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제주목사를 역임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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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7-07-18 21:31 조회1,371회 댓글0건본문
김지(金志) (1569-1633)
1569(신조2)-1633(인조11). 초명은 원(愿), 자 사상(士尙), 호 망세재(忘世齋). 안렴사공 사렴(士廉)의 10세손. 화산군 주(澍)의 손자이다. 정남(正男)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숙부 후남(厚男, 초명 義男)에게 입양하였다.
김지(金志)는 수몽 정엽(守夢 鄭曄, 1563~1625) 선생을 사사(師事)하여 학문이 정심(精深)하였다. 己酉 1609년에 진사과에 급제하였고(丙午 1606년에 진사하여) 이이첨(1560~1623)을 소척(疏斥)하다가 강계에 적거(謫居)하게 되었다. 丁巳 1617년에 반유(泮儒)로서 광해 폐모론을 당하여 상소(上疏)에, 춘추(春秋) 책에 아들은 어머니를 원수로 함이 없다는 의(義)와 경전에 아버지는 비록 사랑치 아니하나 자식은 효(孝) 않을 수 없다는 말을 이끌어서 말함이 심히 강직하니 이이첨 등이 하련(?鍊)으로 옥(獄)을 만들어 여러번 형문(刑問)을 당하였으나 공의 안색이 변치 아니하고, 석서공( ? )이 가로되 신은 태학생(太學生)이라 다만 명륜(明倫) 2字만 알 뿐이라 하고 인하여 탐라로 적(謫) 보낸 7년에 호정(戶庭)에 나오지 아니하고 오직 강학(講學)하는 선비였다. 가르침을 불권(不倦)하니 제자가 백여인에 이르렀다. 또한 癸亥 1623년 인조반정 후에 풀려나 찰방 지평에 임명되었으나 불취하고 그후 대신 연주로 인하여 정충경절로 사헌부 대사헌에 특위 증직되었고 관원을 보내어 致祭하였다. <안렴사공파 문중자료> <1956 안동김씨보감>
김린
배위 천안전씨<父 부사 경(卿)>와의 사이에 5남 2녀를 두었다. 5남은 극( ), 척(擲), ▶린(鄰), 려(麗 ), 절(節)이고, 2녀는 오창(吳彰), 박간생(朴幹生)에 출가하였다.
兄 극은 생원(生員)으로 대구교수(大邱敎授, 종6품)를, 子 봉손(奉孫)은 용궁현감(龍宮縣監, 종6품)을, 孫 수현(守賢)은 서산군수(瑞山郡守, 종4품)를 역임하였고, 충북 영동 황간 회포리와 우천리, 대구시 시내 등지에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대구 지방의회의원 원회(元會)와 아들 태우(국방연구원 연구위원, 핵물리학 전문가), 대종회 활동하신 국보(國寶, 일명在國), 안양 국회의원 입후보하신 재례(在禮)와 철회(喆會, 현 안양 민주평통위원장), 정회(貞會, 현 황간향교 전교, 우천리 연화동 거주)등은 그 후손이다.
兄 척은 무후하고,
弟 려는 縣監(종6품)을, 子 철수(鐵壽)는 무 선전관(武 宣傳官)을, 孫 석령(石齡)은 제주목사(濟州牧使, 정3품)를 지냈으며, 曾孫 관(瓘)은 生員이며, 추풍령 인근 경북 김천시(옛 금릉군) 봉산면 광천리 너리골(廣洞)과 김천시 시내, 충북 영동군 황간면 회포리 등지에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弟 절은 녹사(錄事)를 지냈으나 무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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