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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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5. 안렴사공 배향서원 (2003. 2. 16. 주회(안) 제공)

 

 * 두문동서원 (1934년 건립, 개성직할시 개풍군 광덕면 만수산 두문동)에는 안렴사공(김사렴)과 판삼사공

 둘째아들 김전 공이 배향되어 있고,  * 경현사(전남 장성, ?1935년 건립)에도 안렴사공(김사렴)이 배향되었었고 (☞현재도 경현사가 있는지? 확인 필요),

 * 고려통일대전(2000.12 상량식,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산72번지)에는 충렬공 할아버님을 비롯 表節에 안렴사공 사렴 할아버지와 靖節에 전서공 성목 할아버지, 義節에 군사공 칠양 할아버지, 전서공 아드님 휴 할아버지, 靖節에 판삼사공의 둘째아들 전, 이렇게 여섯분이 배향된다고 합니다. (☞마무리 되었는지? 확인 필요)

 

 1)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

- 소재지 : 개성직할시 개풍군 광덕면 만수산 두문동.

 이 서원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끝까지 출사(出仕)하지 않고 충절을 지킨 고려의 충유신(忠遺臣) 두문동 72인 및 고려말 충신을 모신 서원이다. 현재 두문동 72인의 성명은 모두 전하지는 않고 임선미(林先味), 조의생(曺義生), 성사제(成思齊), 박문수(朴門壽), 민만부(閔安富), 깁충한(金충漢), 이의(李倚)등 55명의 성명이 전하고 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조선이 건국되자 임선미등 72인이 모두 이곳에 들어와서 마을 동, 서쪽에 문을 세우고 빗장을 걸어놓고 문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에 유래되었고 태조는 고려유신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경덕궁에서 친히 과장(科場)을 열었으나 모두 응하지 않고 경덕궁 앞 고개를 넘어가버려 그 고개를 부조현(不朝峴)이라 하고 부조현 북쪽에 관을 걸어놓고 넘어갔다 하여 이를 괘관현(掛冠峴) 이라 불렀다 한다.

 

 1740년(영조 16) 영조가 개성을 행행(行幸)할 때 부조현의 유래를 듣고 비석을 세워 주었다하며 그 뒤 임신미, 조의생등의 가승(家乘)을 통하여 이 고사가 정조에 알려져 1783년(정조 7)에 개성의 성균관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추모하였다.

이를 근거로 1934년 개성에 세운 두문동서원은 임선미의 후손 임하영(林河永)이 주동이 되어 창건하였는데 고려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대의(大義)를 위하여 순절한 임선미를 비롯 72인 및 정몽주, 이색등 절의를 지킨 고려말 충신 119위를 모선 서원이다.

이 서원의 표절실 순절반(表節室殉節班틴에는 박문수(朴門壽 : 竹山人)외 16위, 표절실 항절반(表節室抗節班)에는 김충한(金충漢 : 慶州人)외 30위, 표절실 정절반(表節室靖節班)에는 배상지(裵尙志 : 興海人)외 6위 순절실 순절반(殉節室殉節班)에는 정몽주(鄭夢周 : 延日人)외 10위, 항절실 항절반(抗節室抗節班)에는 이색(李穡 : 韓山人)외 32위, 정절실 정절반(靖範室靖節班)에는 김주(金澍 : 善山人)외 20위 등을 봉안하고 있다.

 

 *▣고려청주곽문명현록 (김종무)

●두문동회맹록 : 안렴사공(김사렴) 수록

*명단은 두문동 주인 박문수 공의 후손의 家藏

●두문동72현록 : 안렴사공(김사렴) 수록

두문동서원의 소재는 경기도 개성시 서쪽 25리 쯤에 있다.

*당시의 원본으로 박문수 가장 附記

두문동이라 하면 72현으로 세상 사람들은 알고 있으나 이조 헌종 정미(=1847)에 간행한 두문동서원지에 보면 120현이다. 곧 개성부 종봉산 아래 동두문동 48현이 있고, 개성부 만수산 아래 서두문동 72현이 있어서 합봉 120현이라 한다. 세상에는 서두문동 72현이 원운곡 소장 서첩에서 먼저 발견되어 소문이 세상에 알려졌다 한다.

 

 2) 경현사

 

1935년 경현사(景賢祠)는 장성(長城)의 만수산(萬樹山) 밑에 있다 전국의 선비들이 고 려 종말기의 여러 현인들의 도학과 절의를 숭모(崇慕)하여 의논 끝에 이 사당 (祠堂)를 짓고 봄 가을로 제사 지내기로 했다.

 

장성군 남면 삼태리 소재 경현사(景賢祠)에 두문동(杜門洞) 72현(賢)을 향사(享祀)하는 사우(祠宇)가 있었는데 왜구(倭寇)가 한민족의 정기(精氣)를 말살코자 경현사를 철폐함에 따라

 

3) 고려통일대전

▣안동김씨대종회보 제67호 (2000년 1월)

●고려통일대전 충·공신각 상량식 거행

지난 12월 23일 고려숭의회에서 추진하는 고려통일대전 및 고려역사문화박물관 건립사업에 우선 충신각과 공신각을 정초하여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이 사업은 1993년 6월에 고려역사문화재현사업추진위원회를 사단법인 고려숭의회와 문화관광부에서 한국토지공사와 협의하여 통일동산 중앙공원내 고려통일대전 고려역사문화박물관 부지조성 방침을 결정, 1997년에 공사를 착공, 1999년 9월 1일에 충·공신각 2동과 관리사 일부건축을 착공하여 지난 12월 23일 500여명의 전국 각지 성씨의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려숭의회 이사장 유근창 씨의 주관으로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우리 안동김씨대종회에서는 군사공파 회장 在錫현종과 대종회 사무국장이 참석하였다. 여기 고려통일대전 충·공신각에는 우리 선조님 가운데 충렬공 할아버님을 비롯 表節에 안렴사공 사렴 할아버지와 靖節에 전서공 성목 할아버지, 義節에 군사공 칠양 할아버지, 전서공 아드님 휴 할아버지, 靖節에 판삼사공의 둘째아들 전, 이렇게 여섯분이 배향되는데 1위 배향에 1천만원의 헌성금을 내야만 한다.

 

이 사업에 충·공신각은 문중의 헌성으로 하고 역사박물관과 통일대전은 국비로 할 계획임으로 먼저 문중의 사업을 착공함으로써 남은 국비사업이 이루어진다고 고려숭의회에서는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 공사개요을 약기하면 다음과 같다.

1. 위치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산72번지

2. 부지면적 : 12,643평

3. 건축면적 : 1,139평

4. 연면적 : 2,130평

*고려통일대전 배전 외 657평

*고려역사문화박물관 1,473평

5. 공사기간 : 1999년부터 2005년

6. 부지조성공사비 : 85억원

7. 건축공사비 450억원

 

(조선일보/수도권전국)

[경기] 집중취재/ 표류하는 대형 국가사업 (2001.10.23)

◆ 파주 통일동산 조성 =통일시대에 대비한다는 목적으로 90년부터 파주시 탄현면 일대에 조성되기 시작한 통일동산은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3차례나 연기됐으나 아직 그 사업 지속 여부 자체가 불투명하다. 총 168만평 중 50여만평이 분양조차 되지 않았고, 분양된 땅도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공원묘지 등을 빼곤 황량한 벌판으로 남아있다. 이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세우려 했던 만남의 광장 터는 축구국가대표팀 연습장으로 바뀌었고, 민속촌 부지 일부는 예술인 마을(헤이리아트밸리)로 변경돼 팔렸다. 이처럼 사업 진도가 느린 것은 정권 교체속에 주무부서인 통일부와 문광부가 당초 계획을 보류했기 때문. 게다가 IMF를 지나면서 금융비용 상승 등으로 민간개발업체들의 관심이 끊긴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토지 소유주인 토공은 게임산업단지·대학·민속촌 유치등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조선일보/수도권전국)

[뿌리를 찾아서] 탄현 (1997.12.01)

파주시 탄현면은 파주의 대표적 오지중 하나였지만, 자유로 개통으로 외부에 널리 알려지고, 개발도 이뤄지게 됐다.

탄현면은 동쪽으로 월롱산, 남쪽으로 곡릉천, 북쪽으로 임진강을 경계로 하고 있다.

자유로에서 임진각으로 가는 길목에서 오두산 입구로 진입하면 탄현면 성동리가 나온다.

탄현면의 가장 유명한 명소로는 지난 92년 개관한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있으며, 인근에는 한국토지공사가 통일동산을 조성하고 있다.

통일동산은 1백68만평 대지에 남북한상품판매시설, 서화촌, 민속촌, 휴양시설, 단독택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파주시는 탄현면 금승리 30만평에 전자공단을 조성한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탄현면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연안지역으로 광활한 농경지를 보유하고 있다.

휴전선 남방경계선과 접해 있어 생업이 주로 농업이었으며, 탄현쌀은 교하쌀 못지 않게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자유로가 개통되고 난 후에는 외지인들이 유입되면서 공장과 상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자유로는 1단계 공사가 92년9월 준공됐으며, 지난 94년9월 2단계 공사가 완료돼 행주대교에서 출발해 임진강을 끼고 성동리 통일동산을 거쳐 자유의 다리로 이어지는 총연장 46.6㎞가 전면 개통됐다.

탄현면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이뤄졌는데, 그 이전에는 교하군 현내면, 신오리면, 탄포면 지역에 해당한다.

탄현이란 이름은 탄포의 '탄'자와 현내의 '현'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탄현면은 현재 11개의 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소재지는 오금리에 있던 것이 1939년 축현리로 이전되었다.

탄현면의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갈현리에 장릉, 성동리에 오두산성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있다. 또 금승리 황희정승묘와 법흥리 정연묘역은 도지정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이밖에 법흥리와 성동리에 고분군이 있으며, 불교유적으로 성동리에 검단사가 있다.

<이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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