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방문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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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01-03-27 23:39 조회2,939회 댓글0건본문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직 많은 것 수정하고 보완해야할 홈페이지입니다.
우리 안동김씨의 15개파 중 익원공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아마도 선친께서 일찍 별세하신 관계로 궁금하신 것이 많으신가 봅니다.
족보가 없으시다면 전문 사이트를 알려 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족보찾기 전문 사이트 : jokbo.wo.to
각 계파에 대한 소개는 본 홈페이지 <안동김씨 소개> 항의 <분파소개>란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파조이신 익원공 할아버지에 대한 것은 본 홈페이지 <안동김씨>항의 <역사적인물>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올려 드립니다. 참고하십시요.
그리고 익원공파 사무실이 따로 있기도 합니다. 우선은 본인의 족보와 계파를 정확히 찾는 일이 급선무이신 것 같습니다. 그 후에 다시 연락 주시면 익원공파 사무실의 연락처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또 궁금한 것은 저의 이메일(khy5278@chollian.net)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방문을 환영하며 자주 뵙길 바랍니다.
<익원공 할아버님 소개>
*김사형(金士衡). 1333(충혜왕 복위 2) ∼ 1407(태종7).
고려·조선의 문신.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 상락후(上洛侯) 영후(永煦)의 손자.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 천(甸)의 아들. 음보(蔭補)로 영계관직(櫻溪館直)이 된 후 감찰 규정(監察糾正)을 거쳐 공민왕 때 문과(文科)에 급제, 1377년(우왕 3) 집의(執義)·개성부윤(開城府尹), 이어 교주강릉도 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 1390 년(공양왕 2) 밀직사(密直司)로 대사헌을 겸하다가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특진, 뒤에 삼사 우사(三司右使)가 되었다. 1392년 여러 장상(將相)과 함께 이성계(李成桂:太祖)를 추대,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로 판상서사사(判尙瑞司事)와 병조전서(兵曹典書)를 겸임, 개국공신 1등이 되고, 이어 문하우시중(門下右侍中)에 상락백(上洛伯)으로 봉해졌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에는 장자(長子)에게 선위(禪位)하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종이 즉위하자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이 되었다. 1399년(정종 1)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 1401년(태종 1) 좌정승(左政丞), 이듬해 영사 평부사(領司平府事)로 부원군(府院君)이 되어 공직에서 물러났다. 벼슬을 하면서 한 번도 탄핵을 받은 일이 없었다. 시호는 익원(翼元).
아직 많은 것 수정하고 보완해야할 홈페이지입니다.
우리 안동김씨의 15개파 중 익원공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아마도 선친께서 일찍 별세하신 관계로 궁금하신 것이 많으신가 봅니다.
족보가 없으시다면 전문 사이트를 알려 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족보찾기 전문 사이트 : jokbo.wo.to
각 계파에 대한 소개는 본 홈페이지 <안동김씨 소개> 항의 <분파소개>란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파조이신 익원공 할아버지에 대한 것은 본 홈페이지 <안동김씨>항의 <역사적인물>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올려 드립니다. 참고하십시요.
그리고 익원공파 사무실이 따로 있기도 합니다. 우선은 본인의 족보와 계파를 정확히 찾는 일이 급선무이신 것 같습니다. 그 후에 다시 연락 주시면 익원공파 사무실의 연락처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또 궁금한 것은 저의 이메일(khy5278@chollian.net)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방문을 환영하며 자주 뵙길 바랍니다.
<익원공 할아버님 소개>
*김사형(金士衡). 1333(충혜왕 복위 2) ∼ 1407(태종7).
고려·조선의 문신.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 상락후(上洛侯) 영후(永煦)의 손자.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 천(甸)의 아들. 음보(蔭補)로 영계관직(櫻溪館直)이 된 후 감찰 규정(監察糾正)을 거쳐 공민왕 때 문과(文科)에 급제, 1377년(우왕 3) 집의(執義)·개성부윤(開城府尹), 이어 교주강릉도 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 1390 년(공양왕 2) 밀직사(密直司)로 대사헌을 겸하다가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특진, 뒤에 삼사 우사(三司右使)가 되었다. 1392년 여러 장상(將相)과 함께 이성계(李成桂:太祖)를 추대,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로 판상서사사(判尙瑞司事)와 병조전서(兵曹典書)를 겸임, 개국공신 1등이 되고, 이어 문하우시중(門下右侍中)에 상락백(上洛伯)으로 봉해졌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에는 장자(長子)에게 선위(禪位)하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종이 즉위하자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이 되었다. 1399년(정종 1)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 1401년(태종 1) 좌정승(左政丞), 이듬해 영사 평부사(領司平府事)로 부원군(府院君)이 되어 공직에서 물러났다. 벼슬을 하면서 한 번도 탄핵을 받은 일이 없었다. 시호는 익원(翼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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