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김기선의 간찰(金驥善의 簡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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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작성일07-03-07 10:57 조회1,648회 댓글0건본문
도평의공 후손이십니다
김기선(金驥善)
성명(姓名) |
김기선(金驥善) |
본관(本貫) |
안동(安東) | ||
시대(時代) |
(1806∼1884) |
자(字) |
유용(幼用) |
호(號) |
기서(沂墅) |
이력(履歷) |
澗松堂文集(문고 보관) 沂墅文集 (古一 810.819 김19耀) 金驥善 (1806∼1884) : 字 幼用, 號 沂墅, 本貫 安東. 居 義城. 石印本. - [發行地不明 : 發行處不明], 1939. 2卷1冊 ; 28x19cm. 조선 말기의 학자인 김기선의 시문집이다. 김기선의 아버지는 진사 양식(養植)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로 곤수(坤壽)의 딸이다. 큰아버지 양정(養楨)에게서 수학하였다. 1835(헌종1)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마하다가 큰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1855(철종 6)년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참사가 있은 지 120년이 지나도록 신원(伸寃)하지 못하자 이휘병(李彙炳)과 함께 영남사림을 대표하여 신원소를 올렸다. 1868(고종 5)년 서원철폐령이 내리자 김우수(金遇洙)와 함께 대궐문 밖에서 명령을 취소하도록 요구하였다. 김양범(金養範), 김석유(金奭裕)등과 강회를 열여 후진을 육성하였다. 이 문집은 1939년 후손 태훈(泰塤)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소(疏)의 「의척사고(擬斥邪疏)」는 도내의 유생을 대표해서 올린 것으로 당시 이단시되던 천주교를 배척한 상소이다. 잡저의 「동신기우문(洞神祈雨文)」은 가뭄이 들어서 흉년이 들게 되자 동신은 동민을 보호하는 신이므로 농사를 망치면 동신도 편안하게 제사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니, 비를 오게 하여 흉년을 면하게 해줄 것을 기원한 글이다. 기(記)의 「향교중수기(鄕校重修記)」는 1871년 군수 박규동(朴奎東)이 안동향교를 중수한 내력을 밝힌 것으로 군수의 치적, 향교의 연혁, 중수하게 된 동기, 중수한 뒤의 성과와 소망 등을 서술한 글이다. 이밖에 고승 운환(雲?)의 시집에 붙이는 서문이 있다. 目錄. 卷之 1. 詩. 卷之 2. 疏 ; 擬斥邪. 書 ; 與李聲仲(中振), 與李謹休(2), 與金景淵, 上柳洛坡相國. 雜著 ; 洞神祈雨文. 銘 ; 朴侯(奎東). 序 ; 送雲?山人致能, 涵弘上人詩集. 記 ; 鄕校重修, 蓮桂堂重修. 祭文 ; 祭趙進士丈(彦儒), 祭宣城李姨母, 祭竹下上舍族叔(庭瑞), 祭上舍族從(壽翼), 祭潢皐李公(彙廷), 祭內舅金公(鎭澔), 祭錦坡朴聖弼, 祭晩同族叔(範裕). 遺事 ; 先考止庵府君. 附錄 ; 三步軒記(2), 家狀, 行狀, 墓碣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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