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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엄 중건기(深棲엄重建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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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4-12-01 13:02 조회1,990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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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棲广 重建記

璞山南脊 循大川屈曲蜿蜒 至楓川而蔚然停峙 鍾蓄靈淑之氣 境僻而幽深 山環而寬豁 澗谷巖林之美 殆天秘之別界也 歲丁丑暮春日 上洛金君道容甫 重建其先亭 屢造不侫 固請記其事曰 自吾先世棲遯此山之深 而至我祖考令公 負抱經綸 出可以措施斯業 而不遇窮居 安分樂命 蘿衣木食 不碩人之稻錦 瓮牖土牀 不碩人之榱梲 囂囂志意 更不計得喪榮枯之爲何菁物事 而唯恐山之不深也 益務鞱晦 標題幽居而旣六深棲 又曰广者 豈唯昭儉己哉 盖始建此广之日 因巖下雙松 只竪二柱於前 合而結搆之 效古人因樹爲屋之義而名之爲巖屋 小子之愚 亦不敢易其遺制 而但舊广傾歪 不可仍舊貫是繕 乃欲鞏其基 完其礎 以圖久遠 舊址雖便於起居之接 而占位太隘 且前日庇广之二松 已不保被遺光矣 乃移卜先子幽堂之下 寓之爲羹牆焉 願毋靳一言 用章我祖裕後之德 遺安之懿也 余復之曰 若子可謂知所本而善於繼述者矣 先公謙晦標格 足以驗名堂之言而广上之巖 稱之以儉 是則昔人以愚名溪之義也 衰世務飾 爭尙夸毗 譬如餔攤自家什物於門外 報人道我家有許多貨貝 纏頭沽䝮於城闉朝市之間 而猶患人之不我知也 以是而觀先公之心則 庶乎高出事物之表而深藏不市也 君能體其遺意 極力搆築 恢大暢豁 不讓人山亭溪榭之制而遵守舊名之儉 此眞有肯堂之孝而克充繼志之誠者也 斯世易有如斯人也乎 余素不侫於言 一生 尠副人此等求索 玆庸嘉君之篤志 抄數轉語以塞其請 若夫贊揄之事則 艮隱權公所撰銘及序盡之矣 奚贅說之爲也
屠維單閼黃花節 宣城 金東鎭記

심서엄 중건기(深棲广 重建記)

박산(璞山)의 남쪽 산등성이가 큰 하천을 따라 구불구불 굴곡(屈曲)하여 풍천(楓川)에 이르러 울창하게 우뚝 멈추어서 영명(靈明)하고 맑은 기운을 모아 함축하고 있으니 경내(境內)가 후미지면서도 그윽하고 깊숙하며 산에 둘러싸였지만 끝없이 넓고 넓으니 산골짜기와 바위와 수풀의 아름다움은 자못 하늘이 감추어 둔 별천지이다. 정축년 늦은 봄 어느날 상락 김씨(上洛金氏)인 김도용(金道容)군이 그 선대(先代)의 정각(亭閣)을 중건하고 여러 차례 나를 찾아와서 재삼 그 기문(記文)에 대한 일을 간청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선대(先代)께서 이 산에 깊숙하게 은둔해 사시고부터 우리 조고(祖考) 영공(令公)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경륜(經綸)할 초부는 나가서 이 사업을 베풀 수 있을만 했는데 때를 만나지 못하여 궁하게 사시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고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풀로 옷을 하고 나무 열매로 끼니를 이어가도 남이 쌀밥 먹고 비단 옷 입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옹기로 창문을 내고 흙 침상에 살아도 남의 서까래와 기둥으로 집 지은 것을 원하지 않으면서 욕심 없이 자득(自得)하는 의지는 성공과 실패와 영화와 몰락이 어떠한 사물인지 다시는 계교하지 않고 오직 산이 깊숙하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더욱 세상에 몸을 숨기기를 힘써서 그윽하게 사는 집의 표제(標題)를 이미 심서(深棲)라고 했는데 또 엄(广)을 붙여 심서엄(深棲广)이라고 말한 것은 어찌 검소함에 부지런히 힘쓴다는 뜻일 뿐이겠습니까? 아마도 이미 심서엄을 처음 세우던 날 바위 아래에 소나무가 다만 두 그루가 기둥처럼 앞에 섰기 때문에 그 두 소나무를 기둥삼아 얽어 만들었으니 옛 사람이 나무로 인하여 집을 지었다는 뜻을 본받아서 그 이름을 바위집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리석어도 감히 예로부터 전해오는 집 규모를 또한 바꾸어서는 안되지만 다만 옛날 돌집은 기울고 비뚤어져서 옛날 그대로 수선할 수 없기 때문에 곧 그 터를 공고히 하고 그 주추를 완전하게 하여 먼 후세에까지 오래 유지되도록 계획하였으며 또 옛 돌집의 터는 비록 기거하고 있는 집에 근접한 것은 편리하지만 그 차지한 위치가 너무 좁고 또 그 전에 돌집을 감싸주던 두 소나무도 벌써 그 유광(遺光)을 입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선조님의 묘소의 아래에 옮겨 세워서 사모하는 뜻을 붙이려고 하니 원하옵건대 우리 선조께서 후손을 넉넉케 하신 덕행과 자손들을 편안하게 생을 누리게 하신 아름다운 행의(行義)를 드러내는 한 말씀을 아끼지 말아 주십시오”라 하므로 내가 그에게 말하기를 “자네와 같은 사람은 근본을 알고 선조의 뜻을 잘 계승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네의 선대(先代)께서 겸손하게 이름을 숨기고 사신 품격은 당(堂)의 이름을 심서엄(深棲广)이라고 이름한 말에서 충분히 징험할 수 있고 심서엄의 위에 있는 바위를 검암(儉巖)이라고 일컬은 것도 옛 사람이 우계(愚溪)라고 이름한 뜻이다. 세상은 쇠퇴해져서 외모를 꾸미는 일에 힘쓰고 있어서 서로 다투어 사치와 과장을 숭상하고 있으니 예컨대 자기 집의 집기(什器)들을 문밖에 진열해 놓고 남에게 우리집에는 돈과 패물이 아주 많다고 알려주고 전두(纏頭)를 성(城)문 앞의 명리(名利)를 좇는 마당에 팔면서 그래도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근심하고 있다. 이러한 일로써 자네 선조의 마음을 관찰하면 사물의 욕심밖에 높이 나와서 재능을 깊이 감추고 팔지 않음에 가깝다. 그대가 능히 선조의 남긴 뜻을 체득하여 힘을 다하여 집을 구축함이 매우 크고 쾌적하게 넓혀서 남의 산정(山亭)과 시냇가의 정각(亭閣)의 규모에도 뒤떨어지지 않으며 옛날의 검암(儉巖)이란 이름도 따라서 지켰으니 이는 참으로 선대의 뜻을 이어 정각(亭閣)을 이룩한 효성이며 능히 선조의 뜻을 계승함에 정성이 충실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도 역시 이러한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내가 본래 말하는 재주가 없어서 일생을 통하여 사람들의 이러한 요청에 부응한 일이 적은데 지금은 자네의 독실한 뜻을 가상하게 생각하여 몇 줄 전하는 말을 초안(抄案)하여 그의 요청에 막음했다.
무릇 찬양하여 들어내는 일에 있어서는 간은(艮隱) 권공(權公)이 지은 명(銘)과 서문(序文)에 모두 말했으니 어떻게 군더더기 말을 하겠는가.

기묘년 9월에 선성(宣城) 김동진(金東鎭) 짓다.
 
 

댓글목록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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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심서엄 사진 잘 찍으신 분!! 같이 보게 올려주세요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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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http://cafe.naver.com/iandongkim/4609
클릭하시면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