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안정공파자료(23)총제 김오문의 처부 정총 처조부 정공권(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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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6-28 11:39 조회1,199회 댓글0건본문
정총(鄭摠)
1358(공민왕 7)∼1397(태조6).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만석(曼碩),
호는 복재(復齋).정당문학(政堂文學) 추(樞:일명 公權)의 아들이며, 조선개국공신 탁(擢)의 형이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9세로 춘추관검열이 되고, 대간·응교·사예를 거쳐 대호군에
이르고, 1389년(공양왕 1)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며, 1391년 이조판서를 거쳐 정당문학에 이르렀다.
당시 중국에 보낸 표전문(表箋文)은 대부분 그가 지었다. 조선개국 후 개국공신 1등에 서훈되고,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로서 서원군(西原君)에 봉하여졌다.
1394년(태조 3) 정당문학이 되고, 다시 예문춘추관태학사가 되어 정도전(鄭道傳)과 같이 《고려사》를
편찬하고, 그 서문을 썼다.
1395년 태조 이성계의 고명(誥命) 및 인신(印信)을 줄 것을 청하러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때마침 명나라에 보낸 표전문이 불손하다 하여 명나라 황제에게 트집잡혀 대리위(大理衛)에 유배도중
죽었다. 글씨를 잘 쓰고 문집으로 《복재유고》가 있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정공권(鄭公權)
1333(충숙왕 복위 2)∼1382(우왕 8). 고려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추(樞). 자는 공권
(公權)인데, 뒷날 자를 이름으로 썼다. 호는 원재(圓齋).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보(溥)의 아들이다.
1353년(공민왕 2) 문과에 급제하였고 예문검열을 거쳐 좌사의대부에 올랐다.
1366년 이존오(李存吾)와 함께 신돈(辛旽)을 탄핵하다가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였으나, 이색(李穡)의
구원으로 동래현령으로 좌천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1371년 신돈이 제거된 뒤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다시 발탁되었다. 성균관대사성을 거쳐 우왕
즉위 후 좌대언·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가 되었는데, 1376년(우왕 2) 태(胎)를 예안현(禮安縣)에
안장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뒤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제수받고, 수성익조공신(輸誠翊祚功臣)에 올랐다.
성품이 공검하고 근후하여 관직에 있을 때 항상 정도를 행하였다. 당시 가묘제도(家廟制度)가
폐지되었으나, 제기를 별실에 간직하여두고 제삿날을 당하면 반드시 손수 씻어서 제사에 쓰도록
하였다. 나라의 일이 권신의 손에 좌우되는 것을 한탄하다가 병사하였다.
저서로는 《원재집 圓齋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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