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적인 낭만과 섬나라 문화가 고루 배어나는 섬 ‘쓰시마(對馬島)’. 일본 본토와의 직선거리는 147km이지만 한국과는 49.5km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다.
섬 전체의 89%가 산악지대로 울창한 원시림에 덮여 있고 특히 예부터 한반도와 인적, 물적 교류의 창구로서 우리나라와 관련된 문화유적이 잘 보전돼 있어 오히려 한국인에겐 너무나 한국적인 ‘역사의 섬’인 반면 일본인에겐 멀고 작은 ‘국경의 섬’이다.
이런 쓰시마에 최근 들어 한국관광객들로 북적댄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이후 생긴 현상이다.
◆시라다케 산(白嶽山`513.3m)을 오르다 쓰시마는 상도(카미노시마)와 하도(시모노시마)로 연결된 섬이다. 이 중 하도의 이즈하라시 인근 시라다케 산은 유일하게 정상이 거대한 바위로 이뤄진 산세를 띠고 있다. 이즈하라시에서 차량으로 20여 분 이동한 후 시라다케 산 들머리인 카미자카에서 등산이시작된다.
시라다케 산 속 공기는 맑고 청량했다. 하늘을 찌르듯 쭉쭉 뻗은 삼나무와 측백나무들이 좌우로 도열한 등산로는 깨끗하고 거의 평지에 가깝다. 50년 조림사업의 결과다. 누군가가 부러운 듯 “자를 대고 오려낸 듯이 곧게 뻗었네.”라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렇게 30여 분 동안 숲 속을 산책하듯 걸은 후에서야 첫 오르막이 나오지만 그것도 잠시다. 완만한 경사가 이어지더니 다시 평지이다. 산을 오르는 것인지 숲길을 걷는 것인지 착각에 빠진다. 다만 빽빽한 삼나무 사이로 갈라져 비치는 햇살이 이국적 산행정취를 느끼게 한다.
입산 1시간 10여분. 이번엔 내리막길이다. 주변도 조림과 자연림이 섞여 있다. 원시림지대의 시작점이다. 좁아진 등산로 옆엔 조림과 자연림지대를 구분하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아니 등산로에 웬 철조망?’.
의아하게 생각하던 차에 시라다케 신사(神社)가 나타났다. 신사래야 토리이(鳥居`신사를 나타내는 표석)에 금줄만 처져 있는 형태다. 신사의 나라다웠다.
본격 등산은 여기부터다. 주변 나무도 아름드리 원시거목과 손가락 굵기의 잔 나무들이 엉켜있다. 오직 자연의 혹독한 선택논리를 견뎌낸 나무들만 하늘로 솟고 있었다.
코에 닿을 듯이 경사진 등산로는 몇 발자국 옮기지 않아 숨이 찬다. 돌과 드러난 거목의 뿌리가 자연계단 턱을 만들고 있다. 계속되는 ‘할딱’ 고갯길. 경사도 점점 가파르다. 두발에 의지하던 등산로는 어느 새 양손까지 동원해야 올라 갈 수 있다. 군데군데 걸려 있는 밧줄을 당기지 않으면 걸음이 어렵다. 땀이 흥건히 배어났다. 이렇게 30여 분이 지나자 정상바위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바위 옆을 돌아 예닐곱 평 넓이의 정상에 섰다. 한 숨을 돌리고 주위를 돌아보니 발 아래로 원시림의 낮은 산봉우리들이 올록볼록 펼쳐진다. 그 울창함이 한 눈에 봐도 건강한 숲임을 알 수 있다. 저 멀리 리아스식 해안이 그려내는 섬 곡선도 장관이다.
정상 쾌감을 뒤로 하고 하산길에 접어들어 시라다케 산 날머리인 스모까지는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총 등산 시간은 3시간 30여 분. 하산 후 유타리(湯多里) 온천에 몸을 담그자 확 트인 온천창가로 오렌지 빛 남국의 석양이 피로감을 씻어낸다.
◆이즈하라(嚴原)시 ‘일본 속 한국의 발자취’ ▷이왕종가백작가어결혼봉축비(李王宗家伯爵家御結婚奉祝記念碑)=대한제국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와 당시 대마도주의 아들인 소오다케유키(宗武志)와의 결혼을 기념한 이 봉축비는 기울어가던 국운 속에서 정략적으로 결혼했고 또 이혼한 왕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조선통신사비=17세기 초 임진왜란 직후 도쿠가와 이에야스 신정권은 조선과의 우호관계를 위해 사절단 파견을 요청하게 되고 이에 조선은 대규모 통신사절단을 파견하기 시작한다. 쇼균 즉위식 때마다 300~500명에 이르는 대규모 조선 통신사절단의 길 안내와 외교일정은 모두가 대마도주였던 소오(宗)가에서 전담하게 됐고 이를 기념하기위해 세운 비이다. 통신사절단의 일정은 1년이 걸렸던 대장정이었으며 당시 일본으로선 최대의 외교행사였다.
▷대마역사민속자료관=600년간 대마도를 통치했던 소오씨 가문 문고사료를 비롯해 고려판 대반야경, 고려청자 및 조선통신사 행렬도 등 양국 교류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적 유물이 보관, 전시돼 있다. 특히 양국간 외교의 가교역을 했던 조선어 통역관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의 초상화와 그가 남긴 외교에서의 태도를 요약한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국가간 사귐은 몸과 마음 다한 깊은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은 오늘날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선사(修善寺)=백제식의 절로 대한제국 말기 항일운동에 앞장서다 일본에서 순국한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모셔져 있다.
◆이즈하라(하도)~히타카츠(상도)간 이동 중 볼거리 ▷만제키바시(萬聯橋)=원래 하나였던 쓰시마의 가장 좁은 폭을 일본제국군이 운하를 파 해협을 만들고 그 위에 놓은 다리. 간조와 만조 때 다리위에서 보는 조류의 소용돌이와 주변 경관이 절찬을 받는다.
▷와타즈미 신사=일본에서 몇안되는 바다 수호신을 모신 해변신사. 신사 건물 앞에 암수로 놓인 고려견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에보시타케 전망대=60m의 계단을 오르면 아소만의 풍경을 파노라마식으로 볼 수 있다. 일몰 풍경이 유명하다.
▷한국전망대=쓰시마 최북단에 위치한 전망대로 팔각정 형태의 이 건물은 설계부터 완공까지 한국자재와 전문가의 조언으로 지어진 한국풍 건물이다. 날씨가 좋을 땐 육안으로도 부산이 희미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