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중국에서의 우리 선조님---마르코 폴로와 김방경, 김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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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27 00:26 조회1,219회 댓글1건본문
■ 충렬공 김방경
● 3차로 진도와 탐라도에서 삼별초를 완전토벌하고 나서 시중으로 계실때인 62세때 1273년 7월에 원나라 황제의 명을 받고 원나라에 가셔서 세조 쿠빌라이의 환대를 받고, 일본 정벌과 관련한 명령을 받고, 이듬해인 1274년 1월에 개경으로 돌아 오시었습니다.
● 4차로 1274년의 제1차 일본정벌을 마치고 돌아와서 문하시중으로서 64세때인 1275년 1월 8일 일본정벌 후의 고려의 궁핍한 상태를 호소하기 위하여 세조 쿠빌라이를 알현하기 위해서 원나라로 떠나서 3월 신묘일에 돌아 오시었습니다.
● 5차로 중찬으로서 65세때인 1276년 7월부터 10월까지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성절사로서 원나라에 들어가셔서 원 세조 쿠빌라이로부터 고려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호두금패를 받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고 돌아 오시었습니다.
● 6차로 위득유, 노진의 등에 의한 김방경 무고사건으로 홍다구에 의한 고문과 대청도 유배시인 67세때 1278년 7월초에 장순룡과 함께 상도(개평부)에 도착하여 무고사건에 대한 해명후 충렬왕 일행과 함께 연도(대도,북경,대명부)를 거쳐 동경(요양)을 거쳐 9월초에 고려에 돌아 오시었습니다.
● 7차로 원나라에 가셔서 무고사건을 해명하고 1278년 9월초에 고려에 돌아오신후 무고사건의 배후 조종자이며 고려조정을 어지럽히고 있는 이분희 일파를 충렬왕과 함께 처단하였고, 이를 조사하러 나온 원의 속노가(쓰루카)를 따라 12월말에 원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언제 고려로 돌아오셨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충렬왕이 다음해 2월에 돌아오신 기록으로 보아 충렬왕을 모시고 같이 고려로 돌아오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 8차로 69세때인 1280년 11월 신년축하차 賀正使(하정사)로 연도에 가서 신년을 하례하고 제2차 일본정벌의 명을 받고, 70세때인 이듬해 1281년 2월초에 개경에 돌아오시고, 다음달인 3월달에 제2차 일본정벌의 길에 오르셨습니다.
■ 김흔(金○)
1251(고종 38)∼1309(충선왕 1). 고려시대의 무신. 아버지는 명장이며 명재상이었던 방경(方慶)이다. 음서(蔭敍)로 산정도감판관(刪定都監判官)을 거쳐 장군이 되었다.
(27세) 1277년 북쪽 변방이 소란해지자 출정하였고, 이듬해 방경이 무고를 입어 대청도(大靑島)로 유배될 때 백령도에 유배되었으나, 충렬왕의 변호로 풀려났다. 아버지 김방경과 함께 원나라에 다녀왔다.
(29세) 1279년(충렬왕 5) 대방공 징(帶方公○)이 원나라에 갈 때 원부(元傅)의 아들 정(貞) 등 의관(衣官)자제 25인과 함께 뚤루게(禿魯花)로 다녀왔으며,
(32세) 1282년에도 상장군(上將軍)으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원나라에 있을 때 고려사람 유주(庾○)가 원나라의 황제에게 고려에 이롭지 못한 일을 건의하자, “너는 금필(黔弼)·자량(資諒)의 후손이 아니냐? 그런데 본국을 그와같이 파괴하려 하느냐.”고 비난하였다.
(39세) 1289년 만호(萬戶)로서 조정군(助征軍)을 이끌어 요양행성(遼陽行省)에 갔으며, 동계(東界) 방수군(防戍軍)을 조사하고 합단(合丹)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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