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병사공 김윤종의 배위 본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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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12-07 09:46 조회1,366회 댓글3건본문
이왕섭씨의 지적이 맞습니다.
동시대에 동명이인이 있었음도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일 할 수 있었구요
상주김씨 김윤종은 대사성을 지낸 김식의 수제자인 분입니다. 해동잡록에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이 때문에 좀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습니다.
우선 김윤종의 아버님은 김禮生임을 밝혀둡니다.
(김구용-김명리-김맹헌-김자양-김예생-김윤종-김진기-김대섭-김확.....)
청도군수를 지내셨고 증 병조참판이십니다.
김윤종의 배위는 장령 김영수의 따님도 맞습니다.
처조부는 김계권, 처증조부는 김삼근 이라고
우리 족보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풍산김씨라고 된 것도 맞다고 생각됩니다.
당시에나 오늘날에도 선.후 안동김씨가 통혼하고 지냈기에
후안동에서는 우리 (선)안동김씨을 상락김씨, 또는 사촌김씨라고도 써왔습니다.
배위를 그냥 안동김씨라고 쓰면 동성동본끼리 혼인한 것 같이 보이기도 하니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였기도 하고, 당시에는 지역마다 본관이 아닌 집성촌명를 써서 불린 것이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학봉집안인 의성김씨도 천전마을의 이름을 따 내앞김씨라고도 했구요
당시에는 후안동김씨에서는( 선)안동김씨를 현지에서는 상락김씨, 사촌김씨라고 불렸던 여리 기록이
남아 있고, 현재도 그리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 안동김문에서도 후안동김씨의 따님을 맞이하여 본관을 또 안동김씨라
표현하기가 이상해서 후안동김씨의 본산이며 집성촌인 풍산을 따 풍산김씨라 썼을 수도 있구요,
당시에는 일부지역에서 후안동김씨를 풍산김씨라 칭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부는 장동김씨라 불렸듯이 말입니다.
그 근거로 당시에 세운 비갈에 분명히 풍산김씨라 되어 있고 족보에도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는 풍산김씨도 또 있기에 혼동되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안동김씨에서도 묘비나 족보에 당시명칭인 상락김씨를
안동김씨나 선(구)안동김씨라 바꾸지 않듯히 우리 안동김문에서도
당시에 풍산김씨라고 비석에 새기고 족보에도 그렇게 기록한 것을
고치는 것도 많은 생각을 해 봐야 하리라 믿습니다.
좋을 지적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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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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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최근에도 글이 올라왔듯이, 안동지역에서는 우리 종친뿐만 아니라 타성인들까지도 상락김씨, 화산김씨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고 일반적인 듯합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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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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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우리 안동김씨를 이르는 호칭
안동, 복주, 상락, 영가, 화산...
이왕섭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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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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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안동(安東)은 고창(古昌), 영가(永嘉), 상락(上洛), 화산(花山), 화천(花川), 길주(吉州), 길천(吉川), 길창(吉昌), 복주(福州), 복성(福城), 능라(綾羅), 고령(古寧), 석릉(石陵), 현복(玄福) 등으로 불리웠습니다.
이에 안동김씨를 달리 부르는 말도 상락김씨, 영가김씨, 화산김씨, 사촌김씨(沙村金氏) 등이 있었습니다.
저의 견해로는 솔내 영환님이 예를 들었던 집성촌명을 따라서 관향으로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인 것으로 보입니다.
가령 후안동김씨의 집성촌인 풍산지역의 이름을 좇아 풍산김씨라 했을 수 도 있다는 이야기는, 계보학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퍽 낯선 느낌일 것입니다.
신안동김씨 세도가문을 장동김씨라 칭하나, 이를 여러 성관의 보첩에서는 장동김씨라 기록하지 않는 것은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일 것입니다.
의성김씨도 마찬가지로 천전마을의 이름을 따 내앞김씨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이를 타성관의 보첩에서 기록할 적에 내앞김씨 등으로 표시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