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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능촌 취묵당(醉?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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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2-02 11:46 조회1,2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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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묵당(醉?堂)


작성자 :김주회  작성일 : 2002/07/11 10:38 (from:211.57.153.106) 조회 : 36

<충청북도 樓亭記文과 題詠, 1999, 전국문화원연합회 충청북도지회>

■醉?堂 記---김득신 (104-162 104-207 백곡집 문집 책5)

--- 醉?堂 : 괴산읍 능촌리, 백곡 김득신, 현종3(1662) 讀書齋, 일명 億萬齋


예전 辛丑년에(=?1601 辛丑, ◀1611 辛亥, 1613 癸丑의 오기인 듯) 先君(=김치)께서 方下峴(=능촌리 방아재)에 들어가셔서 4년을 머물다(=1615년 양어머니 상)  돌아가셨다. 그후 거의 50년이 흘렀는데, 나(=김득신)는 선군의 거처를 잇고자 했으나 벼슬살이에 매여 소원을 이룰 수 없었다.

壬寅년(=1662년) 봄에 벼슬하려는 뜻을 이미 흩어 버렸다. 8월 가을에 木州(=충남 천안 목천)栢谷莊(=?) 으로부터 槐州(=괴산)의 방하현(=능촌리 방아재)에 이르러 광탄 곁의 작은 산록을 바라보니, 쓰러져 있는 큰 소나무는 작은 소나무를 나열한 듯하고, 시끄럽게 삐죽삐죽한 큰 돌은 작을 돌을 포개놓은 듯했다.

蒼童(창동)을 시켜 작은 소나무를 베어내고 큰 소나무만 남겨두며, 작은 돌을 뽑아내고 큰 돌은 끊으며, 썩은 흙을 제거하여 더러운 고을을 청소하니, 기이한 형세와 경치가 번갈아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이곳엔 마땅이 堂宇를 지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淸塘太守(=청안현감 또는 괴산군수)에게 청해 목수를 얻어 재목으로 쓸 나무 약간을 베어서 두 칸의 堂을 지었다.

그 안에서 두루 살펴보면, 성불산이 쭉 솟아있는 것과 남녘동녘의 끝과 이탄 광탄의 급류와 물가에 나무가 늘어선 것과 어촌마을이 벌려있는 것과 구름이 일어나고 새가 날라가는 것과 고기가 노닐고 사람이 다니는 것이 모두 시야에 들어오니 소원은 이루어진 것이다.

기쁘기가 예쁜 선녀가 손톱으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만 같을뿐만 아니다. 그러하니 빼뜨릴 수 없는 것은 당호이다. 당호를 걸려면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할 필요는 없다. 무릇 세상사람들이 취해도 조용하지 않고 술이 깨도 조용하지 않은 것은, 재앙에 빠지는 것을 경계할 줄 모르기 때문이니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취해도 조용하고 술이 깨도 조용하여 항아리처럼 입을 다물고 항상 그러하기를 익히면 반드시 화를 저촉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취해도 조용하지 않고 술이 깨도 조용하지 않으면 활시위를 쏜 듯 재앙이 닥치니 어찌 삼가지 않으리오?

만약 취해서는 조용하지 않고 술이 깬 후에도 조용하지 않으면 비록 몸이 야외에 처해 있더라도 시장 한복판에 말을 삼가지 않는 자와 그 재앙이 같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구당 박중구(=박문수의 증조부 박장원)는 壬寅년(=1662년) 여름에 조용하지 않음을 경계하라고 네 번이나 편지를 부쳤다. 나도 그렇다고 여겨 당호를 醉?이라 했으니, 대개 취했을 때 조용하라는 뜻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만약 취했을 때 조용하고 술이 깨어서도 조용하여 망언을 하지 않고 몸이 화를 면할 수 있으면 이는 중구의 선물인 것이니, 어찌 나를 경계한 뜻을 저버리리오!


癸卯년(=1663년) 仲春 終旬에 堂의 주인이 벽에 써붙이고 스스로 경계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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