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본문

p11.png 5. 문온공 배향서원 <용장서원> 소개

 1)개괄적 소개 (2004. 4. 29. 영환(문) 제공)

 

 (1)명  칭 : 용장서원(龍章書院)

 (2)지정별 : 전북 문화재자료 제53호(1984. 4. 1지정)

 (3)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군 주생면 상동리 644

 (4)연 혁

고려 충렬왕(忠烈王)28년(1302) 남원(南原) 수지(水旨)에 건립하였는데 당시(當時)에는 용성사(龍城祠)라 칭하였다. 선조(宣祖)30년(1597) 정유재란시(丁酉再亂時) 소실(燒失)되었던 것을 정조(正祖)때 현위치로 이축(移築)하였다. 고려 성종대(成宗代) 병부랑중(兵部朗中) 벼슬에 있다. 목종대(穆宗代) 김치양(金致陽) 일파의 난으로 운둔생활을 한 양능양(梁能讓)을 주벽(主壁)으로 고려 원종시(元宗時) 삼별초란(三別抄亂) 평정 공으로 용성군(龍城君)을 봉하고 남원부(南原府)를 식읍(食邑)을 하사(下賜)받은 양주운(梁朱雲)과, 고려말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김구용(金九容)과 임진왜란(壬辰倭亂)시 공훈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증직하였고 충장공(忠壯公)이라 시호한 양대박(梁大樸)을 봉안(奉安)하였다

 

 (5)주변현황

남원시내에서 순창간 국도 4㎞거리에서 좌측 진입로로 1㎞들어가면 상동리(上洞里)마을이 위치하며 서원앞에는 전라선 철도가 지나가고 전면에는 넓은 평야가 트여 있으며 배면에는 나지막한 야산이 있다. 서원의 배치는 산을 깎아 계단식으로 두고 건물 외곽에는 토석담장으로 둘렀다. 서원 입구에 관리사가 있고 외삼문을 지나 정면 4칸, 측면 1칸에 전후로 퇴칸을 둔 경의당(敬義堂)이 있다. 경의당(敬義堂) 배면에 높은 견치석 석축과 12계단위에 내삼문이 있고 정면 3칸, 측면 1칸의 숭덕사(崇德祠) 건물이 있다.

 

 (6)사진 소개  (2004. 5. 6. 강진 시제 참예시 방문단 답사. 김발용(군), 김윤식(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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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용장서원 방문기 (2004. 5. 6. 사진-발용(군), 글-윤식(문) 제공)

◈ 일  시 : 2004년 5월 3일(월)~4일(화)

◈ 시제일 : 2004년 5월 4일(음 3월 16일)

◈ 장  소 : 전남 강진군 작천면 토마리 남산

◈ 참석자(무순, 존칭 생략)

 

    1)문온공파 대표 - 영환(문온공파 총무이사)

    2)안사연 - 윤만(會항), 발용(會항), 정중(植항), 윤식

 

◈ 일정

   1)5월 3일 : 서울 → 남원 용장서원 → 군동 내동마을 재실 → 마량포구

   2)5월 4일 : 마량포구 → 군동 내동마을 재실 → 부사공(휘 季老) 묘소 → 대호군공(휘 儒) 묘소 → 선운사 → 서울

 

▣ 5월 3일(월요일)

◈ 07:00 서울 잠실 출발 → 남원 向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잠실 롯데호텔 앞은 차량들로 가득 찼습니다. 게다가 빗방울이 오락가락 한 탓에 시제 걱정이 앞섭니다. 내일은 맑게 개기를 빌면서 남원으로 향했습니다. 08:10분경 정중 종친께서 약속대로 대구에서 출발, 남원으로 향하고 있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윤만 종친께서는 회사일로 오후 2시쯤 출발하여 강진에서 합류하기로 하였습니다.

 

남원으로 가는 도중 하늘이 벗겨지면서 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이대로 날이 갰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남원시 경계로 들어서니 다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제법 빗방울이 굵었습니다.

 

남원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예정보다 30분 가량 늦은 시각이었습니다. 진도까지 긴 여정이라 다소 무리하게 일정을 짰더니 출발부터 시간이 빡빡합니다.

 

정중 종친께서는 아침 일찍 출발한 우리 일행이 출출할 것을 생각해 바람떡을 잔뜩 사 들고 계셨습니다. 떡 빚은 솜씨도 솜씨려니와 정중 종친의 정성스런 마음에 참 꿀맛이었습니다.

 

◈ 남원 → 용장서원

 

이제 용장서원으로 향합니다. 이곳(남원시 주생면 상동리 상동마을)에는 문온공(휘 九容 : 문온공파 파조) 할아버지께서 배향되신 서원입니다. 물계서원이 퇴락하여 아직 복원되지 못한 까닭에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문온공을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남원 시내에는 용장서원에 대한 이정표나 안내판이 없어 남원시청 문화재 담당 직원과 두어 차례 전화통화를 하고도 서너 번씩 길을 물어서 간신히 찾아들어갔습니다. 그것도 그냥 지나칠 뻔한 것을 영환 종친께서 솟을삼문이 범상치 않다는 말씀에 고생을 한층 덜었습니다.

 

용장서원으로 들어가니 인기척이 없습니다. 서원 주위를 살펴봐도 사람 그림자도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뒤편 숭덕사(崇德祠)로 올라가 향을 사르고 할아버지께 큰절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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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덕사는 정면 3칸×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이며, 현판은 주자(朱子)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라 합니다. 숭덕사에는 서쪽부터 <병부낭중 돈암 양선생(兵部郞中 遯菴 梁先生 : 梁能讓)>, <용성군 삼강 양선생(龍城君 三江 梁先生 : 梁朱雲)>, <문경공 척약재 김선생(文敬公 惕若齋 金先生 : 金九容)>, <문장공 청계 양선생(忠壯公 淸溪 梁先生 : 梁大樸)>께서 모셔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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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서원에 관한 자료는 영환 종친께서 우리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신 자료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현지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네 분께 인사를 올리고 나오니 그제야 인기척이 납니다. 숭덕사 앞의 경의당(敬義堂) 원장실로 들어가 맞절로 양씨 문중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동김가라 말씀드리니 환하게 반색이십니다.

 

마침 모레(음력 3월 17일)가 시향을 올리는 날이라 제수 준비차 시내에 나가셨다 막 돌아오신 참이시랍니다. 배향되신 네 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새롭게 배우는 내용이 많습니다.

 

영환 종친께서 미리 준비한 척약재 할아버지에 대한 책자 <범급(帆急)>과 약소하나마 향촉대를 드리고, 척약재 할아버지 시호가 ‘문경공(文敬公)’이 아니라 ‘문온공(文溫公)’이신 내용을 말씀드립니다.

 

남원양씨 남원양씨 용만공대종회(龍巒公大宗會) 양타(梁柁) 회장께서는 <무극집(無極集)>과 <양대사마실기(梁大司馬實記)>를 답례로 주십니다. 양 문중 할아버지 문집을 예물로 교환하니 더욱 뜻깊은 날입니다. 양타 회장께서는 문온공의 대표작인 한시 <범급>을 주욱 읽으시고는 이내 우리말로 풀이를 하면서 음미하십니다.(정말 부러웠습니다.)

 

현재 용장서원 관계 일은 우리 문중에서는 김제에 사시는 두식 종친께서 맡고 계시다고 합니다. 문온공파종회 총무이사를 맡고 계신 영환 종친께서는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문제를 생각하시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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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당은 정면 4칸×측면 1.5칸의 팔작지붕집인데 주춧돌을 호박처럼 둥글게 다듬은 것이 특이합니다. 현판은 숭덕사 현판과 마찬가지로 주자의 글씨를 집자한 것입니다.

 

경의당 좌우에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었을 터인데, 현재는 서재만 남아 있습니다. 정면 4칸×측면 1.5칸의 팔작지붕집이나 경의당보다는 규모가 조금 작습니다. 마당에는 <용장서원기적비(龍章書院記蹟碑)>가 서 있는데, 비문에도 ‘문온공’이 아니라 ‘문경공’이라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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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을 대한 채 다시 긴 정담이 이어집니다. 영환 종친께서 비문을 죽죽 읽어 나가며 관계되는 일들을 말씀드리자 양타 회장께서도 감탄하신 모양입니다. “오랜만에 한문을 잘 아는 분들이 오셔서 반갑소.” 하시며 얼굴이 더욱 밝아지십니다.

 

아쉽게도 이제 길을 재촉해야 할 시간입니다. 어느덧 12:20분이 되었습니다. 솟을삼문 앞에서 양타 회장을 비롯해 충장공파 종손 양진환 선생 등 남원양씨 어르신 네 분과 우리 일행이 기념사진을 찍고 아쉬운 이별을 나눕니다. 마당 앞까지 배웅을 나오신 남원양씨 어르신들께서는 “안동김문의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점심이라도 들고 가시오.” 하며 발걸음을 쉬이 놓아주지 않으십니다.

 

양타 회장께서 말씀 끝에 “서원 운영에 보태라고 안동김문에서는 밭 서마지기를 들여놓았네.” 하시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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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장서원 가는 길

 

남원 시외버스터미널(10:30분) →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 → 도로 표지판을 따라 주생면 방향으로 계속 직진 → 약 20분간 주행 후 오른쪽 길가에 자그마한 ‘상동마을’ 표석을 보고 우회전 → 마을길을 따라 직진(상동교회가 비교적 눈에 띄는 건물임.) → 방음벽을 세운 육교 형태의 전라선 철로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상동수퍼, 왼쪽에 상동마을회관(왼쪽에 한 길 정도의 돌표석이 있으나 눈에 잘 띄지 않음) → 10여M 왼쪽 골목길 → 차량 서너 대 주차할 수 있는 마당 → 용장서원

 

(초행길이라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용장서원-소계제문 원문 국역(龍章書院- 所係諸文 原文 國譯) (2007. 3. 17. 윤만(문) 제공)

 

龍   章   書   院

- 所係諸文 國譯 -

南原龍章書院上樑文略

大司成公惕若齋金先生姿性戇直學術精深

대사성공척약재김선생자성당직학술정심

詩寫冲襟寄酒落於鶴峙鷗潔經尋墜諸講徵

시사충금기주낙어학치구결경심추제강징

妙於牛毛蠶絲辛朝斥邪荷衣屛驪上之騎北

묘어우모잠사신조척사하의병려상지기북

庭抗節素冠招瀘中之魂文山燕獄之寃至今

정항절소관초노중지혼문산연옥지원지금

流涕魯連海東之想於玆妥靈志節同符於三賢

류체노연해동지상어자타령지절동부어삼현

祀享永垂於一體

사향영수어일체

 

남원의 용장서원 상량문(요약분)

 

  대사성이신 척약재 김선생께서는 용모와 성품이 우직하시고 학문이 정밀하고 깊으시니, 시문이 가슴에 꽉 차서 글 붙임이 학과 갈매기처럼 우뚝하고 맑게 쇄락하시고, 강론이 소털과 누에 실처럼 고르게 연결되어 신묘하시다. 신조의 사악함을 배척하여 옷을 둘러메고 나귀를 탄 나그네로 몰리었으며, 원나라를 항거하다가 의관없이 노강의 혼백으로 초혼되었습니다. 문천상(文天祥 ; 문산)이 연옥에서 당한 억울함같이 지금에도 눈물을 흘리게 되여 노중련(魯仲連 ; 노연)이 동해에서 익사한 생각으로 이에 혼령이 편안하시리이다. 뜻과 절개가 삼현과 부합되시매 제사를 받드심이 동일하게 영원히 드리우리이다.

 

註(주) : 1. 惕若齋 : 김구용(1338~1384)의 호

        2. 辛朝 : 辛旽(신돈)의 조정이란 뜻으로 공민왕대를 비하한 말.

        3. 文天祥, 魯仲連은 모두 충절이 있는 지사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다.

        4. 三賢 : 세분의 어진이 여기서는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 ‘원나라를 항거하다가 의관없이 노강의 혼백으로 초혼되었습니다’에서 척약재께서는 원나라를 배척하는 입장에서 북원 사신의 입국을 반대하시다가 경기도 죽산 및 여주 땅으로 귀양을 가셨으며, 신흥강국 명나라가 매년 말 천필 그 때까지 누계 오천필을 공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였을 때 고려에서는 이를 들어주지 못하였다. 이로써 윈난성 따리로 귀양을 가시다가 쓰촨성 루저우에서 병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龍章書院 奉安文

福岳鍾靈顯顯令德資性粹如行義剛克麗季

복악종령현현령덕자성수여행의강극려계

僻陋世昩經方性理之學自公始倡圃陶兩隱

벽루세말경방성리지학자공시창포도양은

輿之齋名道學文業一世矜式妙齡通籍師表

여지재명도학문업일세긍식묘령통적사표

國學開豁心目日星炳若辛朝秉忠北庭抗直

국학개활심목일성병약신조병충북정항직

始竄竹南竟流瀘北萬里招魂一杯東天白鷗

시찬죽남경류노북만리초혼일배동천백구

黃鶴月生精神龍章古祠重建昭蕆

황학월생정신용장고사중건소천

 

용장서원 봉안문

 

  복악(福척 岳재)에 영기가 모였으니 훌륭한 덕업이 명백하도다. 용자와 성품이 순수하시고 행의가 강직하였도다. 고려말엽에 문화가 뒤떨어져서 경국의 방도가 혼미하였는데 성리학은 공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포은과 도은으로 더불어 명망이 같았으며 도학과 문업이 당대의 모범이 되었다. 젊은 나이에 경적을 통달하였으니 국가에 사표가 되었으며 마음공부를 넓게 열었으니 밝기가 일월 같았다. 신조 당시 충절을 지녔으며 원나라에는 곧게 항거하였다. 처음에는 죽남으로 귀양갔다가 마침내 노북으로 유배되었으며 만리밖에서 혼령을 청해 동쪽을 향해 술을 올렸지요. 백구와 황학같고 정신이 달과 같이 밝았사오니 용장 옛 사당을 다시 세워 밝게 갖추었습니다.

 

龍章書院 誌錄略

大司成公惕若齋金先生本以南原府使淸白

대사성공척약재김선생본이남원부사청백

史廉潔治績施惠民頌德故立祠而又輿圃隱

사렴결치적시혜민송덕고입사이우여포은

鄭先生始倡性理之學辛朝力斥奸臣李仁任

정선생시창성리지학신조력척간신이인임

嘗使北元以國書不遜大被咆喝抗節不屈遂

상사북원이국서불손대피포갈항절불굴수

竄大理衛至瀘洲病卒以帝命衣冠招魂而葬

찬대리위지로주병졸이제명의관초혼이장

恭讓王二年庚午立院

공양왕2년경오입원

配享又梁靑溪忠壯公立祀

배향우양청계충장공입사

時我 正廟朝時下 傳敎故其時本院移建于

시아 정묘조시하 전교고기시본원이건우

南原郡周生面上洞村

남원군주생면상동촌

 

용장서원의 서원지를 초략함

 

  대사성공이신 척약재 김선생께서는 본래 남원부사로서 청백리로 청렴결백하여 공적을 이뤄 은혜를 베풀었으니 백성들이 치덕을 칭송하여 사당을 세웠으며 또한 포은 정선생과 더불어 성리학을 창시하셨다. 신조와 간신 이인임을 힘써 물리쳤는데 일찍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국서가 공손하지 않다하여 크게 꾸짖음을 당했으나 절개를 굽히지 아니하고 항거하다가 드디어 대리로 귀양가게 되었고 노주에 이르러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황제의 명에 의하여 의관으로서 초혼하여 장사지냈으며 공양왕 2년 경오년에 이 서원을 건립하였다.

 

  그 뒤에 양청계 충장공을 여기에 배향하였으니 이 때가 조선 정조 때이고 전교가 내린 까닭에 그 때 본원을 남원군 주생면 상동촌에 옮겨 세운 것이다.

 

註(주) : 梁靑溪 : 양대박(梁大樸)의 호이며 충장은 청계공의 시호이다.

 

☞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국서가 공손하지 않다하여 크게 꾸짖음을 당했으나 절개를 굽히지 아니하고 항거하다가 드디어 대리로 귀양가게 되었고 노주에 이르러 병으로 돌아가셨는데’에서 척약재께서는 원나라를 배척하는 입장에서 북원 사신의 입국을 반대하시다가 경기도 죽산 및 여주 땅으로 귀양을 가셨으며, 신흥강국 명나라가 매년 말 천필 그 때까지 누계 오천필을 공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였을 때 고려에서는 이를 들어주지 못하였다. 이로써 윈난성 따리로 귀양을 가시다가 쓰촨성 루저우에서 병으로 돌아가신 것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龍章書院 丁享祝文

首倡理學心秉忠直萬里臬復百代矜埴春(時隨)丁侑食景仰斯卓

수창리학심병충직만리얼복백대긍식춘(시수)정유식경앙사탁

 

용장서원의 정일에 드리는 제사 축문

 

  성리학을 으뜸으로 창시하시였으니 마음으로서 충직함을 지녔도다. 만리 밖에서 혼을 청해 왔으니 백대토록 모범이 되리이다. 봄 정일에 제사를 올리오니 이 높다란 서원이 크게 우러러 보입니다.

 

倡學識略

我  朝文明之治實三代以後鮮有其此而其

아  조문명지치실삼대이후선유기차이기

源盖始於王氏之季何者勝國五百年間賢明

원개시어왕씨지계하자승국오백년간현명

之主豪傑之佐亦不爲不多而之於聖賢義理

지주호걸지좌역불위불다이지어성현의리

盖蔑蔑他及其垂亡之際牧隱李先生爲大司

개멸멸타급기수망지제목은이선생위대사

成圃隱鄭先生惕若齋金先生陶隱李公潘南

성포은정선생척약재김선생도은이공반남

朴公之諸賢俱以本官兼學官勉進後學於是

박공지제현구이본관겸학관면진후학어시

一國章甫之流琢磨舊習薰道德性程朱性理

일국장보지유탁마구습훈도덕성정주성리

之學大明於世異成  我朝三百年儒雅之

지학대명어세이도성  아조삼백년유아지

化至于今家習正學人和大方不失其蹊徑者

화지우금가습정학인화대방부실기혜경자

伊誰之力歟鳴呼惟樟之生後先生盖三百有

이수지력여명호유장지생후선생개삼백유

餘年而又孤陋甚其於大賢德業安敢有所知

여년이우고루심기어대현덕업안감유소지

識而能發揮其萬一哉數行文字踓甚草草亦

식이능발휘기만일재수행문자유시초초역

以見吾東方斯文發源之由

이견오동방사문발원지유

 

창학에 관한 간략한 기록

 

  우리 조정에 문명의 치적이 삼대 이후에서야 이같이 드물게 두었으며 그 근원을 대개 고려 말엽으로 시작했음은 어찌된 까닭일까? 승국 오백년간에 현명하신 군주와 호걸스러운 신하가 적지 않았건만 성현과 의리에 있어서는 거의 보이지 않고 그 종말에 미처서는 목은 이 선생께서 대사성이었고, 포은 정 선생과 척약재 김 선생, 도은이공 반남박공 같으신 제현께서 함께 본직이나 학관으로서 힘써 후학들을 길렀으니 이에 나라 안의 선비들이 옛 습속을 갈고 쫓아 덕성을 마련하였으니 정자와 주자의 성리학이 세상을 크게 밝혀서 왕성하게 되었다. 우리 조정에서의 삼백년에 걸친 훌륭한 학문이 지금에 이르러서 가정마다 올바른 학문을 익히고 사람들이 큰 방도를 알게 되었으니 그 지름길을 잃지 않는 것이 그 누구의 힘이리오. 아! 유장의 태어남이 선생보다 대략 삼백년 뒤었으니 견문이 적고 물정에 심히 어두우니 대현들의 덕업에 어찌 감히 아는바가 있다고 그 만분의 일이라도 능히 발휘하리오마는 두어줄 문자가 비록 보잘 것 없으나 역시 우리 동방 유학의 발원 연유를 보게 될 것이다.

 

註 : 勝國 : 고려를 지칭함이니 앞선 나라를 높여 이르는 말.

    惟樟 : 이유장이니 호는 孤山(고산)이다.

 

安東后人 凡山 金泰煜 國譯

 

☞ 이 자료는 경기 포천이 고향이시고, 현재 의정부에 거주하고 계신 김재호(문)님이 실전된 선대 계대의 자료를 찾고자 수년간 국립도서관을 출입할 당시 원문을 입수하였다가 최근 국역을 하여 제공해준 자료입니다. 원문의 출처는 재확인하여야 하겠습니다

 

 3) 용장서원 춘향제 참예기 (2009. 4. 26. 태영(군) 제공)

 

 <용장서원 춘향제(龍章書院春享祭)>

일시 : 2009. 4. 12(음3. 17)

장소 :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

 

祭品單子(제품단자)

黃栗(황률) 밤. 호도, 乾棗(건조) 대추. 은행, 榛子(진자) 개암, 鹿脯(녹포) 육포, 鹿醢(녹해) 소간, 菁菹(청저) 무우,

芹菹(근저) 미나리, 魚醢(어해) 조기, 魚鱐(어숙) 건명태. 건상어. 건오징어, 稻簋(도궤) 쌀, 黍簋(서궤) 서슥,

羊腥(양성) 소고기, 豚腥(돈성) 돼지고기, 幣篚(폐비) 비단, 黃燭(황촉) 초, 丹香(단향) 향, 祭酒(제주) 술

 

1. 명 칭 : 용장서원(龍章書院)

2. 문화재 : 전북 지방문화재 제53호(1984. 4. 1지정)

3. 위 치 : 전라북도 남원군 주생면 상동리(구 이언) 644번지

4. 연 혁 및 개요

고려 충렬왕(忠烈王) 28년(1302) 남원부(南原府) 사림(士林)이 사우(祠宇)를 수지면(水旨面)용장동(龍章洞)에 세우고 용장사(龍章祠)라 칭하였다.

태종(太宗) 2년(1402)에 사우(祠宇)를 다시 세우고 편액을 용장사(龍藏祠)로 고쳤다.

선조(宣祖) 30년(1597) 정유란(丁酉亂)에 소실(燒失)되었다.

정조(正祖) 17년(1792)에 남원부 이언방 충장공(南原府 伊彦坊 忠壯公 옛터) 주생면 상동리 현 위치로 이축(移築)하고 제향(躋香)케 하였다.

고종(高宗) 8년(1871)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후 1948년에 사림의 발의로 강당을 세우고, 1962년에 사당을 세워 四先生 위패를 모시고 예성(禮成) 하였다.

5. 사선생행력(四先生行歷)

가. 양능양(梁能讓) 고려 성종대(成宗代) 병부랑중(兵部朗中), 호는 돈암(遯菴)으로 눌재 양성지의 조상이다. 공민왕(1354년)에 제향하였다.

나. 양주운(梁朱雲) 고려 원종시(元宗時) 삼별초란(三別抄亂) 평정 공으로 용성군(龍城君)을 봉하고 남원부(南原府)를 식읍(食邑)을 하사(下賜)받았다. 호는 삼강(三江)이다.

다. 김구용(金九容) 고려말 대사성(大司成), 상락공 김방경의 현손으로 일찍이 남원부사로 청백리로 선정하였다. 호는 척약재(惕若齋)이며, 시호는 문온(文溫)이다. 태종6년(1405)에 배향되었다.

라. 梁大樸 임진왜란(壬辰倭亂)시 공훈으로 증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제수 되었다. 호는 청계(靑溪)이며 시호는 충장공(忠壯)이다. 정조17년(1793)에 배향되었다.

6. 건물배치

서원의 배치는 산을 깎아 계단식으로 두고 건물 외곽에는 토석담장으로 둘렀다. 서원 입구에 관리사가 있고 외삼문을 지나 좌측면에 정몽재(正蒙齋)가 있고, 경의당(敬義堂)은 정면으로 4칸, 측면 1칸에 전후로 퇴칸을 두었다. 경의당(敬義堂) 배면에 높은 견치석 석축과 12계단위에 내삼문이 있고 정면 3칸, 측면 1칸의 숭덕사(崇德祠)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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