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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시 고려사(高麗寺=혜인사)의 복원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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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11 15:47 조회1,2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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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일보 (2005/01/11)

“한국불교계 참여” 목소리 높다
中 항저우市 ‘의천 머물던 고려寺’ 복원사업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불교전적의 수집과 중국 불교계의 새로운 사조를 둘러보기 위해 송(宋)나라에 유학했던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1055~1101)의 체류를 계기로 이후 의천과 고려 왕실 및 정부의 후원을 받았던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시 고려사(高麗寺)의 복원소식이 최근 국내에 전해지면서 이번 복원계획을 주도하는 중국의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월간 ‘선문화’ 발행인인 최석환씨는 “지난해 11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영명연수(永明延壽·904~975)선사 탄신 1100주년 기념 학술연토회’에 참석했다가 항저우 종교국장과 이곳 불학원장인 광취안(光泉)스님으로부터 고려사(또는 혜인사)가 올해 10월 준공을 목표로 복원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최근 밝혔다. 또 광취안 스님 등 중국의 고려사 복원 대표단이 지난해 같은 달 한국을 방문, 자료조사까지 끝마쳤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여러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쉽게 이뤄지지 않았던 고려사 복원이 이렇게 급진전된 데는 중국 내 한국 문화유적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김준엽 사회과학원 이사장의 노력과 함께 고려사터 인근인 항저우 시후(西湖) 일대를 찾는 한국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중국측의 의도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국내 일각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떠올리며 3만평의 부지에 고려사와 대각국사 기념관 등을 계획하고 있는 이번 복원계획에 한국측의 참여가 전혀 없음은 물론 국내 불교계의 무관심 속에서 중국 항저우시 주도로 행해지고 있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고려 천태종을 개창한 의천의 흔적이 서려 있고 고려왕실의 후원으로 유지됐던 사찰인만큼 한·중 우호를 위해서도 한국 불교계의 일정한 참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1995년 문화일보에서 ‘의천(義天) 구법(求法) 2만리’로 연재된 기획시리즈를 위해 최병헌 서울대 교수 등 학술조사단이 중국 항저우 고려사터를 찾았을 때 법당 자리에는 허름한 공장이 들어서 있는 등 고려사의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당시 현지 주민은 ‘고려보살’이라는 불상과 커다란 비석이 있었던 3채의 건물이 문화대혁명 때 완전히 파괴됐다고 증언했다. 또 당시 최병헌 교수는 옛날 고려사 전성기에 즐비했던 건물들인 대웅전과 천왕전, 천불각, 화엄경각, 칠조당, 종루, 고려왕사(高麗王祀) 등의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며 공장으로 전용된 법당자리와 그 앞의 농지에 대한 정밀한 발굴조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었다. 그러나 이번에 이런 과정이 일체 무시되고 설계와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란 지적이다.

최석환씨는 “현재 고려사터 일부에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정부가 중국 저장성 정부와 조인을 맺고 화자산좡(花家山莊)이란 호텔을 지어 공동경영하며 차(茶)등 자신들의 특산물을 홍보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정부나 불교계의 대응이 너무 안일하다”고 말했다.

고려사의 원래 이름은 927년 오월왕(吳越王) 전씨(錢氏)가 선원으로 건립한 혜인원(慧因院)이었다. 고려 문종(文宗)의 4째 아들로 태어난 의천은 31세 때인 선종 2년(1085) 송나라에 들어가 13개월여 체류하는동안 이곳에서 고승 정원(淨源)법사를 만나 화엄학을 토론했다. 의천이 귀국후 재정적인 후원을 한 것을 계기로 이름이 혜인고려화엄교사(慧因高麗華嚴敎寺)로 바뀌었으며 줄여서 고려사로 더 많이 불려지게 됐다.

또 의천과의 인연을 계기로 그의 모후 인예태후(仁睿太后)와 형인 선종(宣宗)도 금물로 쓴 화엄경을 보내주었으며 숙종(肅宗)은 이를 보관할 경각(經閣)을 지을 경비도 시주했다. 1628년 간행된 ‘옥잠산(玉岑山) 혜인고려화엄교사지(志)’에 따르면 1312년 충선왕(忠宣王)도 고려 관리를 파견해 대장경 한 질과 사찰 보수비용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오는 등 이 곳과 고려의 관계는 고려후기까지 계속됐으며 고려사라는 이름도 1757년 법운사(法雲寺)로 바뀔때까지 이어졌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5/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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