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1604-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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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2-02 11:34 조회1,425회 댓글0건본문
묘갈명을 통해 본 주요 행적
◎만력 갑진년(1604년) 10월 18일 생이라. 그 태어날 때 안흥군(安興君)이 꿈에 노자(老子)를 보았다. 그래서 어릴 때의 이름을 몽담(夢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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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휘 치) : 1604년경 해미(海美) 또는 흥덕(興德)의 원으로 나아갔을 때인 듯하다. 부(휘 치)의 외조부(外祖父) 양언개(楊彦漑)이고, 김득신의 외조부는 목첨(睦詹)이다.
◎어릴 때 노둔(老鈍)하여 10세에 비로서 학교(學校)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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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휘 치) : 계축년(癸丑年: 1613년)에 영남균전사정전역(嶺南均田使正田役)이 되었으며 병조참지사간원대사간이조참의(兵曺參知司諫院大司諫吏曺參議)으로 들어왔다. 을묘년(乙卯年: 1615년)에 양(養)어머니의 상을 당했다. ***부 김치의 양 아버지이신 충무공 김시민(1592몰)의 묘소는 중원군 살미면 무릉동 (현재 충주댐 수몰)에 있었다.
◎향선생(鄕先生)인 후천(朽淺) 황종해공(黃宗海公)이 공(公)을 매우 중히 여기고 어질다 여겼다. 상서(尙書)를 지낸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이 소시적 안흥군(安興君)에게 배울 때 서로 사귀는데 지극히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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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선생(鄕先生)인 후천(朽淺) 황종해공(黃宗海公)이 목천동약(木川洞約)을 열었고, 묘가 목천에 있는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이 소시적 안흥군(安興君)에게 배울 때 서로 사귀었다 하는 점으로 보아, 어릴때 목천에 거주한 듯하다.
***황종해 : 17세기 중 · 후반에 입약되어 실시되기 시작한 황종해의 목천동약(木川洞約)은 여씨향약의 본문을 먼저 들고, 자기의견을 부속조목으로 기록한 동규범례(洞規凡例) 46조를 적고 있는데 우리나라 향약사상 중요한 사례이다.
***박장원(朴長遠) : 어사 박문수의 증조부, 천안 병천 가전리 인근 재실에 증손 박문수와 함께 영정이 있다. 1612(광해군 4)∼1671(현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중구(仲久), 호는 구당(久堂)·습천(#습08川). 직장(直長)을 지낸 훤(#훤08)의 아들이다. 1627년(인조 5)생원이 되고 -----저서로는 《구당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을유년(乙酉年:1625년) 안흥군(安興君)의 상을 당했다. 상을 마친(服 )후에 문장이 더욱 발전하여 선배들이 무릎을 꿇었으며 영화로운 명성이 크게 떨쳤다. -----책상자를 짊어지고 산사(山寺)에 가서 읽지 못한 책을 반드시 만 번을 읽었다. 백이전(伯夷傳)을 수십만 번을 읽었다. 이로 인해서 작은 서재의 이름을 억만재(億萬齋)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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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사지 : 1644년(인조22)에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불입상.
구석사(龜石寺) : 절골에 있는 조선조 초의 절로 청안현 남쪽 산이 높아 남향은 불이므로 불을 다스리는 것은 물, 물의 수족지신인 거북을 따서 구석사를 세웠다고 한다. 구석사는 지금은 폐찰 되고 당시 있던 탑신, 축대, 우물 등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임오년(壬午年:1642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임인년(壬寅年:1662년)에 문과(文科)에 올랐다. 성균관 학유(成均學諭)를 거쳐 전적(典籍)에 승진했으며,-----드디어 괴산(槐山)으로 돌아가서 개향산(開香山) 선영(先塋) 옆에 집을 짓고 취묵(醉默)이라 편액(扁額)을 붙였다. 시(詩)와 술로 스스로 즐기며, 벼슬을 제수해도 나아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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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槐山) 개향산(開香山) 선영(先塋)>이라 함은 괴산 능촌리 조부(휘 시회)의 묘역인 듯하다. 현재의 취묵당 인근
◎갑자년(甲子年:1684년) 가을 이질병을 앓았으며 또한 등창을 앓아 8월 29일 돌아가니 81세였다.-----청안현(淸安縣) 좌구산(左龜山) 임좌(壬坐)의 언덕에 장사지내니, 여기에 선영이 있기 때문이다.
◎공(公)의 저술(著述)은 매우 많으나 병자란(丙子亂) 때 많이 흩어져버려서 겨우 천 편이 남아있다. 산수를 너무 좋아하여, 금강산(金剛山)·백마강(白馬江) 및 호서사군등지(湖西四郡等地)에 놀러다녀, 발길이 두루 이르렀다.
◎비( )는 사천목씨(泗川睦氏)로, 이조참판 첨(吏曺參判 詹)의 딸이다. 공(公)의 배필(配匹)은 김씨로 본관이 경주(慶州)이다. 아버지는 성발(聲發)로 장령(掌令)을 지냈으며 도승지(都丞旨)의 증직(贈職)을 받았는데, 충암선생( 菴先生) 휘(諱) 정( )의 사세손(四世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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