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문온공의 교류인물(6)제정 이달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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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6-19 15:37 조회1,666회 댓글0건본문
이달충(李達衷) ?∼1385(우왕 11). 고려말의 유학자·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중(止中), 호는 제정(霽亭). 첨의참리(僉議參理) 천(蒨)의 아들이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를 거쳐서 공민왕 때 전리판서(典理判書)·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하였다. 1359년(공민왕 8) 호부상서로 동북면병마사가 되었다. 호부상서로 있던 1360년 팔관회 때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면되었으나, 훌륭한 학자였으므로 1366년에 밀직제학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신돈이 전횡하던 때에 그에게 주색을 일삼는다고 공석에서 직언한 것이 화근이 되어 다시 파면되었다. 신돈이 주살(誅殺)된 뒤에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고, 1385년(우왕11)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저서로는 《제정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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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海來登萬景臺(관해래등만경대) 바다보러 만경대에 오르니
雲濤煙浪接天來(운도연랑접천래) 구름, 파도, 안개, 물결이 하늘에 닿아 있네
若將此水變春酒(약장차수변춘주) 장차 이 물로 술을 만들어 봄에 마신다면
何止日傾三百盃(하지일경삼백배) 어찌 하루에 삼백 잔만 기울이겠는가
고려 후기의 문인 이달충의 <제정집(霽亭集)>에 나오는 시이다.
만경대는 강원도 고성 청간정 북쪽 해문안벽(海門岸壁)에 있다고 전한다.
만경(萬景)이란 온갖 경치를 뜻하니, 그 이름만으로도 절경이 어떠했는지 상상이 간다.
시인은 바다를 보기 위해 먼 걸음을 한다.
만경대에 올라보니 구름과 파도, 안개와 물결이 한데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보여준다.
일망무제(一望無際)의 경지 그 자체로다.
마치 하늘에 맞닿아 있는 듯한 절경에 시인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상상력은 엉뚱한(?) 데로 이동한다.
이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 바닷물 또한 예사롭지 않을 터이니
이 물로 술을 담가 봄에 마신다면 그 맛 또한 일품이 아니겠는가.
하루에 삼백 잔만 기울일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는 시인의 호탕한 기세가 시원하다
山村雜詠(산촌잡영) 이달충
산촌은 참으로 쓸쓸한 벽지 / 山村信荒僻
인간 세상과는 수풀을 격하였네 / 人境隔林坰
나무가 썩어서 움이 피어나고 / 木腐亦生蘗
송진이 흘러 흔히 복령이 되네 / 松肪多化苓
달팽이는 다니면서 뿔 드러내며 / 行蝸頭角露
참새들은 싸와서 깃 떨어지고 / 鬪雀羽毛零
늙은 덩굴 비껴 벋어 돌을 휘감고 / 老蔓斜纏石
아지랑이 가물가물 하늘 향하고 / 遊絲向入冥
위태로운 사다리가 붉고 푸른 벼랑에 통하며 / 梯危通紫翠
기나긴 흠대가 맑고 찬 샘물을 끌고 / 筧遠引淸泠
촌 무당이 번역하는 신령님 말씀 / 村覡譯神語
시골 중이 자랑하는 부처님 영험 / 野髠誇佛靈
교미에 새로 나온 쌀알이 희고 / 菰蒲新薦白
움벼를 베어 오니 꼴이 푸르네 / 䄶楖輭芻靑
단풍 옹이 찍어다가 그릇 만들고 / 楓癭斸爲器
도토리 살쪘으니 삶아 밥 대신 / 橡肥收可
시냇가엔 돌부리 삐죽삐죽 / 幽蹊橫石角
얕은 물엔 모래 벌판 반짝반짝 / 小渚閃沙星
파란 나무는 둥그란 일산 받은 듯 / 綠樹圑如蓋
푸른 산은 빙 둘러 병풍 친 듯 / 靑山擁似屏
가을 소리는 귀뚜라미가 지꺼려대고 / 秋聲喧蟋蟀
햇빛에는 잠자리가 번득거리고 / 日色耿蜻蜓
풀 베고 샘 줄을 찾아보기도 / 薙草索泉脈
초가는 지형 따라 얽었네 / 結茆隨地形
보리밥 그릇에 피가 반 섞이 / 飯粗雜稗
여뀌풀 저림 속에 마름도 끼고 / 鹽漬蓼和萍
누런 송아지 채소밭의 울타리 받고 / 黃犢觸樊圃
새파란 새가 물가 정자에 오르네 / 翠禽登水亭
밭갈이 날자는 육갑을 짚고 / 山耕唯六甲
호역은 한 집에 세 남정이나 / 戶役至三丁
소나무는 어려서 바람 가늘고 / 松穉細吹籟
난초는 외로워서 향기 가늘어 / 蘭孤微吐馨
빈 골짝에 산울림이 윙윙 울리고谷虛谹歷歷
어둔 숲엔 도깨비불 깜빡거리네 / 林暗燐熒熒
짚신 신은 농부와 앉을 자리를 혹 다투기도 / 芒屩或爭席
도롱이 입은 이가 문을 자주 두드리기도 / 荷衣頻扣扄
질뚝배기에 들고 오는 허연 막걸리 / 陶罌提白釅
버들 바구니에 담아 오는 시뻘건 생선 / 柳篚挈紅鯹
이즘은 전쟁이 잠깐 멎어서 / 近者軍征歇
거의 세상이 편안해지니 / 幾乎世運寧
진정에 가 울음 울 필요가 없고 / 泰庭安用哭
초택에서 구태여 깰 것도 없네 / 楚澤不須醒
은혜로운 우로가 말랐던 민생을 축여 주고 / 恩露潤枯朽
요망한 안개는 사라졌거니 / 妖氛收晦冥
외로운 성은 봉궐에 매달렸고 / 孤忠懸鳳闕
장한 뜻은 바다의 붕새 같은데 / 壯志溢鵬溟
태평성대 좋은 날을 보게 되니 / 獲覩大平日
임금님 천만세를 봉축하옵네 / 祝君千萬齡
[주D-002]초택(楚澤) : 전국(戰國) 때 초(楚) 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참소를 만나 쫓겨나 못가에 다니며 읊어 어부사(漁父辭)를 지었는데, 깨끗한 자기의 외로운 절개를 표시하기를 “뭇사람들 다 취하나 나는 홀로 깨었네.” 하는 구절이 있다.
고려 말 이달충(李達衷)의 '산촌잡영'(山村雜詠)이란 시에는 '여귀풀에 마름을 넣어 소금 절임을 하였다'는 구절이 있어
김치류 야생초를 이용하여 제철 김치의 맛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또 '목은집'(牧隱潗)에도 '침채'(沈菜), '산개염채'(山芥鹽菜),
'장과'(藏瓜, 된장에 담근 오이 장아찌) 등의 표현이 나온다.
여기에서 김치란 우리말의 직접적인 한자 표기인 '침채'(沈菜)가 선보이며, 장아찌가 문헌상으로 처음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한편 고려사 예지에는 `근저(미나리 김치)', `구저(부추김치)', `청저(나박김치)', `순저(죽순김치)' 등의 김치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제향음식(祭享飮食)과 관련된 김치류 외에도 더 많은 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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