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옹천역에서 자며 백옥의 운을 따서-척약재 김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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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8-08-21 17:22 조회1,830회 댓글0건본문
263)宿甕泉驛 次伯玉韻寄贈
숙옹천역 차 백옥운기증
伯玉翰林送予詩曰。백옥한림송여시왈
離亭仙妓似無情。이정선기사무정
一曲陽關怨不成。일곡양관원불성
馬首春風花欲發。마수춘풍화욕발
客中何處過淸明。객중하처과청명
風流公子最多情。풍류공자최다정
握手無言句已成。악수무언구이성
別後相思誰料得。별후상사수료득
只應新月更分明。지응신월갱분명
馬首風煙惱客情(*653)。마수풍연뇌객정
溪山到處畫圖成。계산도처화도성
哦詩緩緩行芳草。아시완완행방초
忽有梅花一樹明。홀유매화일수명
春風離別不勝情。춘풍이별불승정
問柳尋花未肯成。문류심화미긍성
竹嶺高峯回首望。죽령고봉회수망
樓前江水一豪明。루전강수일호명
263)옹천역(*651)에서 자며 백옥의 시에 차운하여 주다
伯玉翰林이 나를 전송하는 시에서 말하기를
이별하는 정자의 기녀는 無情한 듯하니
한 곡의 <陽關曲>(*652)에 怨望을 이루지 못하네
말 머리에는 봄바람에 꽃이 피려 하니
나그네길 어느 곳에서 淸明을 보낼까?
풍류스러운 공자가 가장 다정하니
손을 잡고 말이 없어도 詩句는 이미 이루었네
이별 후의 그리움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다만 응당 초생달은 더욱 분명하리
말 머리의 바람과 안개가 나그네의 마음을 괴롭히는데
시내와 산은 到處에 아름다운 그림을 이루었네
시를 읊조리며 느릿느릿 芳草 길을 가노라니
한 그루 梅花가 홀연히 눈부시네
봄바람 속의 이별로 애틋한 정을 이기기 어려운데
버들을 묻고 꽃을 찾는 일이 좀체 이루기 어렵네
竹嶺(*654)의 높을 봉우리에서 머리 돌려 바라보니
누각 앞의 강물이 한바탕 호탕하게 빛나네
*651 甕泉驛은 경북 안동 북쪽 30리쯤 있던 역이다.
*652 <陽關曲>은 詞牌(사패)로서 본래의 이름은 <渭城曲>이다 위성은 중국 감숙성 돈황현 서남 位黨河 서남쪽에 있는 關이다. 王維가 <送元二使安西>에서
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進一盃酒, 西出陽關無故人 (위성의 아침 비가 가벼운 티끌을 촉촉히 적시는데, 객사에 파란 버들 빛이 피어나네, 그대에게 권하여 다시 한 잔 술을 올리나니, 서쪽에서 양관을 나가면 친구가 없을 걸세)라고 읊었는데, 후에 이 시가 樂府에 들어가서 送別詩가 되었다. 이 시를 반복해서 노래하는 것을 陽關三壘라고 한다.
*653 [元註;輿地勝覽 烟作浪([여지승람]에는 ‘烟’이 ‘浪’으로 되어 있다)
**伯玉은 함창김씨 金爾音이다.
김이음(金爾音) - ?∼1409(태종 9).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백옥(伯玉), 호는 삼로(三路). 아버지는 용(勇)이다.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376년(우왕 2)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1389년(공양왕 1) 지평이 되었으며, 2년 뒤 문하사인이 되었다. 조선 건국 뒤에는 우사간이 되었고, 1405년(태종 5)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효행이 뛰어나 정문이 세워졌으며, 영주의 삼봉서원(三峯書院)에 배향되었다.[엠파스 인물사전 자료]
목은집에서 인용하면 [ 送金伯玉省親 爾音 성친(省親)하러 가는 김백옥을 보내다. 이름은 이음(爾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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