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1526년 해주 부용당을 개건한 김공망(金公望, 1482∼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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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8-22 22:17 조회1,750회 댓글1건본문
■ 황해도청 芙蓉堂 개축
芙蓉堂 : 堂在海州客館西牧使김공망改建송시열撰記 <林下筆記 : 李裕元(1814~1888)>
芙蓉堂 : 황해도청 뜰에 있는 海西 8경의 하나다. 조선조 연산군 6년 목사 尹哲과 판관 鄭子芝가 창건했고, 중종21년 목사 金公望이 개축하면서 堂을 연못 안에 지었다. 연꽃이 활짝 피는 여름에는 그 淸楚한 모습이 물에 비치어 더욱 아름답다. 도청앞 뜰안에 있는 芙蓉堂은 연산군 6년에 목사 尹哲, 판관 鄭子芝가 지었고 25년 후인 중종21년에 목사 金公望이 개건했다. 건축의 규모가 宏大(굉대)하고도 優雅(우아) 典麗(전려)하여 韓--- 부용당이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진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의 일이었다. 즉 왜란때 의주로 피난갔던 선조는 서울이 수복된 뒤에도 還都할 마음이 내키지 않아 해주에 들러 이 부용당에서 1개월 여 머루는 것을 비롯, 여기서 멀지않은 州民 집에서 선조의 손자 인조가 탄생하는 등 해주가 왕실, 정부와 깊은 인연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황해도지 (1982.1)>
■ 김공망(金公望, 1482(성종 13) ∼ 1528(중종 2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위수(渭수). 오위 부장(五衛副將) 김성(金城, 1451~1487)의 세 아들 공량(公亮), 공석(公奭), 공망(公望)중 막내 아들로 1482년 태어났다. 어머니는 임치(任治)의 딸로 예조 판서(禮曹判書) 성현(成俔)의 외손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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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3년(중종18)에 상복(喪服)을 벗고 군자감(軍資監)과 장악원(掌樂院)의 첨정(僉正)이 되었으며, 조금 있다가 사도시 정(司導寺正)으로서 외직으로 나가 해주목사(海州牧使)가 되었는데, 공부(貢賦)를 탕감하여 민생을 안정시켰고, 형옥(刑獄)을 공평히 처리하여 도내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인근 고을의 수령 중에서 사욕을 취하고자 하여도 김공망이 알고 있다면 두려워할 정도였다고 한다. 1526년(중종21) 목사 김공망(金公望)이 해주 객관을 개축하면서 부용당(芙蓉堂, 황해도청 뜰에 있는 海西 8경의 하나)을 연못 안에 지었다. 연꽃이 활짝 피는 여름에는 그 淸楚한 모습이 물에 비치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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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조선문과방목>, <이암집>(송인), <국조인물고>, <대동금석서>, <우암집>(김주), <임하필기>(이유원), <황해도지, 1982>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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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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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아하, 해주의 부용당을 김공망 선조님이 개건하셨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