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도절제사공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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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8-27 23:31 조회1,159회 댓글0건본문
도절제사공 김제(金 =삼수변制) ---무후⇒전의이씨 외손봉사
○안렴사공(김사렴)과 죽계부인 순흥안씨와의 사이에서 6남(간,인비,위,제,약,식) 1녀(마희원에 출가)중 4남으로 태어났다.
○ 1377년(북원선광7 정사, 명홍무10, 우왕3) 3월 성균학생 김제가 진사과에 등제하여 벼슬이 도절제에 이르렀다. 당시 父는 朝議郞(=정5품) 佐司諫 知制誥 士廉이었다.
○ 1382년(대명홍무15 임술, 북원천윤4, 우왕8) 5월 안동 김제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도절제사에 승임되고 절도사를 역임하였다. 동년급제한 안동 金明善은 벼슬이 서령에 이르렀다. <고문서집성23-거창초계정씨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안렴사공(휘 사렴, 1335~1405)공은 임종이 다가오자 여러 아들들을 돌아보며 유언하기를, "나는 고려조의 옛신하로서 이미 임금을 도와 나라를 보존치 못하였고, 나라가 망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따라 죽지 못하였으니, 천하의 죄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러니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돌아가 선왕과 조상님들을 뵐 수 있단 말이냐? 내가 죽거든 깊은 산중에 파묻고 봉분도 하지 말고 표석도 세우지 말라. 그리고 우리 자손 중에서 고려조에 이미 벼슬했던 사람은 다시는 조선조에서 벼슬하지 말라." 고 말하였다. <1822년 고려명신전, 남공철(1760~1840)>
○ 공의 이 유언은 그 자손들이 그대로 받들어 평총을 하고 표석도 세우지 않았다. 그뒤 많은 세월동안 병란과 시세 혼란으로 공의 묘소를 알 길이 없었다.
○山亭은 절제사 김공 제가 세운 정자인데 유지가 창고(?창리)의 동쪽 몇 리쯤 되는 곳에 있다. 長城(현 모정리)에 고려충신 안동김씨 안렴사공이 임종하시고 그 앞에는 山亭이 있었다. 李貞幹 (1360-1439) 다섯째아들 士惠가 안렴사의 아들인 병사(兵使) 제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오근을 별장으로 삼아 왕래하였는데 자손들이 인하여 거주하였다. <오근지>
○배위 성산군부인 성주이씨(父이원구)와의 사이에 2녀(이사혜, 이훈에 출가)를 두었다. 여서는 전의인 군수 李士惠(이사혜), 정랑 李訓(이훈)이니 군수공은 부 중추원사효정공貞幹(정간)이요 생4남하니 한성부좌윤孝碩(효석), 부사友碩(우석), 종사랑仁碩(인석), 부위義碩(의석)이며 효정공(이정간)과 좌윤공(이효석)은 송천서원에 동배되었다.
○묘는 오근목령에 있다. 당시 예속으로 도절제사공은 여서 이사혜 전의이씨 가문에 습승되어 거차 오백여년래 외손봉사를 뫼시어오니 희세의 기문이오 미거라 찬양할 일이다. <체경묘원유연비문, 1998, 김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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