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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고성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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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8-29 16:26 조회1,3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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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이씨

고려 文宗무렵 (11世紀후반경)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내고, 철성군(鐵城君, 鐵城은 固城의 舊號)에 봉해진 이황(李璜)을 시조로 하는 고성이씨(固城李氏)가 안동(安東)에 살기는 세조(世祖)때인 15세기 후반경으로 현감(縣監)을 지낸 증(增)에서 비롯되는데, 본래 고성이씨는 시조 이래로 대대로 벼슬을 이어, 충열왕때 좌상시(左尙侍)를 지낸 존비 문경공(尊庇 文敬公), 그 아들 우(瑀, 文憲公)가 삼중대광 판삼사(三重大匡 判三司), 그 아들 암( ,, 杏村 文貞公)이 고려의 대표적 명필이며 뛰어난 문장으로 문하시중, 그 아들 강(岡, 文敬公)이 추밀원사(樞密院使)에  集賢殿大提學을 지내고, 그 아들 원(原, 裵憲公)이 세종때 좌의정으로 청백리에 녹선되고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에 봉해지는등 자못 화려한 지체를 누렸으며, 그 아들 증이 현감을 지내고 안동에 입향하여, 고장의 학행있는 선비 12인과 우향계(友鄕 )를 맺어, 山水에 소요(逍遙)하며 덕업(德業)을 권하고, 허물을 경계(果實相規)함으로써 고장 풍화에 이바지하매,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이 장가(長歌)를 지어 기렸음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어머니와, 그 아들 오형제에서 맏아들 평(坪)이 사온서령(司 署令), 둘째 굉( )이 문과(文科)로 유수(留守), 셋째 명( )이 좌랑(佐郞), 넷째 소(沼), 다섯째 청(淸)이 함께 군수(郡守)를 지냈으며, 그 손자에 윤(胤)이 문과(文科)로 부제학(副提學). 주( )가 문과(文科) 정언(正言)으로 연산(燕山)군때 갑자사화(甲子士禍)에 희생되고, 전( )이 현감(縣監), 육(育)이 찰방(察訪), 여( )가 문과(文科)로 수찬(修撰), 요(燿), 승(勝), 반(珊), 주( )고(股), 굉(肱)이 모두 군수를 지냈으며, 그 아래로도 공조참의를 지낸 지(遲)에 이어, 후영(後榮), 시항(時沆), 주정(周禎)등이 모두 文科로 군수를 지내고, 그 밖에 文行으로 알려진 이가 많았으며, 경술국치(庚戌國 )를 전후하여, 구국운동에 몸을 바쳐, 만주에서 간도 개척의 선구로 교포정착과 교육, 자치 활동, 군사훈련, 무력항일 등으로 크게 활약하고, 상해임시정부의 국무령(國務領)을 지내는 등으로 광복대업에 생애를 이바지한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  象羲) 그 아우 상동(相東), 그 아들 준형(濬衡)등 인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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