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소년들은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크다고 한다. 아마도 최근 10년간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는 IT강국, 월드컵 신화, 아시아 한류와 같은 기쁜 소식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이라 짐작해본다. 이러한 현상은 매우 고무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조금 불안한 감이 없지 않다. 혹시 그들은 '대한민국'을 하나의 브랜드와 같은 허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직시하는 날에는 다시금 위축되는 것은 아닐런지 염려된다. 비록 우리의 역사는 '고난'이란 단어로 압축되긴 하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백범 김구와 같은 민족의 스승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일생에 존경할 수 있는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 큰 복일진대 전 국민이 존경할 수 있는 겨레의 큰 스승이 있다는 것은 일국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백범일지>는 한국인이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국보급 자산임에 틀림없다. 또한 <백범일지>는 청소년 필독서로 유명한데, 상편이 김구가 53세 되던 해에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회고하며 두 아들에게 쓴 편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역사에 문외한인 청소년에게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손꼽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 하겠다.
하편에서는 칠순을 앞둔 망명가로서 남긴 회고록인데, 그의 정치적 이념과 철학이 기록되어 있어 세월이 지나 시대가 바뀌어도 빛을 잃지 않고 지금껏 전국민에게 읽히고 있다. 그 중 '나의 소원'에 나오는 것으로, 한때 종이에 적어 들고 다니면서 외울 정도로 아꼈던 구절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높은 문화의 힘으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염원하는 백범의 애국심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백범은 진정한 '독립'이란 우리의 철학을 찾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여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과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하고 남을 의뢰하고 저희끼리는 추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14쪽)
문화의 힘이란, 철학과 사상에서 나오는 것이며 철학과 사상은 불변하는 진리에 대한 체득과 확신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그가 독립운동과 더불어 민중교육에 힘썼던 이유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나는 이것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품어야 할 애국의 길이며 백범이 우리에게 물려준 정신적 유산이라 굳게 믿는다.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큰 스승을 만나보세요, 책 속 밑줄 긋기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여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과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하고 남을 의뢰하고 저희끼리는 추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나는 내가 못난 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해온 것이다. 이것이 내 생애요, 내 생애의 기록이 이 책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책을 발행하는 데 동의한 것은 내가 잘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못난 한 사람이 민족의 한 분자로 살아간 기록으로서이다. 백범(白凡)이라는 내 호가 이것을 의미한다. 내가 만일 민족독립운동에 조금이라도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만한 것은 대한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得樹攀枝無足奇),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라 할 수 있다(懸崖撒手丈夫兒).
사람의 일은 모름지기 밝고 떳떳하여야 하오. 그래야 사나 죽으나 값이 있지, 세상을 속이고 구차히 사는 것은 사나이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오.
나부터 망국의 치욕을 당하고 나라 없는 아픔을 느끼나, 사람이 사랑하는 자식을 잃으면 슬퍼하면서도 살아날 것 같은 생각이 나는 것처럼, 나라가 망하였으나 국민이 일치 분발하면 곧 국권이 회복될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렇게 하려면 후세들의 애국심을 앙양하여 장래에 광복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되어, 계속하여 양산학교를 확장하고 중소학부에 학생을 늘려 모집하면서 교장의 임무를 다했다.
구(龜)를 구(九)로 고친 것은 왜의 민적(民籍)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요, 연하(蓮下)를 백범으로 고친 것은 감옥에서 여러 해 연구에 의해 우리나라 하등사회, 곧 백정(白丁) 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복역 중에 뜰을 쓸 때나 유리창을 닦고 할 때는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우리도 어느 때 독립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는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窓戶)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 달라'고. (267쪽)
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며, 죽으려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
나의 신조는 "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로 인하여 종종 해를 당하면서도 천성이라 평생 고치지 못하였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개인의 생활이 국법에 속박되는 것은 자유 있는 나라나 자유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 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개인, 또는 일계급에서 온다. 일개인에서 오는 것을 전제 또는 독재라 하고, 일계급에서 오는 것을 계급독재라 하고 통칭 파쇼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