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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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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6-09-27 17:00 조회1,171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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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본일기拓本日記

오늘은 청백리 김두남의 비문을 탁본하기 위해 용인의 묘소를 찾아가는 날이다.

간단한 도시락과 음료를 준비하고 주.과.포도 잊지 않고 챙겼다.

옛 사람들은 볕발이 좋은 날을 택하여 탁본을 한다는데, 택일을 잘 한 것인지. 선조님께서 돌바 주심인지 오늘의 볕발은 더 없이 좋은 청명한 가을 날씨다.

전영의정 유척기가 찬하고 영의정 서지수가 쓰고 이조판서 조명교가 전면을 서한 청백리(휘 두남)선조님의 기록을 판독 번역하기 위한 1차 작업이다.

오전10시 분당 이매역 5번출구를 출발한 우리 일행(재구, 발용, 태우, 항용,태영)은 필자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목적지 용인으로 달린다. 이미 지난 6월 18일날 발용님과 함께 현지 답사를 한바 있었기 때문에 찾아가는 길은 별 어려움이 없다. 잘 닦여진 도로 좌측으로 동백지구 주택단지가 보인다. ‘생거진천 사후용인’은 옛 말로 ‘생거용인’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어느새 목적지에 다가오고 용인대학교 입구로 들어서서 우측으로 진입하면 천주교 공원묘지를 지난다. 벌초작업과 앞당긴 추석성묘객등으로 천주교 묘역은 요란한 기계소리와 사람들로 분주하다.

가파른 언덕을 넘어 골짜기를 200m 정도 내려가면 남서향으로 아담하게 자리잡은 가족묘가 나타난다.

약 400여평의 묘역에 소박하게 잘 관리한 깨끗한 잔디가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날 뜻밖에도 묘역에서 잡초 제거를 하는 후손 창회瑒會종친 내외분을 만났다. 오래전에 사무관을 정년으로 공직을 마감하였다고 하신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뒤 청백리(諱 斗南)묘와 둘째아드님(諱 弘得)묘에 차례로 잔을 올리고 음복주를 한잔씩 나누어 마신다.

비(碑) 전면의 내용이 화두가 되었다.

“유명조선국 증통정대부 승정원도승지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예문관직제학, 상서원 행 통훈대부 사간원 헌납 안동김공 두남 지묘 증 숙부인 고성이씨 부좌”라고 썼는데, 청백리 선조님의 마지막 관직이 안주목사(정3품)이다 그런데 직이 낮은 사간원 헌납이라 썼다.(의문?).숙제로 남겨두고 탁본에 들어 갔다.

한지에 스미는 먹 빛 사이로 한자 한자 새겨지는 글씨, 서체를 모르는 문외한 이지만 가히 일품이다.

탁본이 이루어지는 동안 창회종친으로부터 파주에서 용인으로 이장한 내력을 듣는다. 또한 건너편 묘역에서 벌초 작업을 하시던 영회(창회종친과 4촌간)종친과 두 아드님,병수, 현수씨와 같이 오셔서 성묘를 하고 현재까지 묘를 수호해온 사연을 이야기 한다.

어느덧 시간은 가고 탁본이 완성되어 갈즈음 창회종친의 아드님 성수씨가 부모님을 모시러 왔다. 같이 기념촬영을 하고 완성된 탁본1부를 후손 창회종친에게 드리고 작별을 하였다.

우리는 둘러 앉아 남은 음식을 먹으며 오늘의 탁본행사 품평회를 하였다.

오늘의 탁본행사는 성공적이었다.

매번 그러하지만 항용선생의 꼼꼼한 탁본 준비로 어려움없이 탁본을 마칠수 있었다. 그리고 먹 방망이를 잘 두드린 태우님, 재구님, 사진촬영의 발용님 모두 모두 고생을 많이 하였다.

어둠이 내려 앉는 묘역, 코스모스의 전송을 받으며 출발한다.

                                             2006년 9월 24일(일)     태영

댓글목록

김태영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영
작성일

  후에 자헌대부 예조판서에 추증 되었지만 공 사망시에 안주목사로 임소에서 병사하였다는 유척기가 찬한 뒷면의 글로 볼때 전면의 글씨 사간원 헌납이라 표현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요?

김발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발용
작성일

  의미있는 하루였습니다.
덕분에 청백리 휘 두남 선조님에 대한 공부와 더불어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쳤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귀한 기회를 가졌습니다. 뜻깊고 보람있는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