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온공 종손가 자료_대은암서(大隱庵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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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15-10-24 09:07 조회1,592회 댓글1건본문
大隱庵序
東州 李敏求
大隱庵在明禮坊水下洞。枕橋臨溪。前對南山。正直國祀中麓。始國家定鼎漢陽。有金公孟獻。上洛公方慶五代惕若齋九容之子。以直提學在徙中。撤松都屋材。結構于茲。傳僉正自讓,郡守禮生,節度使胤宗,進士震紀。至吾外王父都事公大涉。家再傳爲吾有。內屋經先君中繕。名之曰大隱庵。客堂則吾所創置。今歸外孫申弼華。夫人營立室廬。孰不欲傳之子孫久遠。然而下自公卿庶人。所以固其基扃墻壁。辛勤以成就者。不易世而改壞者有矣。遇不肖子孫。鬻之爲酒食費者有矣。不幸數遭喪亂焚劫。又罕有以得全。見嗣守先業若斯之難也。此屋雖甚矮陋淺隘。不足備吉凶之所。而傳三姓二百六十餘年。不燬于兵燹。不屬于他人。中外相承。葆有舊物。吁亦幸矣。乃略敍其顚末以遺弼華。俾知吾所自出與屋之相傳有源有委。庶幾深惟永念。以無替張老之頌辭也。舊有尹校理繼善重修序文。篇末有曰。若余者學海跛鼈。文苑棲螟。空谷流年。已窮鼯鼠之五技。上林落照。未借鷦鷯之一枝。先君覽之憮然曰。恐是人不究於壽命。果以翌年年二十八終。今其文散佚不存。故偶及之云。
• 출전(원문) : 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 동주집(東州集) / 東州先生文集卷之二 / 序
몸으로 체화(體化)한 것은 오랫동안 쓰지 않아도 아무 때나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사람이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았더라도 아무 때나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치 때문입니다.
하찮은 일조차 이럴진대 척약재(휘 九容) 할아버지께서 외조부 급암 민사평 공에게 개성 철동 집을 물려받으신 이래 문온공 종손가 별제공문중은 자그마치 700년 동안 문온공의 혈맥을 이어왔으니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아도 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향 싼 종이에서는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듯이, 종손가는 종손가로서 전통과 위엄이 면면히 이어지니 이게 바로 종통(宗統)의 순리(順理)라 하겠습니다.
이 글 역시 종손가로서 그 흔적을 전해 주고 있으니 동주 이민구 선생은 명례방 수하동에 있는 집이 척약재(휘 九容) 할아버지에게서부터 직제학공(휘 孟獻)을 거쳐 첨정공(휘 自讓),청도군수공(휘 禮生),절도사공(휘 胤宗),진사공(휘 震紀), 도사공(휘 大涉)으로 이어졌다고 적은 것입니다. 이처럼 의도하지 않아도 종손가는 그 유구한 전통이 저절로 전해지는 법입니다.
댓글목록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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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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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남산에서 발원한 지천이 삼일빌딩 앞 청계천에 이르고 그 만남의 지점에 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동주공이 사위 신필화에게 유산으로 물려줘 지금은 평산신씨대종회 소유가 되었으나 그곳이 우리 안동김씨의 유허지 임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