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사가집(서거정)'속의 김수녕 선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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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6-09-13 12:18 조회1,194회 댓글0건본문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시문집이다. 서거정은 19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25세에 관직에 오른 이후 69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화려한 관직생활로 일관하였다. 네 번이나 현양과(賢良科)에 급제하여 45년간 다섯 임금을 섬겼고, 23년간 문형(文衡)을 담당한 대문호(大文豪)이자 전형적인 대각문인(大閣文人)이다. 그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集) 또는 정정정(亭亭亭),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서거정의 증조부 익진(益進)은 고려조 말기에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를 지냈으며 조부 의(義)는 역시 고려조에서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지냈다. 이들은 고려말 1362년(공민왕 11)에 벼슬을 그만두고 난세를 피하여 경북 경산군(慶山郡) 자인면(慈仁面) 아방곡(餓防谷)에 은거하면서 백이 숙제(伯夷叔齊)의 절개를 지켰다. 그러다가 서거정의 아버지 미성(彌性)이 다시 출사하여 조선조에서 안주목사(安州牧使)를 지냈으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따님이다. 2남 5녀 중 둘째 아들이며 남매 중에서는 막내이다. 서거정의 형인 거광(居廣)은 1444년(세종 26) 서거정이 문과 급제하던 그해에 무과에 급제하여 언양군수(彦陽郡守)를 지냈다. 또 서거정의 다섯 자형(姊兄) 중에 넷째가 최항(崔恒)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 사제감직장(司宰監直長)을 지냈다.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 후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 등을 거쳐 1456년(세조 2)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1457년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 공조참의 등을 역임했다.
1460년 이조참의 때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에 올랐으며, 1464년 조선시대 최초로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이 되었다. 1466년 다시 발영시(拔英試)에 장원한 후 육조(六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고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편찬에 참여했으며, 또 왕명을 받고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국역(國譯)했다.
성리학(性理學)을 비롯, 천문·지리·의약 등에 정통했다.
문집에 《사가집(四佳集)》 저서에 《동인시화(東人詩話)》 《동문선(東文選)》 《역대연표(歷代年表)》 《태평한화(太平閑話)》 《필원잡기(筆苑雜記)》 《골계전(滑稽傳)》이 있으며 글씨에는 《화산군권근신도비(花山君權近神道碑)》(忠州)가 있다. 대구(大邱)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현전하는 <사가집>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시집 50여 권과 문집 2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글을 남겼으나 상당 부분이 유실되어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원래의 반도 되지 않는다.
이 책의 국역대본은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간행한 한국문집총간 10.11집 소재 <사가집(四佳集)>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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