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충렬공 추증직 명칭에 대한 오기에 대하여-고려사 원본과 대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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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7-09-13 13:02 조회1,321회 댓글0건본문
고려사 원본에서 확인한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推忠靖難定遠功臣三重大匡僉議中贊判典理司事世子師으로 치사하시고
추증으로
宣忠協謨定難靖國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으로 추증
참고자료
우리 문중에 잘못 알려진 사실들 -3- 2007 안사연 여름캠프 학술자료
5. 충렬공의 최종 관직명
충렬공의 관직명을 적을때나 부를때 우리는 어떻게 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1966년에 세운 현재의 비석에는
[高麗 推忠靖難定遠功臣 壁上三韓三重大匡 僉議中贊 世子師 上洛君開國公 諡 忠烈 金方慶 之墓]라고 되어 있습니다. 근래에 상락군개국공의 君자를 郡으로 고쳐 새겨 넣어 바로 잡았습니다.
현재 신도비에는 [上洛君忠烈公金方慶神道碑]
유허비에는 [高麗僉議中贊忠烈公上洛金先生諱方慶遺墟]
고려4대왕과 16공신을 모신 숭의전에는 [僉議令忠烈公金方慶]
시제때 현수막에는 해마다 틀려서 어느해는 [고려시중], [고려첨의중찬], [고려첨의령 충렬공 김방경장군] 등등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를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고려사에 기록을 밑바탕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고려사에 나타난 관직을 살펴보면
1273년 윤6월13일 계해 당시 최고위직은 門下侍中
1275년10월25일 임술 관제개혁으로 최고위직 僉議中贊上將軍判典理監察司事
1283년12월22일신축 推忠靖難定遠功臣三重大匡僉議中贊判典理司事世子師으로 치사
1295년 1월9일 갑인 치사때 최고관직이었던 첨의중찬보다 상위직으로 신설된 僉議令 에 봉함
8월27일 기사 上洛郡開國公의 관작을 하사
충선왕(1308-1313)때 宣忠協謨定難靖國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으로 추증 諡號를 忠烈로 봉하고 왕명으로 신도비를 세움
위의 근거로 최종 관직명인 [高麗 宣忠協謨定難靖國功臣 壁上三韓三重大匡 僉議令 上洛郡開國公 諡 忠烈 金方慶]
간단히 쓰면 [高麗 僉議令 忠烈公 金方慶] [高麗 僉議令 上洛公 金方慶] [忠烈公 金方慶] [上洛公 金方慶] 등이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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