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수정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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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7-27 21:20 조회1,161회 댓글1건본문
<검토 요>
검토가 필요한 부분을 찾아 보았습니다. 한번 더 살펴 보시기를...
329년(충숙왕 16)
⇒ 1329년
성절사로 다녀오시던 길에 압록강을 건너다
⇒ 성절사로 원나라에 들어갈때, 압록강을 건너자
(“원(元)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압록강(鴨?江)을 건너자 병이 들어 신안여관(新安旅館)에서 별세하였다.”)
국립박물관에
⇒ 국립중앙박물관에
발견 경위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
⇒ 발견 경위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개성 인근의 고분은 대부분 일정시대에 고려청자를 찾을 목적으로 도굴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묘지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때 수집된 묘지석이 조선총독부에서 보관하다 해방되면서 국립중앙박물관과 이화여대 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고 한다. 충숙공 별세시 개성 고류동(孤柳洞) 집에 빈소를 차리고, 묵동(墨洞) 북쪽 산기슭에 장례지냈다는 기록으로 보면, 충숙공 묘지석도 이때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것이 아닌가 추측될 뿐이다.
(두만강변 4군 6진 개척)
⇒ (압록강 두만강변 4군 6진 개척)
대사헌에 재임 중 노친을 모시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 대사헌에 재임 중 노친을 모시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났다고 하는데,
(김익정 선조님은 1425년 대사헌이 되었고, 계속 관직에 계시다가 1427년부터 1430년까지 관직의 공백이 있고 이후 별세할 때까지 관직에 계신 것으로 보아, 1427년 형조참판 재임시 노친을 모시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음. 따라서 1425년 대사헌에 재임 중 노친을 모시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나 3년씩 6년간 시묘하였다고 가전되어 온 내용은 착오일 수 있음)
압곡에는 그의 효자정려가 있다.
⇒ 압곡에는 그의 효자정려가 있었다.
(몇년전 양곡에 있는 손자 김사준의 정려에 합사하였음)
성종조에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복창군(福昌君)에 봉해졌다.
⇒ 삭제
(손자 김수녕 기록임)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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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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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님, 감사합니다.
수정토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