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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추흥정기 秋興亭記 도은 이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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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9-10-23 10:44 조회1,6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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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흥정기(秋興亭記) 이숭인

 

용산(龍山)은 본래부터 산수(山水)를 즐길 수 있는 경치가 있는 것으로 일컬어진다. 또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五穀)이 잘 자란다. 강에는 배가 운행하고 육지에는 수레가 통행하여 이틀 밤낮이면 경도(京都)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여기에 별장을 마련하는 귀인들이 많다. 전(前) 봉익(奉翊) 김공(金公)이 벼슬에서 물러나와 여기에 쉬고 있는 지가 이미 오래다. 살고 있는 집 동쪽에서 우연히 한 높은 언덕을 발견하였다. 높고 길게 굽어서 형상이 배를 엎어 놓은것 같다. 드디어 그 위에 정자를 세웠는데 소나무를 베어 서까래를 걸고 띠풀을 베어 지붕을 덮었다. 땅이 높고 모진 곳은 평평하게 만들고 나무가 빽빽하게 가리운 것은 성기게 솎아내니 두루 돌아다니며 사방을 둘러보아도 좋지 않은 것이 없다. 이에 김 비감(金秘監)에게 정자의 이름을 청하여 추흥정(秋興亭)이라는 석 자를 써서 현판을 달고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내가 그 한두 가지 그럴 듯한 것을 찾아서 글을 쓴다.

천지의 운행은 무궁하고 사계절의 경치는 서로 같지 않다. 우리의 즐거움도 한 가지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건대, 이 정자는 봄날에 비로소 따뜻하고 동풍(東風)이 화창하게 불 때면 숲의 꽃과 들의 풀들이 붉고 깨끗하며 푸르고 고울 것이다. 여기에서 높은 소리로 노래 부르며 오락가락하면 한가한 마음은 마치 󰡐나는 증점을 허여한다.󰡑는 기상이 있을 것이다. 뜨거운 햇빛이 공중에서 흘러내려 쇠라도 녹이고 돌이라도 녹일것 같으며 대지(大地)는 이글거리는 화로 속과 같다. 이때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그늘 밑에서 맑은 바람을 타고 옷깃을 나부끼며 산보(散步)하면 시원하고 호한한 것이 마치 열어구(列禦寇)가 바람을 타고 노는 것같을 것이다. 차가운 기운은 얼어붙고 외로운 기러기는 구름 속에서 울고 등륙(?六)이 재주를 피우니주D-001 강과 하늘이 한 빛이다. 조각배를 타고 오락가락하면서 높은 회포와 아담한 운치는 섬중(剡中)에 가는 것주D-002과 비슷하거늘 김 비감(金?監)은 어찌 유독 추흥(秋興 가을의 흥취)을 선택하였는가.

대체로 여름은 뜨겁고 겨울은 추워서 사람들이 모두 괴로워하지만 오직 봄철의 온화함과 가을의 청량함은 사람에게 알맞다. 하지만 온화한 기운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나태함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욕수(?收)주D-003가 명령을 관장하고 맑은 상성(商聲)이 음률 맞출 때 같으면 하늘 끝과 땅끝은 맑고 밝고 시원하게 트인다. 그 기운이 사람에게 나타나면 비록 부귀와 공명과 같은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도 변하여 맑고 서늘한 기분이 된다. 4계절의 경치 중에 가을보다 더 좋은 것은 없고, 가을의 경치는 이 정자에서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김 비감이 명명한 뜻도 여기에 있는 것인가.

봉익 김공은 이미 장년(壯年)에 중국에서 벼슬하여 그가 사귄 사람들은 모두가 고량진미를 먹으며 초헌을 타고 면관(冕冠)을 쓴 부귀한 무리들이며, 그의 노닐고 관람한 것은 다 높고 사치스럽고, 넓고 큰 것의 최대한 것이었다. 이제 안락하게 걷어 마음속에 간직하고 상쾌하며 시원한 기분으로 한 점의 먼지도 없으니, 대개 맑은 자이다. 추흥이라는 현판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봄, 여름, 겨울의 이 정자의 좋은 경치를 그대가 곡진하게 드러내어서 남김이 없게 하면서 추흥(秋興)의 아름다움은 제시만 하고 결론을 말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였다. 다른 날 김 비감을 이끌고 복건(幅巾)과 청려장으로 이 정자에 공(公)을 찾아가서, 무릉(茂陵)의 기사주D-004를 노래하고 안인(安仁)의 부(賦)주D-005를 화답하게 되면 추흥설(秋興說)은 좌우에서 취하여 씀에 그 근원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를 기문으로 쓴다.

 

*김봉익은 김휘를,  김비감은 김구용을 가리킨다.

 

[주 D-001] 등륙(?六)이 재주를 피우니 : 등륙(騰六)은 눈을 내리게 하는 신(神)이니 재주를 피운다는 말은 눈을 내리게 하였다는 말이다.

[주 D-002] 섬중(剡中)에 가는 것 : 섬중(剡中)은 중국 절강성(浙江省) 회계현(會稽縣)의 산음(山陰) 땅이니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곳에 대안도(戴安道)라는 선비가 살았는데, 왕자유(王子猷)라는 사람이 눈 오는 날 밤에 대안도 생각이 나서 눈을 맞아 가며 찾아 가다가 그 문 앞에까지 갔다가 흥취가 다하여 주인을 찾지도 아니하고 그냥 돌아갔다는 고사이다.

[주 D-003] 욕수(?收) : 서쪽의 신(神)으로, 가을의 신이다. 하늘에서 형벌을 맡음.

[주 D-004] 무릉(茂陵)의 기사 : 무릉(茂陵)은 한(漢) 나라 무제(武帝)의 능 이름이니, 여기에 무릉이라 함은 무제를 말한다. 그는 추풍사(秋風辭)라는 노래를 지었다.

[주 D-005] 안인(安仁)의 부(賦) : 안인(安仁)은 진(晋) 나라의 반악(潘岳)이란 사람의 자(字)이다. 〈추흥부(秋興賦)〉라는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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