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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외갓댁, 고모댁 (4) 공암(양천)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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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10-24 16:16 조회1,6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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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양천)허씨

 

허씨(許氏)는 연원을 멀리 가락국 김수로왕의 비(妃) 허황옥(許黃玉)에 두고 있다.
허황옥은 원래 인도(印度)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서16세(서기48년)때 배를 타고
지금의 경남 창원시 웅동면 용원리에 있는 부인당(夫人唐)으로 들어와 정박을 했는데
김수로왕이 의장(儀仗)을 갖추어 영접한 후 왕비로 맞이했다고 한다.

그 후 아들 10명을 낳았는데, 맏아들 거등(居登)은 김씨로 왕통을 잇게 하고,
두 아들은 허황후의 뜻을 살려 허씨(許氏)로 사성(賜姓)했으며,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歸依)하여 하동칠불(河東七佛)로 성불(成佛)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허황후의 30세손인 허선문(許宣文)의 후손은 공암(孔巖:양천), 허사문(許士文)의 후손은
태인(泰仁), 33세손 허강안(許康安)의 후손은 하양(河陽), 35세손 허염(許琰)의 후손은 김해(金海)로
분관(分貫)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그러니까 김해김씨는 부성(父姓), 허씨는 모성을
각각 계승했다고 하여 오늘날에도 두 성씨는 상혼(相婚)을 피하고 있다.

허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 5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그것은 세거지(世居地)일 뿐이며
현존하는 본관은 양천(陽川)·하양(河陽)·김해(金海)·태인(泰仁) 4본이 관향으로 되어 있다.

양천허씨는 조선조에서 20대 명족(名族)으로 손꼽혔으며 비록
많지 않은 인구로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명문으로서의 지위를 굳혀왔다.

또 인천이씨(仁川李氏)도 허씨에서 갈려나온 성씨이다.
신라 경덕왕(756년)때 허기(許奇)가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을 때 마침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현종(玄宗)을 호종하여 그 공으로 당나라 황실의 성(姓)인〈李氏〉를 사성받고
소성백(邵城伯:소성은 지금의 仁川)에 봉해져 인천이씨의 연원을
이루게 되었다.

 

양천허씨인물들

*대단한 집안입니다...

 

시조1세 허선문 2세 허현(소부소감) 3세 허원(예빈송경) 4세허정(예부시랑). 5세허재(평장사)6세허순(공부상서7세허이섭(전구서령)

8세허경(좌복야)9세허수(예부상서)10세허공(문경공)11세허관(좌랑)12허백(양천군)13허경(지신사)14허금(야당공)17세허유례(공신)

18세 허종(우의정),허침(좌의정)허집(호당)19세허세린(청백리)허광(공신)허상(공신)허굉(장신)허자(호당)20세허엽(호당)허준(공신)

허담(청백리)허항(호당)21세허성(문장가)허봉(문장가)허균(문장가)허난설헌(문장가)허적(공신)허계(공신)

22세허적(영의정)허욱(좌의정허선(공신))허후(서화가)허목(우의정)허의(서화가)허서(서화가)23세허대인(공신)26허정(청백리)

30세허전(성리학자)31세허련(서화가)32허영(서화가)33세허건(서화가)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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