. 이 무렵 대사헌 이행(李荇)이 문종비(文宗妃)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을 세조(世祖)가 파릉(破陵)한 것을 복구한다는 여론을 반대하였는데 성종이 대사헌을 경질토록 명을 내리자 그는 여론과 상관없이 묵묵히 이행한 후 당진군(唐津郡) 면천면(沔川面) 창택리(滄澤里)의 전답을 관리하는 노복으로 하여금 수확량의 절반을 근처에 있는 이행의 집으로 보내놓고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공손하고 신중하며 꿋꿋한 자세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1522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재임중 사망하였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龍泉談寂記, 己卯錄續集, 己卯錄別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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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한두(韓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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