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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내자시 주부공(김고언-문온공7대손)사위 홍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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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12-06 11:49 조회1,3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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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상(洪履祥)
1549(명종 4)∼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인상(麟祥). 자는 군서(君瑞)·원례(元禮), 호는 모당(慕堂). 부사직 수(修)의 아들이다.
1573년(선조 6) 사마시를 거쳐 157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장원급제하였다.
그뒤 예조와 호조의 좌랑을 거쳐, 정언·수찬·지제교·병조정랑 등을 두루 지낸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뒤이어 이조정랑을 거쳐, 호당(湖堂)에 있을 때 왕이 유신(儒臣)들을 선발하여 경서(經書)를 교정(校正)할 때는 꼭 참여하였다.
그뒤 집의·응교를 역임하고, 태복시정(太僕寺正)이 되었다가 사간과 사인 등을 거쳐, 황해도안무사(黃海道安撫使)가 되었다.
1591년 직제학을 거쳐 동부승지가 되고, 다시 이조참의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예조참의로 옮겨 왕을 호가(扈駕)하여 서행(西行)하였고, 곧 부제학이 되었다가 성천에 도착하여 병조참의에 전임하였다.
1593년 정주에서 대사간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다시 좌승지가 되었다가 곧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비변사와 긴밀하게 연락하여 일본의 장군 고니시(小西行長)와 가토(加藤淸正) 사이의 이간을 계획, 추진하기도 하였다.
1596년 형조참판을 거쳐 대사성이 되었으나, 영남의 유생 문경호(文景虎) 등이 성혼(成渾)을 배척하는 상소를 반박하고 성혼을 두둔하다가 안동부사로 좌천되었다.
1607년 청주목사가 되고, 1609년(광해군 1) 대사헌이 되었다가 1612년에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의 일파에 몰려나서 개성유후사유후(開城留後司留後)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모당유고》가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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