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렴사공 金士廉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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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1-05-11 02:03 조회2,543회 댓글0건본문
안렴사공파의 파조이신 안렴사공 金士廉(김사렴) 선조는 공민왕초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몽주, 이색 등과 교유하였고 신돈의 만행을 탄핵하는등 직간으로 유명하였으며, 이성계의 역성혁명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켜 두문동72현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청주 오근촌에 은거하여 여생을 마친 여조충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해주 김씨 (海州金氏)의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해주김씨(海州金氏)는 동성동본이면서도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첫째 계통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고려말에 안렴사를 지내고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두문동에 은거했던 김사렴(金士廉)을 원조로 하고, 조선조에서 전라 도사를 지낸 김문동(金文東)을 중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다른 한 계통은 조선 인조조에 김헌(金獻)이 병조판서로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직간을 하다가 해주로 유배되어 그곳에 살았는데 그의 7세손 맹(孟)이 평안도로 이거하여 조상의 세거지인 해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문동(文東)의 아들 우한(佑漢)이 연산군때 대동찰방을 지냈고, 그의 손자 정(鼎)은 이조참판을 거쳐 이조판서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으며, 정두(鼎斗)는 현감을 역임하여 동지중추부사 양호(良浩)와 함께 이름을 떨쳤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해주 김씨(海州金氏)는 남한에 총 1,449가구, 6,27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된 정보나 다른 정보를 알고 계신 분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해주 김씨 (海州金氏)의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해주김씨(海州金氏)는 동성동본이면서도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첫째 계통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고려말에 안렴사를 지내고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두문동에 은거했던 김사렴(金士廉)을 원조로 하고, 조선조에서 전라 도사를 지낸 김문동(金文東)을 중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다른 한 계통은 조선 인조조에 김헌(金獻)이 병조판서로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직간을 하다가 해주로 유배되어 그곳에 살았는데 그의 7세손 맹(孟)이 평안도로 이거하여 조상의 세거지인 해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문동(文東)의 아들 우한(佑漢)이 연산군때 대동찰방을 지냈고, 그의 손자 정(鼎)은 이조참판을 거쳐 이조판서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으며, 정두(鼎斗)는 현감을 역임하여 동지중추부사 양호(良浩)와 함께 이름을 떨쳤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해주 김씨(海州金氏)는 남한에 총 1,449가구, 6,27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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