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泰東 장관 묘비 (괴산 소수면 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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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2-08 15:07 조회1,452회 댓글2건본문
김주회 (2003-05-23 21:19:00, Hit : 76, Vote : 0)
金泰東 장관 비문
<서봉김사달박사서화문집>에 보면 김사달 박사가 書하신 충북 괴산군 괴산읍 서부리가 고향이신 제학공파 金泰東(1982년 작고) 전 보사부장관의 비문 필적이 실려 있어서 타이핑해 보았습니다.
이 비문은 서기 1982년 10월 일, 전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문학박사 ★崔永禧근찬, 안동김씨대종회 고문 의학박사 ★金思達 근서, 사단법인 충북협회 근수 한 것이고, 김태동 장관은 충남·북지사를 역임하셨던 김학응 지사의 백형 김규응의 아들이므로 김학응 지사의 조카가 되는 것 같습니다.
■ 서봉김사달박사서화문집
p235
안동김공태동장관비문
공의 휘는 ★泰東이요 호는 春谷이며 본관은 안동이시니 시조 경순왕의 원손이시고 중시조 고려도원수상락군개국공 휘★方慶 시충렬공의 25대손이시며 파조 보문각대제학 휘★益達의 21대손이시다. 증조는 휘★成浩이시고 조는 휘★相泌(상필)이시다.
서기 1918년 3월 8일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면 서부리에서 고휘★奎應과 비禹氏의 4남5녀중 장남으로 출생하시어 22세에 진천인 한산이씨 承馥(승복)의 차녀 宰遠과 결혼 1남2녀를 두시다.
일본 명치대학 법학부를 졸업, 재학중인 1939년 일본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 1942년 약관 24세에 전북 무주군수, 1943년 고창군수에 임명되시다.
해방후 1950년에 대한민국 주일대표부 정무부장을 역임하셨으며, 1960년에 부흥부 조정국장, 1962년에 국방부 이재차관보, 1964년에 교통부차관, 1966년에 경제기획원 차관, 1968년에 체신부장관, 1969년에 보사부장관을 역임, 30여년간 관계에 재직하시다.
이후에도 공의 활약은 현저하시어 일간 내외경제 코리아헤랄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7년간 언론계에 투신, 겸직인 한미경제협의회에서는 한국경제 및 대미국경제문제까지도 이사장으로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시다, 1982년 2월 8일 불의에 ?명하시니 향년 65세시라
공은 천성이 성실 침착 온순 원만하시고 다재다능 박학강기하시어 국내외에 그 인품과 지도력이 널리 알려져 외국과의 경제문화 자선등 제단체의 한국측 지부장직을 무수히 맡으시다. 특히 향리인사 모임인 사단법인 충북협회에서는 별세하시던 날까지 6년간 회장으로서 회의 육성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시다.
1963년에 대한민국 황조소성훈장을, 1971년에는 청조근정훈장을, 1969년과 1971년에는 월남정부 훈장을 수령하시다. 1979년에는 중앙대학교에서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으시다. 저서로 <신국제경제질서> 등이 있다.
오호라 인명이 유한이나 제세경륜지사의 영거는 애석불기로다. 오직 공의 평생 유업은 영전불멸할 것이므로 행적의 대강을 비면에 기록하여 예찬함이로다.
미망인 李宰遠
嗣子(사자) 裕植 여 春美, 英植, 자부 鄭敬善, 서 柳吉善, 具本茂, 손 容求 容玟(용민), 외손 柳?碩, 柳洪 具元謨 柳知延(연), 具姸璟
서기 1982년 10월 일
전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문학박사 ★崔永禧근찬, 안동김씨대종회 고문 의학박사 ★金思達 근서, 사단법인 충북협회 근수
■ 도정반세기 (1996, 이승우)
김학응 지사와 충북대학 창건
1950년대에 충북도 지사를 지냈던 사람 중에 관료 출신이 세 사람이었다. 5대 정낙훈씨, 6대 ★김학응씨, 그리고 7대 정인택씨였다. 그 중에 양 정씨는 충남 출신이었으나 김 지사는 괴산 출신으로 이른바 향도(鄕道)출신으로 2대 이명구 지사에 이어 두 번째인 셈이다. 우선 김 지사의 성장 과정과 관료 경력을 더듬어 보자.
두 번째 향토 출신 지사
1899년 괴산군 괴산면 서부리에서 출생. 19세기 마지막 해에 태어나서 56세 때에 충북 도백이 되었다. 경성고등보통학교(현재의 경기고교) 4년을 중퇴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 전문부 정치경제과 3년을 졸업했다.
1925년 충북 도청 내무부 학무과 촉탁으로 첫발을 들여 놓은 후 청주,보은,옥천,제천,진천등 5개 군에서 공직 경력을 쌓은 뒤에 1940년 조선총독부로부터 보은군수 발령을 받은 것이 출세가도의 시발이었다.
그후 제천군수와 옥천군수를 역임하고 8.15해방을 맞아 미군정 시절인 1946년 내무국 지방과장에 보임되어 2년간 근무하다가 충주군수로 내정된 것에 불만을 품고 이에 불응하고 사직해 버렸다.
요즈음의 행정관례와는 달리 그 시절에는 도 지방과장 자리가 비중이 컸던 요직으로서 몇 개 군수를 거쳐야만 차지할 수 있던 중책이었으므로 지방과장에서 서기관 국장 승진이 안 되고 군수로 나가라고 하면 의례 좌천인사로 알고 사표를 던졌던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관직에서 물러난 김씨는 그의 백형 ★김규응씨 (金奎應, 전 교통부장관 김태동씨의 부친)와 함께 북문로 2가에서 양조장 사업을 경영하면서 야인생활로 소일하다가 -----
■ 한독약품내 한독의약사료실 (충북 음성군 대소면 대풍리 37)
☞ 충북 음성 대소면에 있는 한독약품내의 한독의약사료실에 가보면 ★김태동 보사부장관의 친필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김태동 장관은 1969년부터 보사부장관을 지내셨는데, 이때에 쓰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댓글목록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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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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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개 감사합니다.
이번에 서봉 선생님 글씨 한 점을 구입하였습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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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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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서봉 글씨 얼른 보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