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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안동김씨선세사적>에 대한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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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5-01-28 00:54 조회1,46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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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선세사적>에 대한 짧은 생각

- 미련하고 아둔한 생각이오니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용주 선생의 발문에서 “旣屬李副學觀海公爲序引”이라 했는데, ‘觀海’는 동주 이민구 선생의 또 다른 호입니다. 그리고 이미 관해 공이 서문을 썼다고 한 것으로 보아 솔내 대부님께서 먼저 올리신 <김씨선세사적서>와 용주 선생의 <안동김씨선세사적발>은 동일한 책에 수록된 글로서 서로 짝을 이루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두 분의 서문과 발문 내용으로 보아 <안동김씨선세사적>은 단권이며, 상하편으로 이루어진 1책 2편인 것이 분명합니다.

내용은 서문과 발문을 종합해 보면, 상편은 신라김씨 선대 37분의 임금님에 대한 본기이며, 하편은 상락공(충렬공) 이하 20여 대까지 우리 문중 할아버지들 행적과 업적 등에 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발문에서 ‘원보(元譜)’라 한 것은 우리 문중 최초의 보책인 <경진보(1580년 발간)>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안동김씨선세사적>은 경진보를 모신 지 70년 후에 판결사공(휘 효건)께서 선세 사적을 애써 찾아 모아서 발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발문의 “后七十年”은 1650년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발문 끝 부분에 원보(경진보)를 더욱 확대하였다 하는 내용으로 보아 상당 부분 보책의 성격도 갖고 있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경진보 다음의 보책인 <기미보>가 1739년(영조 15년)에 발간되었으니 간극이 무려 160년에 가깝습니다. 만일 <안동김씨선세사적>이 어느 정도 보책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면 그 간극을 메워 주는 역할까지 담당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서문 끝 구절로 보아 판결사공(휘 효건)과 동주 선생은 서로 가까이 내왕하는 사이였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참고

이민구 1589년~1670년

조   경 1586년~1669년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주회
작성일

  귀한 고찰을 하셨습니다.
경진보를 모신 지 70년 후에 판결사공(휘 효건)께서 선세 사적을 애써 찾아 모아서 &lt;안동김씨선세사적&gt;을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