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다시보는 충렬공연보 02 (30-5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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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9-18 23:33 조회1,473회 댓글0건본문
(30세) 1241년 고종28
○ 아버지 김효인, 辛丑(1241년)에 경주유수로 도임함.<국역 동경통지>
△ 박익정(朴益旌, 문하성 기거랑 지제고 역임)의 딸 죽주박씨와 결혼함.
*이후 1남 선(?1245-), 1녀(?1247-, +조변), 2남 흔(1250-), 2녀(?1252-, +김원충),
3녀(?1255-, +권윤명), 3남 순(1258-)을 낳음.
*박익정의 장남 박휘는 이장용의 딸과 결혼. 이장용은 최종준의 사위. 박익정의 묘는 개성 옛 남문 밖 조연파발(조연리)에 있다고 하는데, 문경공 허공의 묘소가 오른쪽에 있다고 함.<죽산박씨 족보>. 허공은 1291년 집에서 죽었는데, 보현원(普賢院)의 서산 기슭에 장례지냈다.<1291년 허공 묘지명>. 또한, 증손자 박원의 묘가 허공의 현손 허금의 묘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보아 허공 가계와 가까운 관계가 있는 듯. 박익정의 배위 기록은 없는데, 허공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됨.
<시대상황>
이규보 죽음
(31세) 1242년 고종29
○ 백부 김창, 4월에 추밀원부사로 지공거가 되고, 판예빈성사 설신(薛愼)이 동지공거가 되어 진사를 뽑았는데, 을과 홍지경(洪之慶)등 3명, 병과 7명, 동진사과 17명, 명경과 2명, 은사과 8명에게 급제를 줌.
△ 백부 김창, 그뒤 추밀원사를 거쳐 문하평장사가 됨.
(32세) 1243년 고종30
(33세) 1244년 고종31
(34세) 1245년 고종32
△ 1남 선(愃) 태어남.
*김방경(1212-, +죽주박씨)---1남 선(?1245-), 1녀(?1247-, +조변), 2남 흔(1250-), 2녀(?1252-, +김원충), 3녀(?1255-, +권윤명), 3남 순(1258-)
*후에 선은 설인검의 딸과 결혼. 1녀(?1262-, +나윤), 1자(?1265-), 2승용(1268-), 3승택(?1271-), 4승우(?1274-)을 낳음<족보>. 봉익대부 부지밀직사사 전법판서 상장군(奉翊大夫副知密直司事典法判書上將軍)에 이르렀으나, 아버지(1300년 몰)보다 먼저 죽음<김방경 묘지명>.
*<1300년 김방경 묘지명>에 ---(김방경은) 손자(孫子)의 손자(孫子)를 생전(生前)에 보셨으니 이는 또한 특이(特異)한 일이로다.--- 하였으니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수 있음.
*김방경1212---1선?1245---1자?1265---1위?1280---1득남?1298
*김방경1212---1선?1245---2승용1268---1후?1283---1칠우?1298
(35세) 1246년 고종33
<시대상황>
/최종준 죽음.
/몽고의 4차 침입. 이듬해부터 고종 35년(1248) 초까지 군사행동 전개.
(36세) 1247년 고종34
○ 서북면 병마 판관(兵馬判官)이 되었을 때 몽고군이 침공해 왔으므로 여러 성(城-고을)들에서 위도(葦島, 지금의 평북 정주 앞바다)에 들어가서 관청을 유지하고 인민들을 보호하게 됨. 김방경이 방파제(防波堤)를 쌓고 파종하게 함. 비가 오면 그 물을 저축하게 하여 못을 만듦.
△ 첫째딸 태어남. *후에 조계순의 아들 조변에게 출가함.
*김방경(1212-, +죽주박씨)---1남 선(?1245-), 1녀(?1247-, +조변), 2남 흔(1250-), 2녀(?1252-, +김원충), 3녀(?1255-, +권윤명), 3남 순(1258-)
(37세) 1248년 고종35 ⇒ (48세) 1259년 고종46
○ 서울(강화도)에 들어와서 견룡 행수(牽龍行首-의장병의 지휘관)로 됨.
○ 장군(將軍)으로서 급사중(給事中)을 겸함.
○ 어사중승(御史中丞)의 벼슬을 하게 되자 법률을 고수하였고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았으며 그의 기풍과 절개가 항상 늠연(凜然)하였음.
○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역임.
(38세) 1249년 고종36
(39세) 1250년 고종37
○ 아버지 김효인, 5월에 <예부시>에서 상서좌승 으로 동지공거로 되어 지공거 평장사 임경숙과 함께 진사를 뽑았는데 김응문(金應文) 등 29명, 명경과 3명, 은사과 8명에게 급제를 줌.
△ 아버지 김효인, 비서감(秘書監) 역임함<월남사지 진각국사비 후면 음기>.
○ 둘째아들 수(綬, 1250-1308) 태어남.
*후에 음서(蔭敍)로 산정도감 판관(刪定都監 判官)을 거쳐 장군이 됨. 후에(1274년 1차 일본정벌 전후) 흔 으로 개명. 배위는 알수 없고 1남(승고) 2녀를 낳았는데, 딸 둘은 민종유의 아들 민적, 조인규의 아들 조련에게 출가함.
*김방경(1212-, +죽주박씨)---1남 선(?1245-), 1녀(?1247-, +조변), 2남 흔(1250-), 2녀(?1252-, +김원충), 3녀(?1255-, +권윤명), 3남 순(1258-)
(40세) 1251년 고종38
(41세) 1252년 고종39
△ 둘째딸 태어남. *후에 김광원의 아들 김원충에게 출가함<김방경 묘지명>. *둘째딸이 경수에게 출가했다는 기록도 있음<1580년 경진보>
*김방경(1212-, +죽주박씨)---1남 선(?1245-), 1녀(?1247-, +조변), 2남 흔(1250-), 2녀(?1252-, +김원충), 3녀(?1255-, +권윤명), 3남 순(1258-)
(42세) 1253년 고종40
○ 아버지 김효인, 11월 경인일(15일)에 별세함. 벼슬은 정의대부 병부상서 한림학사 충사관 수찬관 지제고(正議大夫兵部尙書翰林學士充史官修撰官知制誥)에 이르렀음. *후에 김방경으로 인하여 금자광록대부 중서령(贈金紫光祿大夫中書令)에 추증됨.
<시대상황>
몽고의 5차 침입. 비록 충주에서 좌절되고 말았지만, 더욱 잔혹하고 강력해진 침략군의 양상을 띠고 전개.
(43세) 1254년 고종41
<시대상황>
몽고의 6차 침입. 다른 어느 때보다 전쟁의 피해가 극심했던 기간이었으며 피해 횟수 또한 많았음. 이 기간동안 몽고는 주력부대를 경상도 남단과 전라도의 남단에 이르기까지 번갈아 오르내림으로써 강화도 정부를 혼란에 빠뜨렸고, 또한 해도를 직접 공략함.
(44세) 1255년 고종42
△ 세째딸 태어남. *후에 권윤명에게 출가함.<김방경 묘지명> 권윤명의 딸은 광산인 김진에게 출가함. 그 기록이 <1300년대 광산김씨 김련-김진 호구단자>에 실려 광산김씨 족보(1932년 간행)에 실려 있음.
*김방경(1212-, +죽주박씨)---1남 선(?1245-), 1녀(?1247-, +조변), 2남 흔(1250-), 2녀(?1252-, +김원충), 3녀(?1255-, +권윤명), 3남 순(1258-)
(45세) 1256년 고종43
○ 백부 김창, 2월 3일 을축일에 수태사 문하시랑(守太師門下侍郞) 평장사(平章事) 판이부사(判吏部事)로 재직하다가 별세함. 아들이 없었음. 임종시에 그의 조카 김방경(金方慶) 등에게 유언하기를 “자기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하는 것을 사절하라”고 하였음. 시호는 문간(文簡).
○ 강화도에 제포(梯浦)와 와포(瓦浦)를 방축하여 좌둔전(左屯田)을 만들고, 이포(狸浦)와 초포(草浦)를 방축하여 우둔전(右屯田)을 만들었음.
(46세) 1257년 고종44
(47세) 1258년 고종45
○ 셋째아들 순(1258-1321) 태어남. 자는 귀후(歸厚).
*후에 허공의 둘째딸(1265-)과 결혼하여 1녀(?1280-, +정책), 2녀(?1282-, +백이정), 3녀(?1283-, +별리가불화), 1영돈(1285-), 2사순(?1288-), 3영휘(?1290-), 4영후(1292-)를 낳음.
*김방경(1212-, +죽주박씨)---1남 선(?1245-), 1녀(?1247-, +조변), 2남 흔(1250-), 2녀(?1252-, +김원충), 3녀(?1255-, +권윤명), 3남 순(1258-)
<시대상황>
3월 대사성 유경(柳璥)과 별장 김인준(金仁俊)이 '최의'를 살해함으로써 최씨정권이 무너짐. 표면상으로는 왕권이 복구되었으나, 실권은 여전히 김준과 임연(林衍)부자에게 있었다.
(48세) 1259년 고종46 (원종원년)
<시대상황>
/4대 뭉케 카안, 1259년 여름 남송 정복전을 지휘하던 중 전선에서 병사
/고종은 여러 차례의 강화교섭 끝에 1259년 몽고와 강화를 청하기 위하여 태자 전(뒤의 元宗)을 몽고에 보냈다.
/원종 1259년 강화를 청하기 위하여 몽고에 갔다가 그해 고종이 죽자 이듬해 귀국하여 강안전(康安殿)에서 즉위하였다.
1260년 (49세) 원종1
○ 대장군(大將軍) 역임. 太孫(뒤의 충렬왕)에 의해 將軍 김승준 등과 함께 출배별감(出排別監)이 됨.
<시대상황>
/1260년 왕자 심(諶, 훗날 충렬왕)을 태자에 책봉하였다.
/5대 뭉케 카안의 동생 쿠빌라이, 1260년 내몽골의 금련천(金蓮川 초원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스스로 ‘카안’이 됨. 쿠빌라이의 즉위를 계기로 원의 이민족 지배방식은 더욱 분명한 추세로 변화하여 이른바 '한법으로 한지를 다스리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어 해당지역의 풍속과 제도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간접적인 통치방식으로 크게 전환됨.
1261년 (50세) 원종2
1262년 (51세) 원종3
△ 손녀(첫째아들 김선의 1녀) 태어남. *후에 나윤 에게 출가함.
*김선(?1245-, +설인검의 딸)---1녀(?1262-, +나윤), 1자(?1265-), 2승용(1268-), 3승택(?1271-), 4승우(?1274-)
1263년 (52세) 원종4
○ 大將軍에 또 배명됨.
○ 진도(珍島)에 출몰한 왜구를 섬멸하고 돌아옴.
*후에 1280년(충렬왕 6) 5월에는 대장군 한희유(韓希愈, ?∼1306)와 함께 고성(固城)·칠포(漆浦)에 침입한 왜적을 방비하는 책임을 맡게 됨.
○ 지합문형부사와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로 제수되고 선군별감사를 겸함. 좌승선(左承宣)으로 있던 유천우(兪千遇)와 다툼이 있었음.
*유천우는 마음속으로 이 일을 아주 언짢게 생각하고 무릇 김방경의 일가 친척으로서 벼슬살이를 하려는 자가 있으면 그때마다 구실을 붙여 벼슬을 하지 못하게 하였으나 김방경은 그런 것쯤은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였음.
<시대상황>
/원종, 1263년 홍저·곽왕부(郭王府) 등을 일본에 보내 일본으로 하여금 해적이 고려를 침범하는 것을 단속하여 주도록 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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