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건립 고유 축문
페이지 정보
김항용 작성일07-11-02 08:50 조회1,268회 댓글0건본문
<直提學公 墓碑 建立 告由 祝文>
維 檀君紀元 四千三百四十年 歲次 丁亥 九月 戊辰朔 十八日 乙未에 十九代孫 昌會는 삼가 고하옵니다.
通訓大夫 內資判事 寶文閣 直提學이신 十九代祖 할아버님과 淑人 光州盧氏할머님이시여! 선조님께서는 일찍이 新羅와 高麗를 거쳐 朝鮮朝에 이르는 민족 역사과정에서 新羅의 王孫이요 高麗 王室의 外孫이라는 血統的 權威와 自負心을 갖고 이 나라를 굳건히 保衛하고 文化 福祉國家로 만드는데 魂神의 노력을 기울여 오셨던 中始祖 忠烈公(휘 方慶) 선조님의 愛國 愛民精神과 高麗 最高의 出將入相이란 權威와 偉業을 지닌 家門의 傳統을 이어 받으셨고, 忠肅公(휘 承用) 선조님의 맑고 청렴한 性品과 원나라 使臣 行路에서 殉職으로 보여주신 任務完遂 精神을 가슴 깊이 새기셨으며, 先親이신 郡事公(휘 七陽)의 不事二君 精神과 節義精神을 삶의 信條로 삼으셨습니다.
선조님께서는 進士試와 文科試驗을 거쳐 조선조의 聖君인 세종대왕을 만나 禮曹佐郞, 靈巖府使, 司宰監正, 司憲府 執義, 藝文館 直提學, 內資判事, 寶文閣 直提學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또한 아우이신 부윤공(휘 墩)과 함께 어버이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시어 모든 이들로부터 孝의 본보기가 되셨고 세종대왕을 감동시키게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淸廉, 淸白, 正直, 愛民을 평생의 德目으로 삼으시다가 鄕地인 康津에서 壽 66세로 歿하셨습니다.
그 후 토산공(휘 三老), 부사공(휘 坤)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선조님의 후손인 우리들이 名文家로서의 자존심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선조님께서 이룩해 놓으신 精神과 업적의 所産이요, 子子孫孫 선조님의 遺旨를 받들고 이를 傳統으로 삼아 꾸준히 實行해 왔던 후손들의 意志와 努力이 있었기 때문이옵니다.
선조님께서 몰하시자 後孫들은 선조님의 墓所를 여주 백양동에 모시고 誠心과 禮로써 받들어 왔사오나 近代에 이르러 안타깝게도 후손들의 不敏으로 인해 幽宅을 失傳하는 不孝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에 후손들은 1965년 파주 연풍리에 선조님의 魂靈을 設壇으로 모시고 壇碣을 세웠지만 선조님의 묘소를 꼭 찾아야 한다는 一念으로 여주 일대를 굳은 意志와 忍耐로 수십 여 년 간 찾아 헤매다가 지난 2005년, 드디어 여주시 백양동에서 선조님의 유골과 부장품인 관자, 은제장식품, 관정 등을 찾아냈습니다. 그 후 감사와 기쁨 속에서 선조님을 配位이신 광주노씨할머님 곁으로 遷葬하였고, 오늘 이제 전 後孫들의 뜻을 모아 선조님의 묘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不可思議하고 感謝한 일들이 선조님의 靈魂的 引導가 아니었다면 어찌 가능했겠사옵니까?
큰 감동으로 이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오늘, 우리 후손들은 앞으로 선조님의 墓域을 더욱 더 잘 모실 것과 훌륭한 後孫들로 成長 發展할 것을 銘心하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선조님이시여! 간절히 원하오니, 이제 아름답게 조성된 이곳 幽宅에서 평안히 永眠하시옵소서, 그리고 우리 후손들의 앞날에 榮光과 繁榮이 가득하도록 天上에서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이에 삼가 맑은 술과 간소한 제수를 올리오니 歆饗하시옵소서.
直提學公 二十一代 傍孫 恒鏞 謹撰, 奉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