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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육우당 터 단서 찾기 - 이존오의 고산사(孤山祠) 상량문(上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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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7-06-05 09:59 조회1,5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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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서정(鳳棲亭) 둔촌 이집

공민왕 신해(辛亥 1371)년에 신돈이 역모(逆謀)로 주살(誅殺)된 뒤에야 비로소 송경(松京:開城) 용수산 밑 현화리(玄化里) 옛 집으로 돌아와서 살았다. 이어 초명(初名) 원령(元齡)을 집(集)으로, 자(字) 성로(成老)는 호연(浩然)으로, 호(號)묵암자(墨巖子)는 둔촌(遁村)으로 각각 고치었다. 잠깐 봉순대부판전교시사(奉順大夫判典校寺事)로 있다가 벼슬을 그만두고 여주 천령현(驪州 川寧縣 : 지금의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이포)으로 물러가 살았는데 거처를 봉서정(鳳棲亭)이라 하였다.


선생은 영남에서 돌아온 뒤에 천녕강사에 우거하였는데 침류정(목은의 정자명), 육우당(척약재의 정자명) 척약재와는 서로 가까워 조석으로 만나 얘기 나누면서 만년을 보냈다. 임종에 임박하여 목은에게 시를 지어 보내기를...

환갑이 된 연래에는 백병이 침노하니,

삼복과 가을철을 누워서 보냈노라.

향산거사는 필시 아무 탈 없겠지,

나는 먼저 도솔궁으로 가려네.

(필형의 기록에서 나오다)


당세의 유학자로는

삼은: 목은, 포은, 도은

오촌: 둔촌, 향촌, 어촌, 상촌, 양촌

팔정: 둔촌, 척약재, 원재, 야당, 석탄, 롱암, 정재, 덕곡

구일: 둔촌 이집, 석탄 이양중, 금천 서견, 야은 길재, 운곡 원천석, 만육 최양, 대은 이유, 반암 민유, 처사 이온등의 훌륭한 분들이 있어 도의로 온 나라의 경중한 바가 되었었다.


*침류정(목은의 정자명)은 (염동정 흥방의 정자명)의 오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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