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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락대(上洛臺) (1)상락대 소개
상락대1 (2009. 4. 발용(군) 제공)
상락대2 (2009. 4. 발용(군) 제공)
회곡리 앞에서 본 상락대 원경 및 실제 위치도 (2003. 여름캠프시 촬영, 제작. 2003. 8. 6. 정중(도) 제공)
상락대는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낙동강 변에 있는데, 고려 중기의 출장입상인 충렬공(휘 方慶)께서 젊은 시절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이곳은 안동시 명승지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수십년 전에 안동군수로 있던 재환(在煥) 씨와 후손 대용(大容), 범용(範容)씨 등이 기념비를 세웠다. 그런데 이 기념비가 유실되어 1997년 안동김씨대종회에서 다시 세웠다.
상락대 표석 모습 (2010. 5. 대종회 제공) *2009년 안동시에서 상락대 표석 옆에 <자연 생태 학습장>을 세웠다.
상락대 안내판(2010. 5. 대종회 건립). (2010. 11. 16. 발용 제공)
상락대비 모습 (2009년 11월 모습)
<옛날의 상락대비>
<상락대비>(보감 2편 수록 사진) (1976년 10월 대종회에서 발간한 <寶鑒 第二輯>에 수록된 사진. 2002. 12. 14. 태영(문) 제공)
상락대 정상에는 낙락장송이 서 있고 낙동강이 유구(悠久)히 흘러가는 건너편에는 상락대가 강상 절벽에 우뚝 서 있다. 상락대 밑에는 옛날 충렬공께서 거처하시던 별장이 있었다. 충렬공께서 젊은 시절에 이곳에서 무술을 수련하셨다 (보감 2편 내의 사진)
(2) <상락대 관련 각종 기록 내용 소개>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앞 강 건너편 :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2003. 6. 29. 주회. 제공)
1. 동양문화산책16 [안동풍수기행, 돌혈의 땅과 인물] (2001.7, 이완규, 예문서원) P.135 소개 내용
상락은 낙동강 상류란 뜻이다. 안동시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예천 쪽으로 시내를 벗어나면 송야천에 걸린 송야교, 속칭 솔밤다리가 있다. 다리 끝에서 남북으로 교차하는 둑길은 924번 지방도로이다. 이 도로는 풍산읍에서 시작하여 수리,회곡,막곡을 지나 솔잠다리에서 34번 국도와 열십+자로 교차한 뒤 서후면의 교동,검계,서후,태장을 지나 저전에서 영주로 가는 5번국도와 만나게 된다. 총 길이가 약 33킬로미터 남짓한 짧은 도로이다.
솔밤다리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낙동강 강변을 따라 5킬로미터를 가면 중앙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굴다리가 있다.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논을 앞에 두고 멀리 절벽이 쭉 늘어서 있다. 오르막 도로를 조금만 가면 드넓은 낙동강과 함께 절벽이 눈 아래로 펼쳐지는데, 맞은편 강가의 절벽 가운데 가장 우뚝한 지점이 바로 上洛臺(상락대)이다.
낙동강의 상류에 있는 절벽이며, 일찍이 ●상락군이 놀던 곳이라 하여 상락대라고 한다. 회곡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상락대를 내려다보면 깍아지른 듯한 수직의 절벽이 낙동강 강물과 어우러지는 경치가 일품인데, 상락대의 정상을 비켜 왼쪽의 조금 낮은 절벽 중간쯤에 정자가 하나 있다. 상락대와 정자가 주는 이미지가 몹시 강렬하기 때문에 건너편 절벽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 된다.
상락대는 현행 행정 구역상 南後面(남후면) 丹湖里(단호리)에 속한다. 옛날에는 회곡나루에서 강을 건너 맞은편에 있는 단호로 갔지만, 지금은 무릉의 유리 한방병원에서 儉巖(검암)을 지나 단호로 가는 포장도로가 나 있어 이를 이용하면 된다.
그러나 단호로 가는 길이 쉽지 않고 단호에 별다른 문화재가 없으므로 실제로 상락대에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파른 절벽의 중간에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臺(대)가 있다는 것은 무척 신기한 일인데 그곳에 흥해배씨인 洛巖(낙암) ★裵桓(배환, 1379-?)의 洛巖亭(낙암정)이 있다. 가는 길은 조금 수고롭지만 낙암정의 시원함과 호쾌함은 사시사철 남다른 맛이 넘친다.
2. <안동김씨 족보> 내 기록 내용 (2003. 6.30. 주회(안) 제공)
●충렬공 遺墟誌 강 건너 편에는 공의 別莊이 있던 上洛臺가 江上절벽에 우뚝 서 있으니 안동군 명소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곳에 서 있는 上洛臺碑는 수십년 전에 안동군수로 있던 ●金在煥씨와 후손 ●大容, ●範容 제씨가 이곳을 길이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上洛臺 상락대 정상에는 낙낙장송이 우뚝 서 있고 절벽 아래는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上洛臺碑 충렬공께서 젊으신 시절에 무술을 연마하시고 공께서 거처하시던 별장이 있던 곳을 영구히 기념 보존하기 위하여 수십년 전에 안동군수로 있던 ●재환씨와 후손 ●대용, ●범용 제씨가 기념비를 세웠다.
어느 때인가 이 비가 넘어져 강으로 유실되어 1996년에 다시 세웠다. 상락대는 안동군 명승지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위치 : 안동시 풍산면 회곡동 앞 낙동강 건너편에 있다.
3. <안동김씨 대종회보> 제56호 (1997. 4) (2003. 6. 30. 주회(안) 제공)
●上洛臺 복원사업 완료 --지난해 40만원을 예산에 반영하여 상락대를 복원한 바 복원한 그 자리가 옛 상락대 자리가 아님이 그 마을 노인들의 증언으로 밝혀져 원 위치를 확인한 바 현 장소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옛날 坐臺가 확인되어 今春 3월 9일 원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4. <안동김씨 홈페이지> 내의 대종회 연혁란의 기록
---1996 上洛臺를 四十萬원을 들여 복원하였으며,
---1997년안동 上洛臺를 복원할 때 正位置를 잘못 파악하여 입석하였었는데 그 고장 노인들의 고증을 다시 들어 원 위치를 확인하여 바르게 옮겨 세웠다.
5. 상락대 관련 전설--안동 유사 봉수(익) 말씀. (2003. 3. 29. 발용(군) 제공)
신임 대종회장의 고유제를 지내기 위해 회곡동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상락대를 지날 때쯤 안동유사 봉수님께서 상락대에 관련해 전해오는 전설 하나를 들려주십니다. 충렬공 할아버님을 너무나 사모하던 한 낭자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 낭자의 유언에 따라 상락대 인근에 장사 지냈고 그 자리에는 지금까지도 풀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원래 상락대에는 상락대비가 존재했으나 동네사람들이 일이 잘 안되면 그것이 상락대비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비를 강에 버렸다고 합니다. 수년전에 봉수님과 몇분이 상락대비를 찾기위하여 상락대 정상부근을 뒤졌으나 찾지못하고, 동네의 100살이 넘은 어른으로부터 구전되어오는 위치를 전해들어 파보니 상락대비 좌대가 발견되었다고합니다. 그래서 그 좌대를 꺼내어 현재의 상락대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위치가 바로 풀이 나지않는 그 위치였다 합니다.
6. 경북마을지 下권 기록내용--(2003. 6. 30. 주회(안) 제공)
●풍산면 회곡리
고려 명신 충렬공 ●김방경 장군이 노시던 곳으로 경관지로 알려진 낙동강의 절벽에 상락대가 마을 앞에 있다. 마을 앞의 소는 낙연이며, 그 앞에 단호리로 건너가는 나루터가 있다. 상락대의 동편의 바위는 마암이라 가파른 절벽이 대의 경관을 더욱 높인다.
●남후면 단호리(丹湖里) 마을의 역사 : 영가지의 방리조에 실리기를 " <전략> 상락대는 안동부에서 25리가 되는 檜谷村(회곡촌)의 남쪽 강가의 벼랑이다. 상락군 ●김방경이 일찍이 遊賞(유상)했던 곳임으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동쪽에 馬巖(마암)이 있어 깍아 세운 듯 천길이나 되는 바위절벽이고, 마암의 서쪽은 돌로된 臺가 둘러있어 기이한 경치가 형용하기 어려울만치 아름답고, 아래쪽의 맑은 호수는 배를 띠울 만하고, 위쪽에는 수십인이 앉을만하다. 돌 사이에 菲菜(비채, 부추의 한가지)가 많이 살아 있는데 전하는 말로는 ●상락군이 심은 것이라 한다." 라 적고 있다.
7. <풍산농협>지 기록내용--<풍산농협> (풍산읍 안교리 123. 054-858-7101) (2002. 4. 21. 태서(익) 소개)
●상락대(上洛臺), 단호동(丹湖洞) 상락대(上洛臺)--회곡 남쪽 강 건너 있으며 洛東江이 흐르고 마암절벽이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상락대 고려 후기의 명장 ●金方慶이 즐겨 유상하던 상락대는
豊山邑 丹湖洞 지경으로 남후면 검안 속칭 대애실 앞 眉川 물이 낙동강에 合流하는 목중이에서 서쪽으로 약 5里 지점이다.
南先面 亭上洞 앞에서 半邊川을 합쳐 영호루 앞을 지나며 밋밋하게 서남으로 흐르던 낙동강이 水下洞의 속칭 무주무 마을 앞에 이르러 우회전으로 꺾여 북으로 ㄱ자를 그려 松峴·막곡(安東市와 豊山邑의 경계) 앞까지 깊숙히 들어 갔다가 소쿠리형을 그리며 남으로 되돌아 나옴으로 완연히 ㄹ자를 그리고 나서 桂坪洞 속칭 윗절마을 앞에 이르러 완만히 굽이를 틀어 잠시 서쪽으로 흐르고 속칭 아랫절마을 앞에 이르러 북서로 방향을 바꾼다.
강굽이가 북서로 꺾이는 아랫절마을 對岸. 길게 이어진 철길 절벽이 검푸른 강물, 沼를 굽어보며 굽이굽이 山水의 寄景이 펼쳐지는데 ●金方慶이 노닐던 상락대가 바로 여기이다. 상락대에서 江기슭을 거슬러 굽이를 돌아 오르면 江心에 드리운 절벽 위에 古色蒼然한 한 채의 정자가 있는데 世宗대의 文臣 ★裵桓(杜門강洞 七十二賢인 ★裵尙志의 아들)이 은퇴하여 만년을 지내던 별장이다.
그 동쪽엔 馬岩이 있어 절벽이 천길이나 깎아지르고 마암 서쪽엔 石臺가 서려 돌아 그 기괴함이 이를 데 없다. 그 아래 못이 있는데 배를 대고 오르면 石臺는 수십명이 앉을 만큼 넓다. 바위틈에는 부추가 많이 나 있는데 ●金方慶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나지막한 야산을 배경으로 강굽이 절벽 아래 깃든 上洛臺 一境은 江을 사이에 둔 들녁 저편에 마을이 빤히 건너다 보이지만 고요하고 깊숙한 맛은 그대로 속세를 멀리 떠난 심산 유곡이다. 등 뒤에는 온통 울창한 숲과 천길만길의 위태로운 절벽이 저 멀리에 까지 이어 뻗고 앞은 널따란 소를 이루어 검푸른 강물이 유유히 굽이치며 太古의 자연 그대로 원시의 정적이 고스란히 이어 흐르는 천고의 秘境이다.
8. 상락대 지도 (대동여지도. 상락대 및 화산 지명) (2003. 7. 2. 윤식(문) 제공)
9. 상락대 가는 길 (2003. 8. 6. 윤식(문) 제공)
1번 지점 - 꽤 큰 고개, 굴곡 심하고 긴 편임. 2번 지점 - 검암리, 검암노인회관 외에 특별한 랜드마크 없음. 3번 지점 - 도로 끝에 <동네수퍼>가 왼쪽에 있음. 반드시 오른쪽으로 우회전. 얼마 가지 않아서 <미천>를 횡단하는 작은 다리 <검암교> 있음. 제방길을 따라 직진, 도로 표지판을 보고 <단호>로 들어감(좁은 농로임), 농로로 들어가는 곳에 <낙암정> 표석 있음. 4번 지점 - <낙암정>에서 내리막길 시작됨. 내리막길 끝나는 산허리 잘록한 곳에서 강 쪽에 서 있는 전봇대를 따라 오솔길로 들어가서 50미터쯤 가서 오른쪽 밭둑으로 들어감. 5번 지점 - <상락대>. 솔밭 헤치고 들어가서 맨 끝 쪽임. 현재 사방 7보 정도의 꽤 넓은 공터에 상락대비 서 있음
10. 영가지에 실린 회곡동과 서쪽의 화산 지도 (2003. 7. 2. 윤식(문) 제공) 11. 영가지에 실린 회곡동과 동쪽의 화산 지도 (2003. 7. 2. 윤식(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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