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水亭 小史>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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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2-28 18:02 조회1,555회 댓글0건본문
11. 박성원
?박성원(朴聖源) 1697(숙종 23)∼1757(영조 33).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밀양. 자는 사수(士洙), 호는 겸재(謙齋). 이재(李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박성원(1697-1768)의 <금강록>은 그의 나이 42세인 1738년(영조14)에 함경도 도사로 임명되어 부임하러 가는 도중에 금강산에 들러 외금강과 내금강, 해금강을 15일 동안 두루 구경하면서 느낀 소감을 매우 자세하게 적은 기행문이다.
9월 3일 포천현감 이중태의 인사를 받고, 영평현 경계에 이르고, 양문역에 이르러, 백로주의 하류 금수정을 방문하고, 백운루, 술독 같은 바위, 길 입구 석문동천 큰 글씨, 서쪽 5리 푸른 옥병, 물 건너편 사암 박순의 집터-지금은 서원을 둘러 보고 금강산으로 떠났다.
금수정을 방문하였는데 이 곳이 곧 백로주의 하류이다. 평지의 양 벌판을 끼고 물이 흘렀으며, 마주보며 우뚝 솟아나와 있어서 물이 그 사이로 도달하여 넓게 돌아서 못을 이루고 있었다. 금수정은 서쪽 절벽 위에 있는데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운루는 조금 높은 곳에 있었다. 앞에 봉우리들이 빼어나고 기묘했으며 붉은 잎들이 물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물 가운데는 술독 같은 바위가 있어, 술을 가득 담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봉래 양사언이 "석문동천 (石文洞天, *洞天石門의 오류)" 이라고 큰 글씨로 길 입구에 써 놓았으며,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5리쯤 가면, 푸른 바위가 우뚝 솟아 물의 흐름을 막고 있었는데 이것이 곧 푸른 옥병이다.--
12. 채제공, 정범조
?채제공(蔡濟恭) 1720(숙종 46)∼1799(정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효종 때 이조판서·대제학을 지낸 유후(裕後)의 방계 5대손으로, 지중추부사 응일(膺一)의 아들이다. 홍주 출생.
?정범조(丁範祖) 1723(경종 3)∼1801(순조 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법세(法世), 호는 해좌(海左). 시한(時翰)의 현손으로, 유학 지령(志寧)의 아들이다. 세거지는 원주로 홍이헌(洪而憲)·신성연(申聖淵)·유한우(兪漢遇) 등과 친교가 깊었다.
금수정(金水亭)은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지만 영평팔경(永平八景·영평은 이곳의 옛 현명)의 하나로 가파른 절벽과 울창한 수목이 절경을 이루어 이곳을 방문한 이들이 즐겨찾은 유람처였다. 금수정은 錦水亭이라고도 하였는데, 김확(金?·1572~?)을 비롯하여 안동(安東) 김씨(金氏)가 누대(累代)에 걸쳐 전해온 구업(舊業)으로 도중 훼손된 것을 확(?)의 후손 택인(宅仁, 1753- )이 중수(重修)하였다 한다. [채제공(蔡濟恭) 금수정중수기(金水亭重修記)·정범조(丁範祖) 금수루중수기(金水樓重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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