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영가지>와 고산정 기록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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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6-03-12 15:37 조회1,270회 댓글0건본문
지난 연말 <충렬공 유허비 옛 좌대 임시 이건(移建) 행사>에서 기록을 담당하고 보고서를 작성한 윤식입니다. 여러 모로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잘못된 곳을 지적해 주신 진창 종친님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아울러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머리 숙여 사죄드리며, 오류가 발생하였다면 보고서를 작성한 제게 있습니다. 다만, 보고서 내용 중 지적해 주신 부분을 다시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금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중이라 <영가지>는 볼 수 있으나, <국역 영가지>는 집에 있어서 확인하기가 곤란합니다. 저녁 늦게야 집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국역본에 대해서는 저녁때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행사 후 보고서를 작성할 당시 혹시라도 오류가 발생할까 두려워 <영가지>와 <국역 영가지>를 찾아보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보고서에 쓴 고산정 관련 부분입니다. 이 부분과 <영가지>의 해당 부분을 비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거듭 감사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도 끊임없는 질정을 바랍니다.
우리 일행은 상고산으로 올라가 충렬공께서 낙동강을 완상하시던 고산정(孤山亭)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상락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를 중심으로 상고산을 샅샅이 뒤졌으나 700여 년 전의 일이라 단 한 번의 시도로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낙동강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 고산정 터이겠으나, <영가지>에 “외로운 산이 강과 시내가 합치는 곳에 있으니 여기가 충렬공(忠烈公)이 정자를 지은 곳이다.”라 기록돼 있으니 혹시 회곡리의 실개울이 낙동강으로 빠져나가는 곳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여하튼 한 번으로는 부족한 일이고 여러 번 발걸음을 하다 보면 고산정 자리도 찾으리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추기>
<국역 영가지> 또한 고산정과 관련한 기록은 동일합니다. 충렬공께서 고산에 정자를 세우셨다는 두 곳 기록이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주회 대부님께서 먼저 답변하셨기에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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