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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淸白吏) 김두남(金斗南)의 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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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6-09-27 08:51 조회1,19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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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백리(淸白吏) 김두남(金斗南)의 墓

소재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면 영덕리 하야동

규모:

개석: 115cm* 85cm* 55cm,

비신: 190cm* 65cm* 35cm

대석: 115cm* 50cm* 55cm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청백리로 유명했던 탁청헌(濯淸軒) 김두남 (1657효종8 ~ 1715숙종41)의 묘소이다. 안동인으로 고려 명상 상락공 김방경의 후손으로 1687(숙종13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에 급제하고 성균관 전적(典籍), 호조.예조.병조의 좌랑(佐郞), 사간원 정언(正言).헌납(獻納), 사헌부 감찰(監察).지평(持平).장령(掌令), 시강원 문학(文學).필선(弼善), 장악원정(掌樂院正),강원도사, 함경도경시관(京試官), 사은사서장관, 박천군수(博川郡守), 울산(蔚山). 인동(仁同). 양양부사(襄陽府使)등 4개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고 안주목사(安州牧使)로 재임시 병으로 임소(任所)에서 사망하였다.

인현왕후 폐비때 성균관에서 오두인, 박태보등 80여명의 신하들과 함께 인현왕후 폐비를 반대하는 글을 올리자 숙종의 노여움을 사 모진 고문을 받기도 했다.

자헌대부 예조판서겸지경연의금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사, 성균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추증되고 1734년(영조10) 8월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배위는 고성이씨 합부

전영의정 유척기가 비문을 짓고, 영의정 서지수가 쓰고 전면은 이조판서 조명교가 썼다.

손자는 제주목사, 삼도통제사 김영수(金永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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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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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홈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