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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관찰사 함부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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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12-23 12:18 조회1,6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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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림- 군사공의 손자 김계로의 처부--군사공(칠양)-김돈-김계로(배위:함부림의 따님)-김석정

 

함부림(咸傅霖)
간략정보
시대 고려, 조선
생몰년 1360-1410(공민왕9-태종10)
본관 강릉(江陵)
윤물(潤物)
난계(蘭溪)
시호 정평(定平)
활동분야 문신
함부림(咸傅霖)에 대하여
함부림(咸傅霖)
1360(공민왕 9)∼1410(태종 10).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윤물(潤物), 호는 난계(蘭溪). 검교중추원학사(檢校中樞院學士) 승경(承慶)의 아들이다.
1385년(우왕 11)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을 거쳐 좌정언으로 승진하였다.
1389년 공양왕이 즉위하자 헌납으로 승진하여 정지(鄭地)·이림(李琳)·왕안덕(王安德)·우인열(禹仁烈)·우홍수(禹洪壽) 등 구신들을 탄핵하다가 왕의 미움을 받아 춘주지사(春州知事)로 좌천되었으나 다시 부름을 받아 형조정랑이 되었다.
이때 중방(重房)의 무신들이 문신을 멸시하자 이에 항거하다가 파직되었다.
1392년(공양왕 4) 이성계(李成桂)가 실권을 잡자 병조정랑 겸 도평의사사경력사도사에 복직되었다. 이해 이성계 추대에 참여하여 개국공신 3등으로 개성소윤에 임명되었다.
그뒤 형조의랑에 이어 대사성·좌산기상시로서 상서소윤(尙瑞少尹)을 겸하고 명성군(溟城君)에 봉하여졌다. 태종 초기에 충청도도관찰출척사·예문관제학·동북면도순문사·동북면도순문찰리사 겸 병마도절제사 겸 영흥부윤 등을 거쳐, 1404년(태종 4) 참지의정부사로서 대사헌에 올랐다.
다음해 노비변정도감제조와 경기도도관찰사를 지내고, 1406년에 계림부윤·경상도도관찰출척사를 거쳐, 다음해 다시 참지의정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8년에 형조판서가 되었다가 1410년 파직되었다. 성격이 강직하여 직언을 잘하였으며, 이치(吏治)에 능숙하여 관직을 맡을 때마다 칭송을 받았다.
1405년에는 앞서 1398년(태조 7)의 제1차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과 더불어 왕자 방석(芳碩)을 옹립하였다는 혐의로 탄핵을 받은 일이 있다.
시호는 정평(定平)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太祖實錄, 太宗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燃藜室記述, #용12齋叢話, 車文節公遺事, 鄭道傳의 人間과 社會思想(韓永愚, 震檀學報 50, 1980). 〈韓永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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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觀察使) 함부림(咸傅霖)주C-001을 전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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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은 산수가 훌륭하여서/山水關東勝
봉래와 영주주D-002가 바닷가에 연했네/蓬瀛海上連
정기는 모여서 준걸 낳았고/精鍾生俊傑
기운은 맑아서 신선도 많았다/氣逈得神仙
옛날에 내가 선비들 가르칠 때/昔我訓蒙士
그대가 가장 소년이었다/惟君最少年
총명은 타고난 성품이었고/聰明眞性?
경술은 바로 가전이었다/經術是家傳
강개한 회포는 언제나 격동했고/慷慨懷常激
정미한 이치는 지극히 연마했다/精微理極硏
학행이 아울러 진보하였고/學能行?進
재식이 함께 온전하였다/才與識俱全
섬굴에서 선계를 부여잡았고주D-003/蟾窟攀詵桂
아반주D-004조편주D-05을 선착하였다/蛾班著祖鞭
하늘에 나는 용이 변화할 적에/御天龍變化
어진 신하 봉처럼 높이 날았다/賢德鳳飛騫
나라를 세울 때에 공로가 컸고/開國勳庸大
화상 그려서 총애 많았다/圖形寵渥偏
풍수의 슬픔주D-006을 그치지 못해/樹風悲不止
거적자리 애통히 애처로웠다/?凶痛堪憐
거상하는 제도는 삼 년을 마쳤고/憂制終三載
슬퍼하는 정성은 구천에 사무쳤다/哀誠澈九泉
충신을 구하려면 효자에서 먼저 하고/求忠當孝子
정사를 펴는 데는 어진이가 요구된다/敷政要仁賢
영광은 분모주D-007하는 벼슬을 주었고/榮錫分茅爵
위엄은 장월주D-008하는 권한을 잡았다/威專杖鉞權
높은 명성은 적의 간담 꺾었고/英聲?賊膽
덕화는 백성의 어깨를 쉬게 했다/惠化息民肩
다만 내 마음 바룸에 있거니와/只在吾心正
성덕 펴는 것 잊지 마시오/無忘聖德宣
이별하는 마당에 이 말 주지만/臨離贈此語
충후한 그대의 뜻 잊지 못하네/厚意重拳拳
   
[주 C-001] 함부림(咸傅霖) : 여말 선초의 문신. 호는 난계(蘭溪). 시호는 정평(定平). 고려 말에 병조 정랑(兵曹正郞) 등을 역임하고, 이조의 개국공신(開國功臣) 3등에 들었으며, 이후에 또 동북면 도순문찰리사(東北面都巡問察理使) 등을 역임하였다. 《高麗史》
[주 D-002] 봉래와 영주 : 모두 신선들이 노는 곳으로서 별세계(別世界)를 가리키는 말이다. 《環瀛志》
[주 D-003] 선계를 부여잡았고 :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한 것을 가리키는 말. 과거에 오른 것을 절계(折桂)라 하는데, 선계(詵桂)는 곧 계지(桂枝)의 별명이다. 섬굴(蟾窟)은 달의 별칭.
[주 D-004] 아반 : 양성(兩省)의 공봉관(供奉官)이 동·서에서 마주 서 있는 것을 말한다. 아미반(蛾眉班).
[주 D-05] 조편 : 조생지편(祖生之鞭)의 준말로, 남보다 먼저 착수함. 또는 선편(先鞭)을 잡는다는 뜻.
[주 D-006] 풍수의 슬픔 :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는 슬픔. 《한시외전(韓詩外傳) 권9》의 "고어(皐魚)가 공자(孔子)에게 말하기를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여도 부모님이 기다리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孝而親不待]′ 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주 D-007] 분모 : 띠를 나누어 줌, 곧 큰 공신의 봉함을 받는 일. 큰 공신을 봉할 때 받는 사람이 띠[茅]에다 대사(大社)의 흙을 싸가지고 받았던 고사에서 나온 말.
[주 D-008] 장월 : 큰 도끼를 짚음, 또는 큰 도끼를 가짐. 곧 병권(兵權)을 장악하는 것을 뜻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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