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외갓댁 고모댁(30) 예안이씨 정간공파조李蓂(이명)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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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10-25 16:16 조회1,226회 댓글0건본문
이명신도비 [李蓂神道碑]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이명(李蓂 : 1496~1572)의 석비.
지정번호 서울유형문화재 제55호
지정연도 1983년 11월 11일
소재지 서울 노원구 월계동 산767-2
시대 조선시대
크기 높이 2.25m
분류 석비
본문
1983년에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이명의 신도비로 1574년(선조 7)에 세워졌다. 화강석으로 만든 직사각형 좌대석에 연꽃무늬가 새겨졌고 사면 둘레에는 안상문(眼象紋)이 조각되어 있으며 비석의 전체 높이는 2.25m 정도이다.
이명은 연산현감 이보간(李輔幹)의 아들로 자는 요서(堯瑞), 호는 동고(東皐)이며 시호는 정간(貞簡), 본관은 예안(禮安)이다. 1496년(연산군 2)에 태어나 1525년(중종 20)에 진사가 된 뒤 1528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548년(명종 3) 부제학(副提學)이 되었을 때 이기가 정치를 마음대로 하고 사람들을 귀양보내며 횡포를 부리자 대사헌 구수담(具壽聃)과 함께 이를 탄핵하였다. 1553년에는 이조참판(吏曹參判)이 되어 특진관(特進官)으로 경연에 참석하여 을사사화 때 화를 입은 사람의 신원을 청하여 왕의 허락을 받고 그날로 형조판서(刑曹判書)로 발탁되었다. 1564년(명종 19)에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궤장을 하사받았으며 1566년 좌의정에 올랐다.
명종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기도 했으며 뒤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비문(碑文)은 김귀영(金貴榮 : 1520~1593)이 지었으며, 글씨와 두전(頭篆)은 심충겸(沈忠謙 : 1545~1594)이 썼다.
○ 구 비(舊碑)
정간공의 신도비는 공이 서거(逝去)하신 지 2년 뒤인 선조 5년(1574) 5월에 세워졌으며 글은 대제학(大提學) 김귀영(金貴榮)이 짓고 글씨는 형조좌랑겸춘추관기사관(刑曹佐郞兼春秋館記事官) 심충겸(沈忠謙)이 썼다. 1983년 11월 11일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받아 관리되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주변 일대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1994년 12월 31일 신도비의 비각(碑閣)을 세워 앞으로 비바람에 씻기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 신 비(新碑)
신도비를 세운 후 420여년의 오랜 세월을 내려오는 동안 비바람을 맞아 글씨가 마멸(磨滅)되어 알아볼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 1983년 9월에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의 글씨를 받아 새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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