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2005. 7. 12. 항용(제) 제공)
1. 발간일시: 1934. 5. 30 2. 발간장소 : 평안북도 광성면 풍하동 3. 발간처 : 新羅朴昔金淵源譜 宗約院 4. 내용 1) 역대 신라 제왕과 박,석,김 삼성의 연원과 그 계보를 적음 2) 안동김씨의 계보 중 경순왕--방경까지의 계보를 밝힘(11세손) 敬順王-殷說-叔承-元姜-文雄-日兢-利請-義和-敏成-孝印-方慶 *기존 안동김씨 족보에 없는 元姜, 文雄 두 분의 휘가 더 있음 5. 사진 자료 1)김용진본 : 김용진(안, 보명-재철)님께서 2005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복사 영인한 자료
<표지>
<신무왕----경순왕-佺,瑤,琨,英,奮,鎰>
<경순왕-金皇, 鍾, 鑑, 錫, 鍵, 鐥, 金垂, 德摯,>
*책의 간지 표식이 김씨부분부터는 <계림김씨연원보>라 되어 있다. 그런데 계보연구회본(경주김씨 계보연구회 간)에는 <삼성연원보>라 되어 있는 것이 다르다. 내용과 활자 등은 모두 동일함. 다만 김씨 부분으로 넘어 가면서 2p 정도가 약간 상이한 편집을 함. 이로 보아 국립 중앙 도서관에는 2종류의 삼성연원보가 있는 것으로 보임.
<鑑(殷說)-淑(淑承)-元姜-文雄-日兢-利請-義華-敏成>
<敏成-孝印-方慶-선,흔,恂-承用,承澤,承祐,永旽,永暉,思順,永煦-厚,玖,昴,之衍,之瑞,神,荇,斤重,士謙,士廉,思安,思衡>
<책 뒷장>
<세부 자료>
<14p> <15p>
<15p>
<경주김씨 계보연구회 방문기> (2008. 3. 25. 항용(제) 소개 )
1. 일시 : 2008. 3. 19(수). 16:30--21:30 . 방문자 : 김항용 2. 장소 : 서울시 서대문구 중림동 313-6050 3. 교통편 : 지하철 2호선, 6호선 <충정로역> 5번 출구.--중림파출소, 카톨릭출판사 방향 약 200m. 카톨릭 출판사 아래로 약 30m 다음의 4층 건물(1층에 쭈꾸미 집) 지하 4. 만남자 1)金龍石(77세) : 연구실장. 상주 근무자. 경주김씨 영분공파 문선공 종중. 반포 거주. 충북에서 초등교 교사 시작. 경기도에서 정년퇴임. 1992년 초기부터 활동. 2)金應俊(66세) : 92년 초기부터 활동. 건물 소유주. 1층 음식점 경영. 본 연구소 무료 임대하고 계심
<도로에서 본 건물>
<건물 입구>
<입구 현판>
<지하 사무실 입구의 안내판>
<건물 소유주이시며 계보연구회 초창기 창립 멤버이신 김응준님, 사무실을 무료 임대하고 계시다>
<김용석 연구실장님, 계보연구회 상임위원>
<사무실 안에서 대담 도중 펼친 자료들>
<장서들>
<장서들>
<장서들>
<장서들>
<역대 회장, 각종 임명장, 상패 및 감사장들>
평일이지만 직장의 여유가 생겼다. 우리 문중의 선계문제에 대한 의문점으로 늘 개운하지 못하던 차에 이 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를 해 오고 있는 <경주김씨 계보연구회>를 찾기로 했다. 미 리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지하철 <충정로역> 5번 출구에서 나와 가톨릭출판사 가는 길을 따라 약 200m를 간 뒤 가톨릭출판사 아래로 30m를 가니 좌측으로 5층건물 위에 <경주김씨 계보연구회>간판이 보인다. 건물 1층은 <쭈꾸미집>이다. 건물 지하로 가니 작은 표찰이 문에 붙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책들이 전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김 용석연구실장님과 김응준님의 환대를 받고 우선 그동안 <연구회>의 연혁과 연구 성과의 말씀을 설명 들었다. 놀라웠다. 1992년부터 연구해 온 이 분들의 노력이 얼마나 위대했던가를 깨닫고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이 연구회는 선계 계보를 바로 잡자는 뜻을 가진 10인의 동지들로 구성되어 수많은 족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였으며, 족보마다 혼란스럽게 기록되어 있거나 추상적 상태에 있는 선계 계보에 대한 연구를 확증적인 자료 검증을 통해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또 놀라운 것은 경주김씨 대종회로부터 어떤 경제적, 심적 지원을 받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요, 오히려 그동안 오해와 불신 속에서 배척, 시기, 욕설, 때론 소송까지 받아온 단체라는 것이었다.
2002 년에는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여 확실한 연구회로 자리 잡았고, 드디어 2007년에는 부안김씨로부터 제소를 받은 뒤 대법원으로부터 경순왕의 장손 문중은 경주김씨 대장군공파라는 것을 승소 판정받는 쾌거를 이루어 냈으며, 그 외 수많은 경주김씨의 선계 계보를 상당 부분 바로 잡아 놓았고, 우리 안동김씨와 관련해서는 대안군(殷說)의 차자인 淑(叔承) 아래로 <원강(元康)-문웅(文雄)>이 더 있고 난 뒤 일긍(日兢)으로 가계가 이어진다는 놀라운 논거를 찾아내어 정리하여 밝혀 놓았던 것이다.
나는 먼저 평장사공(휘 숙승)에 대한 자료를 여쭤 보았다. 이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았다.
<평장사공 휘 숙승에 대하여> 1. 여러 자료를 종합하여 행장을 정리해 놓음 1)인명사전의 강감찬 장군 란 참조 2)계림지 3)인명대사전 2. <인명대사전>(신구문화사. 1992년. 124P의 金叔興은 金叔承임 3. <한국사연표>(역임사, 1991, 이만열저) 등에 金淑興이 나타난다. 4. 1011년에 거란이 침입해 오자 구주에서 거란군 1만 여 명의 격멸시켰으며 그 해 거란의 성종이 이끄는 대군에게 중과부적으로 순절했다. 5. 숙승(叔承)은 <淑, 淑承, 叔興>으로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6. <고려사, 고려사 절요>에는 叔興으로 기록 되어 있다.
숙흥(淑興)이란 이름을 찾아보니 많은 자료가 나왔고 그동안 안개 속에 있었던 공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흥분되었다.
그 대략적 자료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
*<디지털 한국학에서>(http://koreandb.empas.com/) 김숙흥(金叔興) ?∼1011(현종 2). 고려의 무장(武將).
1010년(현종 1) 거란의 성종이 친히 40만대군으로 침입하여 개성을 함락시키고 돌아갈 때, 구주(龜州)의 별장으로서 중랑장 보량(保良)과 함께 거란병을 쳐서 1만여명을 베고, 이어 거란의 선봉을 애전(艾田:지금의 의주)지방에서 격파하여 1천여명을 베었으나, 갑자기 거란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아 당시 서북면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였던 양규(楊規)와 함께 전사했다.
그 공으로 장군에 추증되었으며, 어머니 이씨에게는 한평생 해마다 조 50석을 상으로 주었다.
1019년 공신녹권(功臣錄券)이 내려졌고, 1024년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에 녹권되었다.
또한, 문종이 즉위하자 그 공을 추념하고 표창하여 장려하기 위해 그 형상을 공신각(功臣閣)에 도형(圖形)하도록 하였다.
高麗史, 高麗史節要. 〈河炫綱〉
*<경주김씨 계보 연구회 연구자료>에서
<金公淑承將軍(龜州別將) 行狀>
김공(金公) 숙승장군(淑承將軍)은 955年(?) 대안군(大安君, 母는 文英 崔彦撝의 女)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이때 고려 조정의 제 4대 광종(光宗. 재위 949-975)은 지방 호족(豪族)의 세력을 억제하고 나라의 기강과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북방 방어에 힘썼으며, 특히 광종은 황해도 중요 방어 기점을 비롯하여 압록강 하류인 평안도 삭주(朔州), 구주(龜州), 태천(泰川), 정주(定州), 선천(宣川), 박천(博川), 철주(鐵州) 등에 축성(築城)을 견고(堅固)히 하였고 압록강 북쪽에서 출몰하는 거란족과 항상 대치하였다.
975년에는 광종이 승하(昇遐)하고 제 5대 경종(景宗)이 즉위하였다. 이때 김부대왕(金傅大王-敬順大王)은 따님을 경종(景宗)에게 납비(納妃-獻肅王后)하였으며, 대왕에게는 상부도성령(尙父都省令)으로 삼고 식읍(食邑) 일만호를 더하였다.
장군께서 일찍이 24세에 공부시랑(工部侍郞)으로 출사(出仕), 축성(築城) 등 토목공사(土木工事) 실무(實務)에 임(臨)하고, 이 방면에 역량(力量)을 발휘하였다. 경종(景宗) 3년 978년 무인(戊寅) 4월 4일, 조부(祖父) 경순대왕(敬順大王)은 유화궁(柳花宮)에서 서거(逝去)하시니 향수(享壽) 97이시었다. 이듬해 979년 경종 4년에는 시세(時歲) 등 발해(渤海) 유민(遺民) 2만여명이 투항(投降)했을 때 북방(北方) 종군(從軍)에 나섰다.
982년에는 왕건 태조의 원당(願堂)인 봉은사(奉恩寺)에서 김부대왕(金傅大王)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대안군(大安君)과 셋째 아들 염(濂)의 자(子)인 심언(審言)과 함께 회록(回祿)과 절일(節日)에 제(祭)를 올렸다. 이때(983년) 강감찬(姜邯贊)이 문과(文科) 장원(壯元)하고, 989년은 병마사제도(兵馬使制度)가 처음 시행되었다.
993년 거란 장수 소손령(簫遜寧)이 침입하자 중군사(中軍使) 서희(徐熙)는 적진에 들어가 화약(和約)을 이끌어 냈다. 994년 구주성(龜州城)을 견고히 증축하였다. 996년에 처음으로 주철(鑄鐵)을 만들어 유통(流通)하였다. 공부시랑(工部侍郞)으로 승진(昇進)하였으며, 998년 이후인 7대 목종(穆宗) 재위중에 평장사(平章事)릉 역임하였다.
구주별장(龜州別將)으로 재직 중 1010년 고려 현종(顯宗) 1년 거란의 성종(聖宗)이 목종(穆宗) 시해(弑害)를 문죄(問罪)한다는 구실로 내침(來侵)하여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 강조(康兆)를 잡아 죽였다. 거란군이 회군(回軍)할 때 구주성(龜州城) 길목에서 숙승장군(淑承將軍)은 거란군 1만여명을 목 베었다.
1010년 8대 현종(顯宗) 10년, 공신(功臣)에 녹권(錄券) 되고 1011년 신해(辛亥) 현종(顯宗) 2년, 세천(世阡)하셨다. 뒤에 삼한벽상공신(삼한벽상공신)의 호를 받고 장군으로 추증(追贈)되시었다.
*상기 행장 자료 구성 기초 자료 1) 인명대사전(신구문화사간. 1992년)-강감찬란, 김숙흥란 2) 계림지(사단법인 경주김씨 계보회. 2004. 7.) ---------------------------------------------------------------
다음으로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인 평장사공 이후의 계를 <원강(元康)-문웅(文雄)>으로 보는 것에 대한 논거를 떨리는 심정으로 부탁했다. 그 자료는 다음과 같았다.
----------------------------------------------------------------
1. <三姓淵源譜> (1차-1642년간, 2차-1934년간. 46-48P)
<표지>
<47p>
<48p> <59p>
<맨 뒷면>
<앞의 별지로 붙은 영인판>
<맨 뒤에 붙은 영인본 발문>
<신라삼성연원보 해설 요약> 가. 발견 : 1995년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는 경주인 김태원님(계보 연구회원)이 여러 문헌 자료들을 모아 이곳에 복사하여 갖다 줌으로써 최초발견 나. 발간장소 : 평안북도 광성면 풍하동 다. 발간처 : 新羅朴昔金淵源譜 宗約院 라. 기록 내용 1) 역대 신라 제왕과 박,석,김 삼성의 연원과 그 계보를 적음 2) 안동김씨의 계보 중 경순왕--방경까지의 계보를 밝힘(11세손) 敬順王-殷說-淑-元姜-文雄-日兢-利請-義和-敏成-孝印-方慶 3)淑 : 一諱淑承 一作淑永 官工部侍郞 公下二男 系平安北道 龍川郡 龍川面 栢山洞 習敦系 全羅南道 長興郡府 西南 松岩里 金永贊家譜 準記載 (일명 淑承, 일명 淑永, 벼슬은 공부시랑이며 공 아래로 두 아들이 있다. 후손들은 평안남도 용천군 용천면 백산동에 있다. 습돈의 후손인 전라남도 장흥군 서남쪽 송암리에 있는 김영찬 소장 족보를 전재하였다) 4)元姜 : 官禮部侍郞 慶南 全北 譜實 5)文雄 : 官判禮賓寺事 6)日兢 : 官至太師大匡 7)利請 : 官安東太守 居安東知禮村 8)義華 : 衛尉寺主簿 一云禮部侍郞 9)敏成 : 官翰林直學士 墓安東府 西林村. 生五男孝恭 孝印 孝(실사+侯) 孝(실사+爰) 孝(실사+且) 10)孝印 : 文科 兵部尙書 翰林學士 知制誥 追封中書令 善隸字
2. <경주김씨 갑인보>
가. 경주김씨족보(1934년. 경주김씨 雲岩公派譜所 간. 56p) 나. 1914년부터 편집시작. 경주김씨 좌랑공파(추사선생 집안) 족보 다. 기록내용 : 상동 殷說-淑-元康(官禮部侍郞)-文雄(官判禮賓寺事)-日兢
<갑인보 표지>
<갑인보 내부-56p)
<갑인보 내부-맨 뒷면>
3. <경주김씨 함흥보>
가. 서명 : <경주김씨 대종보>(卷之九. 兵判公派. 1931년 함흥 발간. 5P) 나. 기록내용 : 상동
<함흥보-표지>
<함흥보 내부-5p>
4. 연안김씨세보(全) (연안김씨대종회. 1940년간. 9-10P)
가. 기록 내용 : 상동
<연안김씨족보-내부 9p>
<연안김씨 족보-내부10p>
이어 김응준님께서 삼성연원보에 대한 추가 설명을 해 주셨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 소화9년(1934년) 발간한 것으로 기록됨. 총독부 도장이 찍힘. 2. 족보의 나이는 서문 기록 내용이 중요 가. 兎山人 李承學이란 사람이 1642년(임신년)에 기술한 서문 내용을 보면 1632년에 종거(鍾鐻-경주인. 초명 景大. 1580년생)가 53세에 삼성연원보를 시작한 것으로 나옴. 나. 서문 기록 연도는 1642년이므로 10년간에 걸쳐 이 작업을 한 것임. 이때는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는 등 매우 국가적으로 위태로운 시기였는데 이 어려운 분위기에서 전국을 순회하며 이 족보를 만든 것임. 3. 현재의 삼성보는 1934년에 1642년의 목판본 삼성보를 그대로 금속 활자 인쇄한 것으로 봄. 4. 지난 1996년에 삼성보의 <元姜-文雄>기록 위에 있는 근거 문헌 족보 소유자인 전남 장흥의 김영찬 후손 집을 찾아 전화로 문의함 * 김영찬은 아들이 없이 딸만 3(?)을 두고 사망. 큰 딸을 찾으니 장흥 인근에서 노점 상을 하고 있었음. 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10세 쯤에 구 족보를 집안의 어른이 가져 갔다고 함. 딸의 숙부를 찾아 문의하니 장조카가 가져 갔다고 함. 장조카는 숙부가 가져갔다고 서로 미룸. 김영찬의 양아들은 제주에 살고 있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상속 받은 것이 없다고 함. *김영찬 소장 족보를 찾는 것은 어렵다고 봄 5. 삼성보의 중요적 가치 가. 새로운 선계에 대한 내용은 그 근거 자료명을 기록함 나. 1642년에 발간한 족보에 실린 인물들이 고려말까지만 나오는 것은 철저하게 연원보적 목적으로만 제작한 것이라는 점. 즉 어떤 문중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족보 제작이 아니라 순수 학술적, 순수 계보 연구와 자료 보관의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점 다. 일부 내용이 삼국사기와 같으며 일반 족보와는 다른 설득력있는 계보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 등이 높이 가치를 지니고 있음 예) <구족보> 민공-실홍-효종-경순왕
<삼성보>, <삼국사기> 민공-실홍-억렴-유렴- 인경-효종-경순왕-
<정문연의 김창경 교수에게 질의-경순왕 전비 기록내용> 민공-실홍-억렴-유렴- 인경-효종-경순왕-
라. 대구김씨가 경순왕의 4자로 석씨할머니 자인 英자 후손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 대구김씨와 경주김씨 족보에도 없는 英자의 17대 후손까지 이곳에 기술되어 있는 등 설득력 있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 마. 부안김씨가 대안군(은열)의 15대손에서 나왔다는 내용이 기술. 경주김씨 족보와 부안김씨 족보에는 나와 있지 않는 귀중한 상계의 계보 내용을 유일하게 적고 있음. 이는 2007년 부안김씨측에서 경주김씨 대장군공파에 소송을 하여 자신들이 마의태자의 장남 집안이라고 우기던 것이 대법원에서 대장군공측의 승소 판결로 끝난 결정적 자료 임. 바. 삼성보는 선계 계보에 대해 그동안 미상이었던 선조들의 휘와 계보를 정확히 밝혀 놓은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임. ---------------------------------------------------- 오 후 4시 30분부터 시작된 대화는 자리를 1층 식당(김응준님 운영)으로 옮겨 밤 9시 30분까지 이어 졌다. 아무런 지원도 없이, 아무런 보상도 없이 정신적 심적 지원도 없이, 오히려 주변의 시기와 모함과 욕설 등을 들어가면서까지 묵묵히 16년간을 오직 선계의 계보 연구에만 몰두해 온 이 분들의 노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 지고 감동이 밀려 왔다. 연 2회 정도에 걸친 정기 간행물 <계보연구>도 발간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너무도 알찼다. 특히 충렬공의 아우님이신 <玄慶>의 손 <永奎>를 시조로 모시는 수성최씨 문중의 한 분이신 省菴 崔重哲님은 이 <계보연구>(2007년 추 동계호. 제 14권, 3, 4호. 2007. 12. 20. 경주김씨 계보 연구회 간) 간행물 속에 <隋城崔氏씨 상계 정립에 관한 尋究>라는 제목의 논문(28-35p)을 발표하고 계셨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경순왕 이후 충렬공 사이의 선계문제에 대한 글이었다. 최중철님은 상기의 <삼성 연원보> 등을 참고로 하여 선계 계대를 <殷說-淑-元康(官禮都侍郞)-文雄(官判禮賓寺事)-日兢>으로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서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또 연구소에서는 <계림지>를 발간하여 신라김씨 전체에 대한 모든 선계의 흐름을 정리 발표하고 있었다. 놀랍고 감사했다.
김 용석연구실장님과 고속터미널에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금쪽같은 님의 말씀을 들었다. 님께선 “남은 문제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신라김씨 내 각 성씨 문중회에 어떻게 전달할 것이며, 또 그 분들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까”라고 하시며 변화를 싫어하는 문중회의 습관적 의식구조 문제를 걱정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 오늘 달빛은 참 밝았다. --------------------------------------------------------
<계보연구 소개>
<표지-계보연구회 정기 간행물. 2007년 후기>
2. <계보연구> 내부의 신라김씨 분관선원표 ----------------------------------------------------------------
<계림지>
<계보연구회 간, 계림지>
<신라 삼성 연원보> 속의 경순대왕 생존 유언> <삼성연원보 속에 들어 있는 경순대왕 유언문>
金石記 : 新羅 敬順王表(경기도 장단 고랑포리) 新羅敬順王妃 朴氏表(강원도 금화 三甲山) <三性淵源譜> (국립중앙도서관. 古 202-8호. 44쪽)
<번역문> (2008. 4. 29. 항용(제) 국역) 경순왕이 이르기를, “내가 죽으면 용이 되어 兄山의 허리를 잘라 경주 백성들이 안심하고 복을 누리게 하겠다” 라고 하였다. 그 말씀대로 그의 몸은 과연 용이 되었다. 한편 兄山의 물가에서 한 달이나 머물러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용을 볼 수가 없었다. 이에 한 과부의 아들이 거문고(주1)를 켜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곳(형산 물가)에 가보겠습니다” 라고 하자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고 하니 아들은 다시, “가서 보고 돌아 오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어머니는 아이를 꾸짖으면서, “세상에 보기 드문 그 큰 뱀을 무엇 때문에 가보려 하느냐” 고 하자 아들은 다시, “어머니, 염려하지 마세요, 곧 돌아 오겠습니다” 라 고 말하고 곧 (물가에) 가서 용이 무슨 뱀으로 보이는지 돌아보고 나서는 발을 구르며 돌아왔다. 이 때 용의 소리가 세 번 울리며 風雲이 일어나더니 그 뱀이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면서 兄山의 허리를 자르고 동해 입구 형산의 한 바위에 ‘허리를 자른 자는 金傅’라고 써 놓았다. 또 그 왼쪽에는 ‘거문고를 잘 켠 功이 있어 땅 물려줌을 허락하노라’라고 새겼다. (이는 용이) 東海 十二島에 날아드는 강도(주2)를 소탕하고 큰 바위 속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上帝께서 용에게 이르기를, “朝 鮮은 東海의 입구이므로 치지 말고 속히 물러가서 하늘의 안개를 없앨 것이며, 옛 것은 가고 새것이 오도록 하라. 兄山의 은혜를 감사하게 여겨 형산 위쪽에 한 칸의 제당(祭堂)을 짓고 매년 五月 端午日에 모든 백성들이 가뭄과 장마의 재앙이 (오지 않도록) 봉축하게 하라. (그러면) 경순왕이 存位時에 날씨의 快晴과 가뭄의 祈雨祭를 매년 축원한 것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라고 하였다.
주1. 거문고 : 왕은 거문고를 즐겨 치심 주2. 東海 十二島에 날아드는 강도 : 동해 12섬에 왜구가 자주 침범함
<삼성연원보 이본-김재철본>
상기 <계본 연구소본>과 달리 우리 문중의 원로 연구가이신 김재철(안)님께서 2006년 국립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안사연 여러분들에게 배부한 것이 있음. 편집 체제와 간지 표제(김씨 부분은 <계림김씨연원보>라 적힘)가 약간 달랐음.
<표지>
<신무왕----경순왕-佺,瑤,琨,英,奮,鎰>
<경순왕-金皇, 鍾, 鑑, 錫, 鍵, 鐥, 金垂, 德摯,>
*책의 간지 표식이 김씨부분부터는 <계림김씨연원보>라 되어 있다. 그런데 계보연구회본(경주김씨 계보연구회 간)에는 <삼성연원보>라 되어 있는 것이 다르다. 내용과 활자 등은 모두 동일함. 다만 김씨 부분으로 넘어 가면서 2p 정도가 약간 상이한 편집을 함. 이로 보아 국립 중앙 도서관에는 2종류의 삼성연원보가 있는 것으로 보임.
<鑑(殷說)-淑(淑承)-元姜-文雄-日兢-利請-義華-敏成>
<敏成-孝印-方慶-선,흔,恂-承用,承澤,承祐,永旽,永暉,思順,永煦-厚,玖,昴,之衍,之瑞,神,荇,斤重,士謙,士廉,思安,思衡>
<책 뒷장>
<세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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