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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일본정벌 유적지 탐방 고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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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9-04-07 16:54 조회1,90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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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일본정벌 유적지 탐방 고유문

 

 단기4342년 2월 21일 충렬공실기간행위원회 일동은 충렬공께서 일본정벌하실 때 거쳐 가셨던 유적지 탐방길에서 삼가 간단한 제를 올리고자 하옵니다.

 

 충렬공께서는 몽고의 무자비한 침략에 항거하시면서 사직을 지키시려고 노력하신 당대의 영웅이었습니다. 당시 몽고는 전 세계의 삼분지 일을 지배하는 초강대국 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려의 집정자들은 정권유지에만 급급한 나머지 백성을 버리고 강화도로 숨어들었고 내륙에서는 몽고군에 의한 무자비한 침략과 약탈로 인하여 도탄에 빠져 국가와 백성이 백척간두에 서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충렬공께서는 오직 백성을 구하고 사직을 구하려고 모진 고문을 견디면서 항거하시었습니다.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원나라의 간섭이 시작되니 부원배들에 의한 농단에도 부단히 저항하시면서 오로지 민족과 국가의 안위에 전심전력하시었으니 이는 후세에 길이길이 빛날 업적이십니다. 또한 원나라와 함께 일본정벌이라는 거대한 전쟁을 고려도원수로서 지휘하여 두 번이나 단행하시었으나 원나라 도원수와의 갈등으로 인하여 두 번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는 말합니다만 만약 충렬공의 계획대로 실행되었더라면 세계사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때 일본정벌이 성공하였다면 고려는 동아시아의 해상패권국이 되었을 것이며 일본은 아마도 역사상 소멸하였거나 쇠약하여 그 후 300여년 후에 있는 임진왜란이나, 650여년 후에 있는 치욕적인 일제강점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이겠습니까? 영도자의 탁월한 판단이 국가의 흥망의 갈림길에서 흥하느냐, 망하느냐는 중요한 고비가 되는 것을 후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충렬공께서 탄생하신지 800년이 지난 지금 안동김씨사이버학술연구회가 주관이 되어 할아버님의 실기를 집대성하여 편찬하려고 [충렬공실기간행위원회]를 조직하여 진행 중에 있습니다. [충렬공실기]를 정성껏 능력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하여 충렬공 탄생 800주년 즈음하여 발간하려고 하옵니다. 할아버님에 대한 자료가 그동안 오랜 세월 속에서 산실되었지만 이제라도 그동안에 찾고 밝힌 자료를 모으는 중입니다. 그 일환으로 오늘 이곳 충렬공께서 740여년전에 일본정벌의 실전을 겪으셨던 현장에서 할아버님의 숨결을 느끼고 유적과 기록을 찾아내고자 고려사의 석학이신 이재범교수를 모시고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영광을 주시옵고 오늘의 답사가 우리 후손들에게 큰 밑거름이 되기를 기원하오니 할아버님께서도 굽어 살피시어 도와주시기를 앙망하면서 맑은 술 한잔과 간단한 안주를 올리오니 흠양하시옵소서. 아울러 일본정벌당시 이름 없이 고혼이 되신 여러 혼령께도 흠양하시기를 바랍니다.

 

2009년 2월 21일

충렬공실기간행위원회

충렬공21대손 영환 삼가 지음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일본 본토에서의 고유제 장면,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고유문 또한 명문으로서 길이 남을 문중 역사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