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눌암(김찬)선조님 자료 -1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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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7-03-14 10:38 조회1,249회 댓글0건본문
채제공(蔡濟恭)
1720(숙종 46)∼1799(정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효종 때 이조판서·대제학을 지낸 유후(裕後)의 방계 5대손으로, 지중추부사 응일(膺一)의 아들이다. 홍주 출생.
1. 가계와 관력 |
1735년(영조 11) 15세로 향시에 급제한 뒤 1743년 문과정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에 임명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1748년 한림회권(翰林會圈)때에 영조의 탕평을 표방한 특명으로 선발되어 청요직인 예문관사관직을 거쳤다. 1751년에는 중인(中人)의 분산(墳山)을 탈취하였다 하여 1년 이상 삼척에 유배되었다. 1753년에 충청도암행어사로 균역법의 실시과정상의 폐단과 변방대비 문제를 진언하였다. 1755년 나주괘서사건이 일어나자 문사랑(問事郎)으로 활약하였고, 그 공로로 승정원동부승지가 제수되었다. 이후 이천도호부사·대사간을 거쳤고, 《열성지장 列聖誌狀》 편찬에 참여한 공로로 1758년에 도승지로 임명되었다. |
2. 정치편력 | |||||||||||||
이해에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가 악화되어 세자폐위의 비망기가 내려지자 죽음을 무릅쓰고 막아 이를 철회시켰는데, 이 사건으로 하여 후일 영조는 채제공을 지적하여 “진실로 나의 사심없는 신하이고 너의 충신이다.”라고 정조에게 말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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