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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할아버님의 발자취 강화도(江華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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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1-04-16 20:42 조회2,6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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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과 제방 : 강화(江華)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는 항몽 유적지이다.

사면이 바다이다 보니 짠물이 수시로 넘나들어 황무지가 사방에 방치되어있었다. 고려 고종(高宗)25년 (1248년)북녁의 많은 민간인을 강화로 들어오게 하여 작업을 하도록했다. 강화 변두리 연안 황무지는 갈대밭으로 되어 곡식을 심을수 없었다. 이때 병마판관(兵馬判官) 김방경(金方慶)은 여러곳을 정하여 제방과 뚝을 쌓게하고 간척지를 만들어우선 돌 피씨를 심게 하였더니 민심을 심히 원망하기도 했는데 바로 이해야 말로 피가 잘여물어 해마다 몽고의 병란으로 굶주려 왔던 강화도 군민들이 굼주림을 면하였다 한다. 그뿐이랴 이때엔 우물이 없었는 지라 축성한 뚝에는 빗물을 저수 하였다가 농사철에는 논에물을 대게하여 아무리 가뭄이 와도 물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겨울철에는 얼음을 깨고 그물을 식수로 이용하였다. (그때에는 물이 오염되지 않아 식수로 사용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 이때 축조한 제방과 뚝은 :제포(悌浦) 와포(瓦浦) 이포(裡浦) 초포(草浦)뚝이었는데 둔전(屯田)둔전이라함은 ( 주둔병사의 군량미를 자급자족 하기위하여 마련되었던 밭.) 으로 설정하였고 이어서 광성(廣城) 굴곶(屈串) 만월(滿月) 오두(鰲頭) 가리(加里) 뚝등은 이때에 모두 축성 하였다.



* 뚝과제방 소재지:제포(悌浦) 와포(瓦浦) 뚝은 강화군 송해면 승천포부근 고려시대에 별궁이 있던곳 지금도 동리 이름 (상관리)이 지금도 전하고 있다.

이포(裡浦) 뚝은 1256년에 선원면에 축조 하였다.



참고문헌: 강화사(江華史) 강도의맥 (江都의脈) 발행 : 강화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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