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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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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29 08:42 조회1,540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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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김씨 홈

 21) 김감(金堪)[1590 ~ 1662](선조23 ~ 현종2)

安東人 자(字) 수임(秀任), 호(號) 부가(浮家), 부휴재(浮休齊) 정묘(丁卯) 진사(進士) 관(官): 세마(洗馬)


配: 김제조씨(金提曺氏)


墓:태인(泰仁) 고현내(古縣內)수천동(水川洞) 유좌(酉坐), 송산사(松山祠) 배향.


碑銘: 경암(敬庵) 윤동수(尹東洙) 찬.


議政府 侍講院事全州 李載現 면.


奎章閣 副提學延安 李炳觀 서.


칠양(군사공)-塡-三老-瑀-允剛-夏詳-壤-鼎一-감(堪)


 *송정(松亭):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산 4


조선조(朝鮮朝)의 광해군(光海君) 때 폐모사건(廢母事件)에 항소(抗訴)한 세속 7광(七狂)10현(賢)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곳에 모여 음풍영월(吟風詠月)하며 어지러운 세상에 벼슬을 버리고 세월을 보내던 곳이다. 이곳 정읍 칠보면은 公의 외가로 외증조부 양주목사(楊州牧使) 청백리 김약묵(金若默) 도강(道康-康津의 옛이름)인으로 호는 성재(誠齋)이며 외조부 목사(牧使) 김복억(金福憶)은 농포(農圃) 김정일(金鼎一)의 장인(丈人)이다. 성재(誠齋) 김약묵(金若默), 증손 명천(鳴川) 김관(金灌: 10賢)은 고운 최치원, 불우헌 정극인과 함께 무성서원(사적166호: 숙종22년(1696)사액)에 배향되었다.


公値丙子亂勤驛卒誓以同死於南漢圍中入水原山城作短律曰一年將盡亂離中白首從軍意轉雄北望孤城消息斷不知誰是大元戊卒至誠下之盟斥和不得率妻拏致仕題詩東門上曰北岳山猶舊人間事不同明詩那忍哭掩淚出城東遂隱於錦大山時下晩而喜易手植五松以保晩節至今人稱其松曰察訪松與宋곤庵諸賢會于泰仁詩山松亭修契其後承旨金應均跋 松亭圖領相金鍾秀撰 七狂國序士林仰墓配享松山洞 


송정(松亭): 전북문화재133호 조선조(朝鮮朝)때 광해군(光海君)의 폭정(暴政)과 폐모사건(廢母事件)에 항소(抗訴)한 세속 7광(七狂) 10현(賢)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모여 음풍영월(吟風詠月)하며 세월을 보내니 세상에서는 이들을 가르켜 7광과 10 현이라고 불렀다.

7 광(七狂)

김대립(金大立), 김응윤(金應贇), 김 감(金 堪), 송치중(宋致中), 송민고(宋民古), 이상형(李尙馨), 이 탁(李 倬)

10현(賢)

김응윤(金應贇), 김 관(金 灌), 김 감(金 堪), 김 급(金 汲), 송치중(宋致中), 김우직(金友直), 송민고(宋民古), 양몽우(梁夢禹), 이 탁(李 倬), 김 정(金 鼎).


후송정(後松亭): 송정(松亭) 아래 산 허리의 바위 위에 있다. 고종(高宗光武3年) 때인 1899년에 화개헌(和介軒) 김직술(金直述)이 처음 지었다. 원래는 송정의 10현(賢)을 추모한다는 뜻에서 十송정이라 불렀는데 언제부터인지 후송정이라 했다. 1985년에 다시 중수하였고 바위 위에 후송정 42원비(員碑)를 세우기도 했다.


송산사(松山祠): 1788년(正祖 12年) 창건하여 김대립(金大立) 김응빈(金應嬪) 김정(金鼎) 김감(金堪) 김급(金汲) 송치중(宋致中)을 향사(享祠)하였는데 1868년(高宗 2年 戊辰)에 훼철되었다가 1954년 송산(松山, 詩山里)에서 성황산(城隍山) 동편에 중건(重建)하였다.


소재지: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산 4


영모당(影慕堂): 송정 10현도(松亭 十賢圖)를 모신 곳이다. 1898년(松亭 十賢圖)에 창건하였다. 일명 송정영당(松亭影堂)이다. 광해 난정(光海亂政)에 항소(抗疏)하고 벼슬을 버리고 나와 이곳에 모여 나라를 염려하는 뜻있는 사람들이었으니 이를 가리켜 7광10현(七狂十賢)이라 한다. 후손들이 영당(影堂)을 세우고 7광도(七狂圖)와 10현도(十賢圖)를 봉안하고 중정(中丁)에 제사 지냈다. 10현(賢)의 영상을 송민고(宋民古)가 그렸는데 근세에 와 정산(定山)채용신(蔡龍臣)이 다시 모사한 것이다.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태영씨 선조님이아니신가요?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홈에 올렸습니다.

김태우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우
작성일

  저의 선조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