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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김구만 선조님께 전하는 만시 번역문-수정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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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작성일06-09-09 17:25 조회1,49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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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 김구만 선조님께 전하는 만시 에서 오류가 있어서 지

 

적하오니 검토하여 수정바랍니다

 

우선 만사의 작자와 당사자가 바뀌었다고 봅니다

 

근거:1)김구만(1632-1699) 이원록(박곡)(1629-1688)->박곡

 

        의 몰년이 앞섬으로 작자가 될수없음

 

 

          2)만사 내용중 주인공이 60세에 운명 <이원록(1629-

 

1688)>한점->宜壽只六旬-마땅히 장수하리라 여겼건만 다만 60세이런가

      3)이원록이 대사헌을 여러차례 역임한점 ->威餘柏府霜-사헌부엔 서리발 같은 위엄이 남아 있고

 

결론:이원록(내재종형)의 영전에 김구만 선조님이 바친 만사 내용이

       박곡집(이원록 문집)에 수록되어 전해온 것으로 추론 할 수 있음

 

      참고로 박곡선생문집은 1997년 韓國文集編纂委員會에서 경인문화사刊 영인본으로 출판 하여 서울 퇴계기념중앙도서관에서 열람가능

 

이원록(李元祿) 활동시기 : 조선시대 본관 : 광주(廣州) 출생일 : 1692년(인조 7년) 사망일 : 1668년(숙종 14년) 출생지 : 1692년(인조 7년) 시대 : 조선시대 bar-ver2.gif button-large.gif button-multi.gif button-pvr.gif sub-icon8.gif 설명 도장의 차자, 판서 원정의 제, 미수 허목의 문인, 1651년(효종2) 생원시에 장원하고 세마, 시직을 거쳐 1663년(현종4) 식년문과에 을과급제하여 이천, 장연부사를 지내고 1675년(숙종1)에 의주부윤으로 나아갔다.

그 후 예조, 병조참의, 좌승지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도중 환진으로 개차되고 이어 함경도관찰사, 호조참판대사간과 대사헌을 지냈다. 청렴결백하여 대사헌을 다섯차레나 연임하고 모상에 3년동안 시묘하였다.

이천에 재임시는 세도가 영상이 고을 옥토를 사유화하려는 것을 엄정히 바로잡고 이로 인해 사직하게 되자 백성들이 유애비를 세웠다. 묵헌 이만운이 지은 묘비문과 문집 `박곡집'이 있다.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윤
작성일

  위 이원록 인물 소개란의 출생년 1692년은 1629년의, 사망년 1668년은 1688년의 誤記인것 같습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감사합니다. 저는 그동안 박곡을 호가 아닌 이름으로 보고 풀이해 왔습니다. 그리고 박곡이란 이름에 대해 조사하려했으나 어디에도 검색이 안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사의 여러 상황이 잘 맞지 않아 고민하고 있던 차입니다. 이원록의 호가 박곡이었음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좀더 다양한 인명 분석을 하지 않고 풀이한 해석의 오류였습니다. 지적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박곡에 대한 궁금까지 시원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