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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제의 KBS 방영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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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10-03-04 12:53 조회2,4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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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제와 관련한 자료를 하나 하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먼저 지난 2008년 7월과 11월, KBS에서 이 내용을 방영하였는데, 그 자료를 12월 3일 본 홈에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한 번 더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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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 KBS TV(http://www.kbs.co.kr/1tv/sisa/tracehistory/vod/review/1557643_28170.html)

 

방송일: 200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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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회]
신라 왕족은 정말 흉노의 후예인가


▣방송 : 2009. 7. 18(토) 20:0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엄지인 아나운서
▣연출 : 나원식 PD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지대를 주 무대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유목민족, 흉노(匈奴)
이 흉노가 신라 왕족의 조상이다?
새로운 사료의 발굴로
또다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흉노와 신라 왕족의 연관성.
역사스페셜에서 추적해본다.

 
신발견! 대당 고故김씨부인 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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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당 고김씨부인 묘명 탁본
우리는 문무왕비에서 투후 김일제를 신라 왕족의 조상이라고 여기는 대목을 확인했다. 그런데 최근 부산외대 권덕영 교수가 중국 탁본을 조사하던 중 ‘대당 고 김씨부인 묘명’을 발견했다. 비문은 고향 신라를 떠나 조부 때부터 당나라에 정착해 살아온 김씨 부인의 생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비문에 문무왕비에 등장한 김일제가 김씨 집안의 조상으로 다시 등장한다. 신라 왕족 뿐 아니라 귀족들도 김일제를 조상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스페셜이 국내 언론 최초로 중국 서안의 비림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대당 고김씨부인 묘비를 공개하고 이 비문에 담긴 역사적 진실을 추적한다.

흉노 왕자, 투후 김일제
02.jpg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주 무대로 활동했던 유목민족 흉노는 기원전 3세기 무렵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하여 중국 대륙을 위협한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다. 김일제는 바로 이 흉노의 왕자였다. 중국 사서에서도 그를 흉노라 언급하고, 그 자신도 흉노임을 숨기지 않았다. 흉노임이 명백한 김일제를 신라인들은 왜 자꾸 자신의 조상으로 언급하는 것일까?

명호개역과 고대국가의 성립
김씨로는 두 번째로 왕 위에 오른 내물마립간. 내물마립간 이 후 소국에 불과했던 사로국이 고대 국가인 신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룬다. 이때부터 김씨의 왕위세습이 이어졌다고 말해지는데, 왕의 명칭도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바뀐다. 마립간은 어떤 뜻일까? 머리 혹은 말뚝을 의미하는 ‘마립’. ‘간’이란 수장이라는 뜻으로 ‘왕 중의 왕’을 의미한다. 그런데 마립간의 ‘간’은 유목민족의 ‘칸’과 의미가 상통한다. 과연 내립마립간 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목 민족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황금 유물과 적석목곽분 그리고 새 토템
왕권을 강화하고 신라의 발전을 이룬 내물왕의 무덤을 경주 고분군들 중에서 가장 큰 황남대총으로 보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 황남대총의 독특한 무덤 양식, 화려한 황금 유물들, 그리고 신라 김씨 왕족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설화에 등장하는 새. 이 세 가지는 모두 금을 숭배하고, 적석목곽분을 묘제로 사용하며, 새를 토템신으로 여기는 유목 민속의 풍습과 일치한다. 이를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봐야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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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남대총 발굴 당시 모습
적석목곽분 형태의 무덤 양식
▲ 황남대총에서 나온 금관

고인골의 유전자 친연성
최근 고인골의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고대 인종들 간의 친연성을 찾아보려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유라시아 지역의 흉노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과 우리나라 고인골 간의 연관성을 추적한 결과는 놀라웠다. 인골들간의 상호관계를 실험한 결과 스키타이와 흉노, 신라가 하나의 그룹으로 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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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골의 DNA 분석결과
그렇다면 흉노는 어떤 이동경로를 통해 신라로 온 것일까. 본 프로그램에서는 고조선, 낙랑, 신라로 이어지는 새로운 이동론적 관점을 제시한다.

흉노‘족’을 넘어 흉노 제국으로
흉노(匈奴)라는 명칭은 중국 중심의 사관을 바탕으로 중국민족을 우위에 두기 위해 흉노의 ‘훈’음에 노비를 의미하는 ‘노’자를 붙여 이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었다. 그런데 완벽한 기마전술로 유럽을 제패한 훈과 흉노의 발음이 비슷할 뿐 만 아니라 실제로 같은 집단이었다는 학설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흉노는 그 집단 안에서 여러 종족이 모여 살아있기 때문에 ‘족’을 넘어 하나의 제국을 건설한 정치적 연합체였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서양에 등장한 훈족을 서쪽에 있던 흉노가 이동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의문이 풀린다. 훈과 흉노는 문화적으로는 하나의 범주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초원의 대제국을 형성한 흉노와 북방 유목민족들. 이들이 잔인하고 약탈을 일삼던 야만족이라는 것은 중국적 관점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중국 중심의 사관에서 벗어나 우리의 뿌리의식을 다시 정립해야만 한다.

 

 

 

  제1회: 2부작 [문무왕릉비의 비밀] - 제1편: 신라 김씨왕족은 흉노(匈奴)의 후손인가?  
방송일: 20081122   
예고편 :       동영상 : playhigh.gif playlow.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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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2부작 [문무왕릉비의 비밀]
제1편: 신라 김씨왕족은 흉노(匈奴)의 후손인가?


▣방송 : 2008. 11. 22 (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아나운서
▣연출 : 고정훈 PD

새롭게 시작하는 ‘역사추적’
그 첫 번째 시간!

<문무왕릉 비문>에 새겨진 수수께끼 같은 암호들

신라의 시조인 성한왕은 누구인가?
투후는 누구인가?
과연 신라왕족은 흉노의 후손인가?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진실’이 비문 속에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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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릉비 원형의 복원


1. 15대조 성한왕(星漢王), 그리고 투후(?侯)의 의미?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의 태조는 박혁거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문무왕릉 비문에는 신라의 태조는 성한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한왕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인물.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의 묘비 역시 신라의 태조는 성한왕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베일에 싸인 인물 성한왕. 그리고 문무왕릉 비문에 등장하는 또 다른 글자 <투후>와 <15대조 성한왕>은 비문의 주인공 문무왕의 조상에 대한 계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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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릉비 조각에 새겨진 의문의 글자‘투후’


2. 신라 김씨 왕족은 흉노의 후손인가?
문무왕릉 비문에 기록된 ‘투후’. 한서에 의하면 투후는 한나라에 포로로 잡힌 흉노족의 태자 김일제이다. 그는 공교롭게도 문무왕과 같은 김씨였다. 그는 한나라와의 전쟁 과정에서 포로가 되었고 한무제에 의해 투후로 임명되었던 실존 인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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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제묘


3. 비문에 새겨진 수수께끼 같은 암호들.
문무왕릉 비문에는 <투후> <전7엽> <투후><전7엽><15대조 성한왕>등 암호 같은 표현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바로 문무왕의 15대조인 성한왕과 흉노왕의 태자였던 투후 김일제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암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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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릉비문의 탁본
▲무위시 김일제 석상


4. 김알지는 정말 금궤에서 태어났을까?
계림의 금궤 짝에서 돌연 등장하는 신라 김씨 시조 김알지. 정말 신라 김씨는 흉노족일까? 초기 신라 무덤과 흉노족 무덤은 모두 적석 목곽분이라는 동일 양식이고 동일한 오르도스형 흉노 동복(솥)이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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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목곽분
비문이 던지는 암호들. 그 화두에서 시작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따라 가는 역사적 ‘진실’의 추적! 미스터리 여행은 2편에서도 계속된다.


- 제2편 ‘왜 흉노의 후손이라고 밝혔나?
몰락한 흉노의 자손임을 내세운 신라 김씨 왕족. 북방의 오랑캐 족으로만 여겼던 ‘흉노족’의 후예들이 신라로 건너온 것일까? 대제국을 세웠던 흉노의 후예들, 그들은 왜 신라로 건너온 것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 그 역사적 흔적들을 찾아 <문무왕릉 비문의 비밀 2편>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문무왕릉 비문의 비밀> 제2편은 29일(토) 밤 8시 10분에 방송됩니다!
 

 

 제2회: 2부작 [문무왕비문의 비밀] - 제2편: 왜 흉노(匈奴)의 후예라고 밝혔나?  
방송일: 20081129   
예고편 :       동영상 : playhigh.gif playlow.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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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2부작 [문무왕비문의 비밀]
제2편: 왜 흉노(匈奴)의 후예라고 밝혔나?


▣방송 : 2008. 11. 29 (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아나운서
▣연출 : 김창범 PD

‘역사추적’그 두 번째 시간!
풀리지 않는 여러 의문들.

비문 속 주인공 투후 김일제와 성한왕은 어떤 관계인가?
투후 김일제의 나라 투국은 과연 존재했는가?
흉노족은 정말 한반도 남단으로 내려왔는가?
과연 수수께끼 같은 문무왕 비문의 비밀은 풀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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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의 문무왕릉비 하단석


1. 투후 김일제와 성한왕은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성한왕은 누구인가?
문무왕릉 비문에는 ‘투후 제천지윤 전7엽’이라는 암호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여기서 ‘투후제천지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투후의 자손이라는 뜻. 그리고 ‘7엽’은 일곱 개의 잎사귀, 즉 7대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투후 김일제’의 자손이 7대를 전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15대조 성한왕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투후 김일제의 자손이 7대를 전하여 신라의 성한왕으로 이어졌다는 말일까? 그리고 과연 성한왕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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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능원


2. 흉노족 문화와 신라 문화의 유사성.
신라의 문화와 풍습은 북방기마민족 흉노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게 닮았다. <일본서기>에는 신라를 ‘금은의 나라’로 표현되어 있다. 황금 숭배는 유목 민족의 특징이다. 또 신라 김씨 무덤과 흉노족 무덤양식은 적석목곽분으로 동일하다. 흉노의 근거지에서 발견된 ‘동복(청동 솥)’ 역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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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인물형 토기
▲동복


3. 투후 김일제의 나라 투국은 존재했는가?
중국에서 김(金)씨는 흉노계를 상징하는 성씨와 같다. 중국의 김씨는 대부분 투후 김일제를 시조로 모시는 흉노족. 산동성 하택시 성무현 옥화묘촌 입구에는 이곳이 김일제의 투국이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투국성 유적지에는 김일제를 기리던 투후사가 있었다고 한다. 또 이곳 주민들은 투국성을 김성(金成), 금성이라고 한다. 조림사업이 시작되면서 숲으로 바뀐 이 일대 지하에 투후국의 흉노족이 ‘금성’이라 부르던 성이 있었다. 김일제의 성을 딴 투후국의 ‘금성’과 신라의 수도 ‘금성’ 두 이름이 일치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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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성 하택시 투국의 옛성


4. 신라는 이주민이 세운 나라,
 그렇다면 흉노족과 관련이 있다는 걸까?
왕망의 신나라에서 사용되던 ‘화천’이 출토된다. 이것이 발견된 지역은 중국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무역로와 거의 일치한다. 중국왕망의 난에 가담했던 투후 김일제의 자손들은 왕망의 피살과 함께 뿔뿔이 흩어진다. <삼국사기>나 <삼국지 위지동이전> 등 역사서에는 대륙의 정세가 급변할 때마다 북방의 이주민이 한반도 남단 진한 땅으로 이주해왔다는 기록이 여럿 등장한다. 그렇다면 투후 김일제의 자손들도 신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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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5. 성한왕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문무왕의 15대조는 김알지의 아들 세한이다. 추사 김정희가 비문의 내용을 집대성한 <해동비고>에 보면 문무왕비문에 기록된 성한왕은 바로 ‘김알지’라는 기록이 나온다. 비문의 성한왕에 대한 묘사는 김알지의 설화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분석된다. 성한왕은 바로 신라 김 씨 시조 김알지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에서 이주해온 김 씨가 세력을 형성하고 이주민에 불과했던 김 씨들이 최초의 왕인 미추왕을 배출한다. 문무왕에 이르러서는 삼국을 통일하고 한반도 패권을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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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비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대당전쟁마저 승리한 문무왕. 그의 비문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석탈해가 사라지고 성한왕만이 존재한다. 신라는 이제 김씨 단독 왕국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바로 문무왕릉비문인 셈이다.

신라김씨왕족의 자신감은 신라김씨 시조 성한왕과 더불어 흉노 태자 투후 김일제까지 자신들의 뿌리가 닿음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무왕비문은 신라 김씨가 한반도의 패자로 성장해간 비밀을 담고 있는 고대사의 블랙박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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