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re] 제46회 정기산행(동구릉) 보고_04 건원릉의 지상·지하구조

페이지 정보

김윤식 작성일07-09-20 06:15 조회1,178회 댓글0건

본문

제46회 정기산행(동구릉) 보고_04 건원릉의 지상·지하구조

동구릉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동원이강’ 등 생소한 용어가 등장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진정임 선생께서 선물로 주신 <조선조 왕릉문화의 이해>(구리문화원, 박명섭 편저)에 실린 ‘동구릉의 위치와 형태’에서 관련 부분을 요약·소개합니다..

또한 왕릉의 봉분을 현궁[玄宮 임금의 관을 묻은 광중(壙中)]이라고도 하는데, 눈에 보이는 지상(地上) 부분이 사람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地下) 부분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이 부분 역시 <조선조 왕릉문화의 이해>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정리했습니다.

현궁의 지상·지하구조 중에 <국조오례의>의 국장의례와 석실 제도는 상세한 크기가 규정돼 있으나, 지나치게 세밀해 필요한 경우 외에는 생략했습니다.

■ 동구릉 산릉의 위치

산릉(山陵)의 위치는 녹(麓), 원(原), 강(岡)으로 표현한다. ‘녹’은 산의 아랫부분을 말하며, ‘원’은 아랫부분[麓] 중에서도 특히 산줄기를 가리킨다. ‘강’은 산의 아랫부분을 이루는 산줄기[原]에서 뻗어나간 산 갈래, 즉 산세(山勢)가 끊어지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강’은 평지와 닿는 곳이거나 물줄기에 의해 다른 산 갈래[岡]와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지역을 말한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무덤은 지기(地氣)가 뭉쳐 있는 혈(穴)에 만들기 때문에 왕릉의 현궁(玄宮)은 ‘강(岡)’에 조성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강’은 봉분의 위치를 표현하는 마지막 단위로서 산줄기를 기준으로 동(東)이나 서(西)로 구분한다.

동구릉의 경우에, 건원릉이 위치한 곳을 ‘원(原)’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동강(東岡)’이나 ‘서강(西岡)’이라는 위치를 표현하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동구릉이 완성된 뒤의 문헌에 보이는 능의 위치에 관한 기록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 현릉 : 재건원릉 동강(在建元陵東岡)
  • 혜릉 : 재숭릉 좌강(在崇陵左岡)
  • 목릉 : 재건원릉 제2강(在建元陵 第二岡)
  • 원릉 : 재건원릉 우강(在建元陵右岡)
  • 휘릉 : 재건원릉 서강(在建元陵西岡)
  • 수릉 : 재건원릉 좌강(在崇陵左岡)
  • 숭릉 : 재건원릉 서남별강(在崇陵 西南別岡)
  • 경릉 : 재건원릉 서강(在崇陵西岡)

이처럼 혜릉을 제외한 다른 모든 능은 건원릉을 중심으로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이것은 동구릉의 산능들이 모두 다른 갈래에 있지만, 같은 산줄기에서 나온 것으로 그 기준이 건원릉임을 뜻한다.

건원릉은 원(原)의 줄기에, 다른 산릉들은 그 원(原)으로부터 갈라진 강(岡)에 각각 조성되었다. 그런 점에서 동구릉의 여러 산릉들은 모두 ‘동원이강(同原異岡)’에 조성된 것이라 하겠다.

▲ <참고>

봉분 뒤에 설치하는 곡장은 강(岡)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므로 강(岡)에 따라 하나의 봉분이 조성될 때에는 하나의 봉분을 감싸는 곡장이 설치되고, 하나의 강에 2기 이상의 봉분이 조성될 때에는 2기 이상의 봉분을 감싸는 하나의 곡장을 설치한다.

예를 들면, 경릉은 헌종과 두 왕비의 봉분을 모두 감싸는 곡장이 설치되나, 목릉은 선조와 두 왕비의 봉분이 각각 다른 강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봉분마다 각각 독립적인 곡장이 설치되어 있다.

결국 강에 따라 각각 다른 봉분과 곡장이 조성되고, 다른 능호를 갖게 된다고 하겠다.

  • 합장 : 하나의 강(岡)에 조성되어 곡장을 가진 하나의 봉분에 2구 이상의 시신을 묻고 능호를 가진 형태이다. 이런 형태는 동분이실(同墳異室), 동분이광(同墳異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 단장 :

①하나의 강(岡)에 곡장을 가진 하나의 봉분이 단일 능호를 가진 것으로 동분이강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건원릉, 휘릉, 혜릉
②하나의 강에 설치된 2기 이상의 봉분이 하나의 곡장에 단일 능호를 가진 것으로 동강이분(同岡異墳)이라 할 수 있다. - 숭릉, 원릉, 경릉
③하나의 강(岡)에 곡장을 가진 하나 이상의 독립적인 봉분이 단일 능호를 가진 형태로 동원이강(同原異岡)이라 할 수 있다. - 현릉, 목릉

■ 왕릉의 지상·지하구조

현궁은 땅 속에 석실(石室)을 만들어 덮개석을 씌운 다음 초지대석과 정지대석을 놓고, 병풍석을 둘러 봉분을 만든다. 석실 안에는 벽화를 그린다.

난간석은 봉분과 약간 떨어져 설치하는데, 봉분과 난간석 사이에 치마를 펼친 모양으로 박석을 깐다. 정지대석 위 병풍석은 면석과 우석으로 구성되며, 맨 위에 인석을 엇물린다. 난간석은 죽석과 동자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다음 현궁 주위에 석호와 석양을 배치하고, 현궁 뒤에 곡장을 쌓아 봉분을 보호한다. 현궁 앞 상계에는 혼유석, 망주석, 장명등을 놓는다. 중계에는 문인석과 석마, 하계에는 무인석과 석마를 세운다. 현궁 앞으로는 정자각, 소전대나 예감, 비각, 수복방, 수라간을 배치한다.

▲<국조오례의>의 국장의례와 석실 제도

1. 석실(石室)

영조척으로 10척인 광(壙)을 판다. 넓이는 29척이다. 동쪽과 서쪽을 숯가루[炭末]로 채운다. 또한 석회, 세사, 황토 등 3가지 물건을 섞어서 다져 채운다.

석실 동쪽과 서쪽에 방석(方石)을 대고, 중격석(中隔石)으로 두 석실을 구분한다. 동실(東室)과 서실(西室) 안의 너비는 각각 5척 5촌으로 총계 29척이다. 길이는 25척 5촌이다.

현궁 북쪽 내면(內面)에는 북우석(北隅石)을 댄다. 또한 문비석(門扉石 문짝이 되는 돌)과 문의석(門倚石 문비석을 의지하는 돌)을 설치한다.

석실 안의 길이는 10척으로 총계 25척 5촌이다. 남면을 터서 연도(聯道), 즉 무덤 입구로부터 광중에 이르는 길을 만든다.

2. 격석(隔石)

양 실(室) 사이에 격석을 설치한다. 높이 5척 5촌, 두께 4척, 길이 14척이다.

3. 북우석과 방석

그 다음 북우석(北隅石)과 방석(方石)을 설치한다. 북우석과 방석은 양 실(室)에 각각 하나씩 설치한다.

4. 개석(蓋石)

양 실(室) 위에 개석(蓋石)을 각각 하나씩 올려놓는데, 개석 두께는 3척, 너비 10척, 길이 14척 5촌이다. 광 바깥 평지 위의 동․서․북 삼면은 그 지대석을 벌려 놓을 것을 감안해 그 밑바닥을 굳게 다진다.

5. 초지대석(初地臺石)

초지대석은 24개를 벌려 놓는다. 초지대석의 높이는 각각 2척, 길이는 6척 1촌 5푼이다. 너비는 3척 3촌이다. 12면에 각각 2개를 쓴다.

6. 정지대석(正地臺石)

초지대석 위에 정지대석 12개를 벌려 놓는다. 정지대석의 높이는 각각 2척 1촌, 너비는 3촌, 길이는 12척 3촌이다.

7. 우석(隅石), 면석(面石), 만석(滿石)

정지대석 위에 봉분을 둘러가며 우석 12개와 면석 12개를 놓는다. 우석은 운채(雲彩)를 새긴다. 우석의 높이는 각각 2척 1촌, 두께는 3척, 길이는 6척이다.

답사팀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석물 중 하나인 면석은 높이가 각각 2척 1촌, 두께는 3척, 길이는 6척 4촌이다. 돌마다 바깥면 한가운데에 그 방위(方位)의 신(神)을 새기고, 사방에 운채로 장식한다.

면석과 우석 위에 만석 12개를 놓는다. 만석의 높이는 각각 1척 4촌, 너비는 3척 3촌, 길이는 12척 3촌이다. 만석에는 폭 5촌의 양련(仰蓮), 즉 위로 향한 연꽃무늬를 새긴다.

8. 인석(引石)

돌마다 끝이 서로 닿는 곳의 상면(上面)을 등분하여 넓이 2척 5촌, 길이 6척으로 깎아 파서 인석(引石)을 넣는다. 또 만석 위의 판 곳에 인석 12개를 놓는다.

인석의 길이는 각각 6척이고, 두께는 1척 2촌이다. 인석 마구리에 모란, 규화(해바라기꽃), 국화를 새기기도 하고, 서로 걸러 가면서 배설하기도 한다. 꽃을 새긴 마구리 부분은 만석(滿石) 밖으로 1척이 나오게 한다. 하면(下面)이 만석에 닿는 부분에는 만석의 높낮이에 따라 홈을 파서 서로 엇물리게 한다.

9. 석실 안의 벽화

개석(蓋石) 내면(內面)에 먹으로 전차(별이 운행하는 길)에 따라 천형(天刑), 일월(一月), 성신(星辰), 은하(銀河)를 그린다. 먹은 유연묵(油煙墨 기름먹)을 쓴다. 해는 주(朱 황화수은)로, 달과 성신, 은하는 분(紛)으로 그린다.

천상(天象) 바깥인 네 방석에는 모두 분(紛)으로 바탕을 칠하고, 동서북에 청룡, 백호, 현무를 그린다. 청룡과 백호의 머리는 남쪽을 향하고, 현무의 머리는 서쪽을 향한다. 남쪽에는 양쪽 문비석이 서로 합치는 곳에 주작을 그리는데, 두 문짝이 합쳐서 하나의 형상이 되도록 한다. 주작의 머리는 서쪽을 향한다. 이 네 짐승의 앞머리를 격석의 창 아래서부터 그린다.

10. 송환장판

석채에 송환장판을 놓고 그 위에 지의(地衣 제사 때 쓰는 돗자리)와 욕석(褥席 요)를 편다. 송환장판의 길이와 너비는 석채와 같고, 두께는 4촌인데 먹칠을 한다. 석채 바깥의 땅 위 둘레에는 대자리와 돗자리를 깔고, 욕석 위에 재궁을 모시고 문 안에 발을 드리운다.

문 안의 상변 좌우에는 작은 갈고리를 설치해 발을 단다. 재궁을 들여 모시고 명기(明器)를 넣는 등 의식을 치른다.

11. 문의석(門倚石), 문비석(門扉石)

산릉도감의 제조(提調)가 작공(作工)을 거느리고 현궁(玄宮)의 문비석을 닫은 다음 문의석을 덧댄다. 문비석은 양 실(室)에 각각 2개씩, 문의석은 양 실에 각각 1개씩이다.

12. 능의 높이

능, 즉 봉분의 높이는 만석으로부터 12척 5촌이다.

13. 박석(薄石)

12면 모퉁이마다 각각 1개를 쓰고, 면마다 2개씩 써서 모두 36개이다. 박석 상단을 초지대석과 정지대석 사이 파인 곳에 5촌이 들어가게 한다.

14. 죽석(竹石)

죽석의 길이는 각각 6척 9촌, 8면의 넓이는 3촌, 지름은 8촌이다.

15. 난간석(欄干石)

난간 1면의 길이는 15척 3촌인데, 봉분을 둘러싼 12면의 길이를 합하면 183척 6촌이 된다.

16. 곡장(曲墻)

동, 서, 북 3면을 감싼 담으로 높이는 3척 4촌이다. 북쪽 담 밑에 두 계단으로 층이 지게 만든다. 담 안쪽에 석양과 석호를 설치한다. 석양(石羊 돌양) 4마리는 동서에 각각 2마리씩, 석호(石虎 돌호랑이) 4마리는 북쪽에 2마리, 동서에 각각 1마리를 석양 사이에 배치한다.

석양의 높이는 각각 3척, 너비는 2척, 길이는 5척이다. 석호의 높이는 조금 커서 각각 3척 5촌, 너비는 2척, 길이는 5척이다.

17. 지석(誌石)

석대(石臺 돌을 쌓아 만든 밑받침) 남쪽으로 7척쯤 되는 곳에 깊이 5척의 땅을 파서 바닥에 1척 5촌을 삼물(三物), 즉 회삼물(灰三物)로 쌓는다. 지석 내면 4면에 유화를 발라 자획에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고, 개석을 덮는다. 개석을 합친 양쪽 돌 틈에 다시 유화를 바르고 구리철사로 가로세로를 한 번씩 묶어서 구덩이 가운데 놓고, 그 사방과 상면에 삼물로 두께 1척 5촌으로 굳게 다진다. 그런 다음 흙을 채워 묻는다.

18. 석상(石床)

혼유석(魂遊石)이라고도 한다. 봉분 남쪽에 설치하는데, 길이 9척 9촌, 너비 6척 4촌, 두께 1척 5촌이다.

밑을 괴는 족석(足石)은 4개인데(왕릉에 따라 5개가 설치된 곳도 있다.), 4면에 어두(魚頭)를 새겨서 네 모퉁이에 한 개씩 둔다. 높이 1척 5촌, 원의 지름 2척 2촌 5푼이다. 밑에 지대석을 둔다.

19. 석망주(石望柱)

망주석의 길이는 각각 7척 3촌이다. 아래쪽 대석(臺石)의 높이는 3척 6촌이다. 땅 속으로 1척을 묻는다.

20. 장명등(長明燈)

중계 한가운데 북쪽 가까이에 설치한다.

21. 문석인(文石人)

좌우에 각각 1기씩 세우고, 뒤에 석마(石馬)를 각각 1기씩 세운다. 문인석은 관대(冠帶)를 갖추고 홀(笏)을 잡은 형상이다. 길이 8척 3촌, 너비 3척, 두께 2척 2촌이다.

대석(臺石)의 높이는 3척 4촌인데, 땅 위로 나오는 부분 5촌에는 운족(雲足)을 새기고, 땅 속으로 2척 3촌이 들어간다.

석마의 높이는 3척 7촌, 너비 2척, 길이 5척이다. 대석과 4다리 안은 석양(石羊)과 같게 하고, 문석인의 남쪽으로 조금 뒤에 세운다.

22. 무석인(武石人)

좌우에 각각 1기씩 세우고, 뒤에 석마를 각각 1기씩 세운다. 무인석은 갑주(甲冑 갑옷)을 입고, 칼을 차거나 짚은 형상이다. 길이 9척, 너비 3척, 두께 2척 5촌이다.

대석(臺石)은 문인석과 같다. 석마는 각각 1기를 무인석 남쪽으로 조금 뒤에 세운다.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는 모두 동서에서 서로 마주보게 배치한다.

23. 정자각, 예감, 비각, 수복방, 수라간

정자각은 석실(石室) 정남(正南)의 산기슭에 세운다. 그 북쪽의 임방(壬方)에 예감을 파고, 그 동쪽에 비각(碑閣)을 세운다. 내상(內喪 부인의 초상)이 먼저 있는 경우에는 비석을 세우지 않는다. 남쪽에 고방(庫房)을 설치하고, 재주(齋廚)와 재방(齋坊)은 적당한 곳에 설치한다.

참봉 2인과 수릉군호를 두어 쇄소(刷掃 쓸고 닦아 깨끗이 하는 일)을 맡기고, 초채(樵採 나무와 풀을 베는 것)를 하게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